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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知音)과 소비자
지음(知音)과 소비자
  • 김준영
  • 승인 2021.10.26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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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_김준영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단원

거문고와 관련한 고사로 유명한 것이 '백아절현(伯牙絶絃)'이다. 춘추시대 '백아'라는 거문고 명인에게는 '종자기'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백아의 연주만 듣고도 그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했다고 한다. 그런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자신의 음악을 알아 줄 이가 없어졌다며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을 알아주는 절친한 벗'이라는 뜻의 '지음(知音)'이 여기에서 나왔다.

오늘의 음악가에게는 당치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보다 많은 관객에게 보다 많은 감동을 전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예술가의 책무 일진데, 고작 한 명의 벗을 잃었다고 연주 자체를 놓아버리다니, '프로 정신'이 부족하다 하겠다.

우리는 '프로'를 ‘어떤 일을 전문적이고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으로, '프로 정신'을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본인의 일을 책임지며 끝까지 완수하는 태도' 정도로 인식한다. 자, 그렇다면 '프로 정신'으로 무장한 오늘날 예술가와 관객 모두 행복한 세상이 되었는가?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는 단순히 음악가와 그 친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술을 통한 소통, 아니 어쩌면 인간 사이의 모든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거문고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악기였다. 선비들은 사랑방에 모여 거문고를 타면서 음악을 나누기도 했지만, 거문고를 직접 연주할 줄 모르더라도 하나쯤 구비해 두고 그것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거문고는 음의 지속 시간이 매우 짧아 줄을 한 번 튕기면 금방 그 소리가 사라진다. 이를 두고 옛 선비들은 '음에 욕심이 없다' 여기고 이에 비춰 본인의 사리사욕을 경계했다. 그것은 나아가 '무현금(無絃琴)'의 철학으로 이어진다. 줄 없는 거문고를 통해, 귀에 들리는 소리만이 소리가 아님을 깨닫고 현상 너머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눈을 키웠다. '아마추어' 연주자인 선비들은 음악을 통해 '지음'의 관계 속에서 삶의 지향과 철학을 나누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예술가와 관객의 관계는 어떨까? 최근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성공'에 힘입어 소위 'K콘텐츠'에 대한 기대와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성공'은 상당 부분 '경제적 이윤'을 뜻한다. '한류', 'K-POP',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국악의 대중화', '국악의 세계화' 등 당연한 듯 얘기되는 이 명제들의 공통점 역시 '경제'라 할 수 있다.

BTS의 경제효과가 자동차 제조 기업과 비교된다. 다들 BTS가 되라 하고 제2, 제3의 BTS를 어서 더 만들라 한다. 한류의 저력이 전통문화에 있다고 하면서 국악을 대중화, 세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팔리고 그래야 살아남는다. 그야말로 '세계시장'에 우뚝 서야 한다.

'프로' 예술가라면 그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여기에서 '예술가와 관객'의 관계가 '지음'에서는 멀어지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에 흡수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술가와 관객의 관계에서는 아직 삶과 철학을 나눌 수 있다. 그것이 예술의 존재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에서는 ‘가성비’가 다른 것들을 압도해버린다.

생각해 보면 예술가와 관객뿐 아니라 정치가와 시민, 선생과 학생, 부모와 자식 등 우리 사회의 많은 관계가 '소비자' 중심으로 뭉뚱그려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얼마 전에는 출강하고 있는 학교로부터 '중간강의평가'를 실시한다는 내용의 메일을 받았다. 학기말에 한 번 하던 학생들의 강의평가를 학기 중에도 한 번 더 한다는 것이다. 항목별로 점수화돼 있고 자유 의견도 남길 수 있으니 학생들의 의견 중 가능한 것은 반영하도록 하라는 안내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코로나로 대면 강의에 제약이 있는 상태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 청취하고자 하는 고육책임을 모르지 않으나 그 방식이 이것이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관객 대신 소비자가 있는 사회, 시민 대신 소비자가 있는 사회, 학생 대신 소비자가 있는 사회를 우리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때다.

'소비자'를 '지음'으로 바꿔 갈 때, 우리는 '프로'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소통하고 더 크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백아가 절현(絶絃)한 무현금 소리를 함께 들으면서.

 

김준영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단원 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강사

서울대에서 '여민락과 보허사의 선율 형성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거문고 연주자이자 프로젝트 그룹 '거인아트랩' 대표 및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 출강하며 예술교양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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