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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석 , 조한욱
이영석 , 조한욱
  • 교수신문
  • 승인 2000.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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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석이 보는 조한욱

엄밀성보다 문학성 뛰어난 문화사학자

조한욱의 번역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는 언어구사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다. ‘고양이 대학살’을 원문과 대조하며 읽었는데, 그의 정확한 이해와 유려한 표현은 번역의 전범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비코에 관한 그의 박사학위 논문의 서문을 읽으며 가슴이 뭉클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본문은 아쉬움을 남겼다. 신문화사적 접근을 통해서 비코의 프랑스 수용 양상을 봄으로써 18세기 프랑스의 지식인 지형도를 그려주길 바랬는데, 사상사적 맥락과 신문화사적 접근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았다. 그것은 조한욱이 신문화사의 의미를 과대평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신문화사는 사회사의 뼈대에 살점을 붙이는 작업이며 살점만으론 역사가 될 수는 없다. 일상적인 삶의 결을 포착할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미시적 시각이 연구대상의 보편성을 매개 없이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런데 조한욱은 신문화사가가 다루는 우연한 사건이 시대의 문법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조한욱의 연구가 신문화사의 탁월한 통찰을 보여주리라 기대하지만, 신문화사의 위상 자체에 대한 그의 고민은 엄밀하다기보다는 문학적이다.


조한욱이 보는 이영석

참을 수 없는 사회사의 무거움 고수하는 완고함

이영석은 국내에서 학위를 받은 서양사 연구자의 이상적인 연구자세를 보여준다. 우리나라 사회현실의 맥락 속에 학문을 자리매김하는 그의 왕성한 연구활동은 유학파의 경박함을 반성하게 한다. 한편, 그의 학자로서의 이력과 학문적 무게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긍정적 통찰을 받아들이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문화를 ‘통해서’ 역사를 보는 시도는 기존의 사회사적 전제에서 벗어나자는 것인데, 미시사가 기존의 사회사로 매개돼야 한다는 그의 견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로서는 사료 선택이 궁극적으론 역사가의 미학적 감각에 의존한다고 생각한다. 미시사가 ‘학문적이라기보다는 문학적’이라는 그의 견해는 우리나라 사학이 사로잡혀 있는 학제적 사고의 단면을 보여준다. 역사의 인과성과 객관성에 대한 요청적 신념은 그와 내가 공유하는 것이지만, 인과성이 역사가의 상상력이라고 말할 때 그의 표현은 다분히 수사적이다. 우리나라의 진지한 사회사학자가 신문화사를 인정하고 기대를 거는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지만, 미시사를 거시사의 대중화를 위한 장식품 내지 보완물로 생각하고 있다는 인상을 떨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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