UPDATED. 2024-03-29 06:35 (금)
15억 명이 아직도 굶주리는 이유
15억 명이 아직도 굶주리는 이유
  • 유무수
  • 승인 2021.10.29 1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는 세계를 파괴하지 않고 세계를 먹여 살릴 수 있는가』 에릭 홀트-히메네스 지음 | 박형신 옮김 | 한울아카데미 | 160쪽

녹색혁명으로 곡물생산량 증가했으나 곡물가격 폭락
먹을거리 생산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 방식을 바꿔야

구이용 닭은 A4 용지 크기의 닭장 안에서 8주 만에 다 자란다. 질병예방을 위해 항생제도 투입된다. 밀집시설에서 한꺼번에 배출되는 분뇨는 환경을 오염시킨다. 산업형 축산업자의 대량생산과 부의 축적 그리고 자연파괴가 맛있는 치킨의 배경이다. 음식이 넘쳐나도 굶주리는 자가 함께 즐기지 못하는 이유는 저자에 의하면 ‘가난’ 때문이다. 먹을거리가 남아도는 게 아무 소용없다. 

작물 과학자 노먼 볼로그(1914~2009)는 고밀도 재배, 관개, 고성분비료에 잘 적응하는 다수확품종의 곡물을 개발함으로써 생산량의 증대에 기여했다. 그는 기아문제를 해결하는 ‘녹색혁명’에 성공한 공로가 인정되어 1970년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먹을거리 주권과 정의에 대해 강의하면서 농민운동을 해온 저자는 녹색혁명의 이면을 비판한다. 녹색혁명의 전성기(1970~1990) 동안 글로벌 먹을거리의 생산량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굶주리는 사람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녹색혁명은 곡물생산량을 증가시켰으나 곡물가격을 폭락시켰고 농민에게 종자와 화학물질의 값을 감당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녹색혁명 덕분에 자본효율적인 농장은 팽창했지만 수백만 명의 소농 농부들은 농장에서 축출됨으로써 가난해지고 먹고살기 어려워졌다. 불평등이 획기적으로 심화된 것이다. 또한 토지와 자원의 집중, 해충 문제의 증가, 농업생물다양성의 상실, 토양염류화, 대수층의 고갈과 오염, 연약한 열대 토양의 침식 등의 환경 문제도 발생했다. 생산량 증가에 따라 굶주림이 줄었다는 흐름이 발생되지 않았음에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먹을거리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능력’이 아니라 생산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대안을 구축하는 의미의 농업생태학 운동을 제안한다. 신자유주의의 지구화와 긴밀하게 얽힌 산업적 농업은 극소수의 경제적 특권층은 승자의 위치에, 다수의 소규모 자작농과 자연환경은 패자의 위치로 밀어 넣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녹색혁명은 과잉생산에는 성공했지만 굶주림을 해결하지 못했으며 동시에 세계를 파괴하고 있기에 농업생태학적 관행(소규모 농부들이 환경친화적으로 써왔던 방법)으로 전환돼야 한다. 농업생태학 운동은 기업형 먹을거리 지배체제에 반대하고,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며 지속가능한 자연친화적 농법을 추구한다. 또한 토착민 운동, 기후 정의 운동, 여성운동과 같은 진보적인 사회적·경제적 변화를 추구하는 집단들과 단결하여 저항의 힘을 키우고자 한다. 

오늘날 모든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먹을거리가 충분히 생산되고 있지만 전 세계 15억 명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 오백 년, 천 년 후의 인류까지 책임지려는 자연법칙은 인류의 반성과 회개를 촉구하는 회초리를 내려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