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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자리] 도서관 살리기, 책 읽는 문화만들기
[문화의 자리] 도서관 살리기, 책 읽는 문화만들기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1.06.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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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12 09:58:37

책 읽는 사회를 향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도서관콘텐츠확충과 책읽는사회만들기 국민운동’(이하 국민운동)이 지난 6월 2일 출범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문화개혁시민연대(공동대표 도정일), 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 현기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위원장 이수호),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공동의장 박거용), 학교도서관살리기국민연대(상임대표 한상완), 한국도서관협회(회장 이두영), 대한출판문화협회(회장 나춘호), 한국출판인회의(회장 김언호) 8개 단체가 모인 국민운동은 교육·문화·출판계 등 우리 사회의 지식단체들이 함께 모여 문화정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데서 그 의미가 크다.

지난 2월, “도서관 콘텐츠는 무시한 채 도서관 정보화 사업에만 3000억 원을 지원하려는 정부의 계획을 비판”하는 100인의 지식인 선언 후 4월 12일 첫 번째 국민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만 4개월의 준비기간 동안 국민운동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책마련에 고심해왔다. 현재 2002년 예산 확보 운동을 진행중이며 관련법규 개혁, 제작 및 유통 합리화에 이르기까지 공공정책, 시장개혁, 국민운동 부문 3개 사업 분야에서 구체적 목표를 세우고 있다. 100만 서명운동과 국민토론회, 공모전 등을 통해 국민들의 광범위한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다.

국민운동 출범에 함께 해온 도정일 경희대 교수(영문과)는 국민운동의 성격을 한 마디로 ‘우리 사회를 문화 빈곤국의 현실로부터 탈출시키기 위한 시민운동’이라고 말한다. “책 읽지 않는 사회, 冊盲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역대 정부는 문화한국을 줄기차게 주장해왔지만, 문화를 말할 기본 자격조차 없는 곳이 한국이란 나라입니다.”

도서관 없는 ‘이상한’ 나라

국민운동은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책맹 사회’로 규정짓고 있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는 위험사회입니다. 기본이 허약한 사회, 경박하고 천박한 사회, 현대판 愚衆 사회가 됩니다.” 국민운동이 밝힌 출범 목적을 통해 국민운동이 왜 도서관 콘텐츠 확충에 나서려 하는지 알 수 있다. 도서관은 수많은 시대의 지식이 쌓인 보고이자 한 나라의 문화의 수준을 잴 수 있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4백 개의 공공도서관이 있다. 일본 2천 5백 85개, 독일 6천 3백 13개, 미국 8천 9백 46개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이다. 한국도서관협회 통계 자료에 따르면 인구 대비 도서관 수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도서관 없는 나라’에 속한다. 핀란드는 주민 3천명에 공공도서관 하나, 독일은 주민 3천 9백명에 하나 꼴이다. 우리나라는 주민 11만 5천명이 도서관 하나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서울에는 인구 1백만 이상의 밀집지역에 도서관이 하나 뿐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도서와 자료의 부족은 더욱 심각하다. 공공도서관에 가본 이들은 하나같이 ‘읽을 책이 없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전체 공공도서관 1년 도서구입 예산이 2백억 원인데 비해, 미국 하버드대학 도서관의 99년도 도서 구입비가 2백 75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도서관의 콘텐츠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도서관 정보화’에만 치중하는 것은, 그야말로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부산대 김정근 교수(문헌정보학과)는 “지금이라도 도서관 콘텐츠 확충 운동이 시작되어 다행”이라면서, “서양의 경우 탄탄한 종이 도서관을 바탕으로 디지털의 혼란을 극복할 수 있었지만 한국의 경우 종이도서관조차 성공적으로 운영한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모든 것이 디지털로 갈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상황이 우려된다”고 진단한다.

문화 대중화와 지식 공공성의 확보

첨단 산업 육성만이 살길이라는 호들갑 뒤에서 도서관은 계속 방치되어 왔으며, 도서관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지는 하나의 시스템-문화의 대중화, 지식의 공공성 확보, 열린 학문의 가능성-까지 함께 방치되어 왔다. 국민운동의 출범은 지난 해 ‘출판 및 인쇄진흥법(안)’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도서정가제 문제로 혼란에 빠진 출판계의 현실과도 맞물려 있다.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는 출판계의 현실은 곧 우리 지식사회 전반, 문화 전반의 퇴조와 맥을 같이 한다. 출판과 지식기반 전반의 문제들을 사회적인 입장에서 접근해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통된 생각이 이들을 한 자리에 끌어모은 것이다. ‘출판문화의 사회적 공공성 강화’라는 부분과 ‘지식의 공공성’이라는 원칙을 함께 지켜나간다는 차원에서 국민운동이 갖는 의미는 크다 하겠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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