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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으로의 초대] 극단 학전 대표 김민기
[지면으로의 초대] 극단 학전 대표 김민기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1.06.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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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12 10:07:31
1994년 5월 첫 공연 이후 2000년 2월 1천 회 공연 기록. 7년 동안 관람 인원 20만 여명. 2000년 1월 1일 이후 저작권료 전액 면제, 작품의 독자성을 인정받음. 방은진, 설경구 등을 비롯한 수많은 연극·뮤지컬 배우들이 배출됨. 한국 뮤지컬 최초의 라이브 연주. 본격적인 형태의 소극장 뮤지컬의 시발점. 매 공연마다 수정·보완되어 총 6가지의 버전이 있음. 2001년 4월 원작의 고향인 독일 초청 공연 및 해외 순회 공연 시작…… 한국 뮤지컬의 새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김민기 번안·연출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써내려간 7년간의 기록이다. 사람처럼 얼굴이 변하고 몸이 자라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 탈선사고 한 번 없이 7년 동안 지하철 1호선을 안전운행 해온 이, 우리가 알고 있는 김민기가 바로 그이다.

시대의 노래를 품고 연극 속으로 걸어들어가다
한국 소극장 시대의 막을 연 학전소극장이 열 돌을 맞았고, 연출가 김민기가 2001년도 백상예술대상 연극 연출부분 대상을 수상했다는 것에서 올해는 여러모로 극단 학전에 의미 있는 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학전이 터를 내린 대학로는 일찍이 육체의 배고픔은 채우지 못하되, 들끓는 열정으로 정신의 허기를 채우던 이들이 하이에나처럼 모여들던, 일종의‘킬리만자로’였다. 다른 지역 사람들조차 동숭동이 어딘지는 몰라도, 서울 연극판이 대학로에 모여있는 줄은 알았다. 언제부터인지 ‘어디에서 벗는다’는 미끼를 입에 문 삐끼들이 대낮에 음란 연극 표를 팔고, 초국적 자본의 패스트푸드점들이 점령해버린,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는’대학로. 싸구려 문화판에 질린 이들에게 조금은 다른 대학로의 문화를 제공해왔다는 것에서 극단 학전이 가진 의미는 남다르다. 여전히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지만, 학전의 뿌리에 김민기가 있다는 사실 또한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김민기. 그를 가수라 해야 할지, 작곡가 혹은 연극연출가라 불러야 할지 난감해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굳이 그런 이름 붙일 것 있느냐고 심상하게 이야기한다.
“정 불러야 하거든 ‘딴따라’정도가 좋겠네요.”
사실 작정하고 한 것은 하나도 없어서 그의 말대로 가수, 작곡가, 연출가 모두 아니기도 하지만, 그가 작곡한 노래들을 통해 한국 대중음악이 몇 계단 올라섰고, 그가 읊조리는 노래에 기대 영혼을 쉬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가 만들어 올린 작품들은 대한민국 연극사를 새로 쓰고 있다.
옛날 이야기를 불편해하는 그의 뜻과는 무관하게, 아직도 많은 이들은 ‘아침이슬’의 김민기를 기억한다. 사람들이, ‘도대체 그 김민기는 어디로 갔느냐’고, 어느 날 말없이 사라져버린 친구를 수소문하듯 화를 내며 찾을 때 그는, 자신도 어쩌지 못할 업처럼 우연찮게 발을 디딘 연극 무대, 끝을 알 수 없는 그 깊고 컴컴한 동굴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걸어들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1994년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원작 독일의 Line 1)’번안, 연출을 시작으로 록오페라 ‘개똥이’, 뮤지컬 ‘의형제’, 2000년 새 버전의 ‘지하철 1호선’까지 그의 작품들은 지금도 대학로를 생생한 뮤지컬로 들썩거리게 하고 있다.
노래를 통해 김민기를 알게 된 사람들에게 ‘연극인 김민기’는 조금 당혹스러운 변화일테지만, 애시당초 그는 옮기고 말 것 없이 늘 그 자리였다. 궁극적으로 그림의 꿈을 꾸고 있는 그에게 있어 노래와 연극은 모두 ‘보이는 세상’을 그려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목적의식적인 계몽성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체질인지라, 노래도 연극도, 세상과 나누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는 다만 주변의 일상을 담담히, 그러나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고 있는 것뿐이다. 하여 일련의 작업들은 우리가 파묻혀 지내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한 군내 나고 팍팍한 일상을 무대 위로 옮겨놓은 것이다. 풍자를 위한 풍자를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들에서 강한 풍자와 현실 비판을 읽을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세상 한 구석도 대충 훑어보지 않는 그의 꼼꼼함 때문이다.

고집스럽게, 문화의 기초발상지를 지키다
이런 그의 눈에, 유럽식 시장바닥 같은 질박함이 흐르는 독일 뮤지컬 ‘Line 1’이 들어오지 않을 리 없었고, 그의 섬세한 손길과 한국의 현실이 맞닿아 ‘한국어로 된 작품을 보면서도 소름이 돋을 수 있다’는 극찬을 본국인 독일에서 얻어낼 수 있었으리라.
“지하철 1호선이 한국과 세계에서 모두 통할 수 있는 이유? 사람은 모두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겠지요.” 인류 사이의 보편성 운운하지 않는, 도무지 꾸미고 거창하게 풀어낼 줄 모르는, 그가 바로 김민기이다.
연극계에서는 ‘재벌극단’으로 통하는 학전에 몇 억원의 빚이 있다는 것은, 그가 연극이라는 끝 모르는 길에 들어섰을 때부터 이미 예정되어 있던 일일지도 모른다, 공연문화라는 것은 애시당초 ‘자본주의문법’과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의 기초발상지는 있어야 하겠기에”그는 대학로를 지키고 있다. 때로, 돈을 줄테니 손을 빌려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그는 한 마디로 거절한다. 꿍꿍이 있는 돈과 한 번 ‘인연’을 맺기 시작하면, 문화란 영 못쓰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를 한 시대의 상징으로 부르며 칭송하기를 서슴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목소리를 내지 않고 무대 뒤편을 서성이는 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도 ‘늘 하던대로’ 그냥 웃고 말뿐이다. 때로는 고집스럽게, 때로는 어리석게, 김민기라는 낮고 깊은 ‘봉우리’는 아직 대학로에 있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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