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존도 경남대 교수 © |
요즘 교육에 관한 코드는 단연 ‘쉽게 쉽게’이다. 어려운 책, 어려운 과목은 학생들이 외면하고 쉬운 책, 쉬운 과목, 쉬운 시험 등이 인기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교수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쉽게 쉽게’를 비판하는 교수는 ‘어려운 과목인데 어떻게 쉽게 가르치라는 말이냐, 인기에 영합하지 않겠다’면서 ‘어렵게 가르치기’를 고수한다. 또 다른 반응은 쉽게 가르치기 위해 강의 내용 중 어려운 것은 다 빼고 쉬운 것만 가르친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상적 강의란 어려운 내용을 쉽게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나의 대학시절 경험으로는 강의가 난해하고 어려워 대학공부란 강의를 통하여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 유학시절 강의를 들으며 대학 공부는 독학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강의 내용의 깊이와 난이도와 상관없이 모든 강의는 명쾌했고 쉽게 이해가 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던 나는 교수가 된 이후로 항상 강의를 쉽게 하려고 노력을 기울이게 됐다. 하지만 쉽게 가르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쉽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야 했고 강의 자료를 특별히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됐으며 강의 방법도 새롭게 설계를 해야만 했다. 매시간 강의를 시작하면서 배울 내용의 쓰임새에 대해 이야기해 주지 않으면 학생들은 집중해 주지 않았다. 학생들은 지식의 효용성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동기부여뿐만 아니라 포괄적 이해와 중심잡기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강의는 대화식으로 진행하려고 노력했다. 논리적 사고를 통해 과학적 현상을 인지하고 이를 합리적으로 해석해나가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지식교육이 아니라 사고교육을 지향하는 방식인데, 합리적 사고는 언어 능력을 필요로 하므로 언어 교육과 커뮤니케이션 교육이 필요했다. 이론 과목이라 하더라도 강의 구성에 연습과 실험을 넣었다. 머리만 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대화하고 직접 풀어보고 실험해 보고 몸을 쓰도록 한 것인데 훨씬 효과가 좋았다.
조별 학습을 시도해 4~5명의 조로 나누고 조원들이 같이 공부하도록 유도했다. 연습, 실험, 또는 숙제를 할 때 조별로 모여서 서로 상의와 토론을 하도록 했다. 조는 반드시 선후배와 남녀학생이 어울릴 수 있도록 헤테로 조합으로 짜 주었다. 그러면 학생 간에 개별지도가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상호작용은 서로에게 도움이 됐다. 대화를 통하여 사고구조 형성이 쉽게 되기 때문이고 학생들은 가르치면서 또한 배우기 때문이었다.
강의에 사이버 공간을 활용했다. 홈페이지에 게시판을 만들어 강의 자료를 올리고 학생들과 대화하는 통로를 만들어서 시도했다. 학기에 두 번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조사를 하면 학생들의 생각이 전부 드러났다. 강의의 좋은 점, 나쁜 점, 제안 사항, 느낌의 네 가지를 물어보고 설문결과는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리고 다음 학기에 개선토록 했다.
내가 가르치는 과목 중, 텐서와 벡터 등 학생들 싫어하는 수학을 많이 필요로 하는 어려운 과목이 있다. 7년 전 처음 개설했을 때는 폐강이 되던 과목이었는데 요즘은 제법 인기가 있다. 설문조사에서 학생들은 ‘빡센(어려운) 과목으로 정평이 나있지만 배우는 것이 많다’, ‘재미있다’, ‘흥미롭다’ 등의 답변을 썼다. 아니 재미있다니.
설문에 답한 학생들 중 반 이상이 그러한 반응을 보여 나도 처음엔 놀랐었다. 학생들도 스스로의 변화에 놀라기도 하고 대견해 하기도 했다. 적절한 동기부여, 지적호기심의 자극, 치밀한 구성, 열의와 관심, 등 강사가 연출가가 되어 적절히 멍석을 깔아주면 학생들은 자신의 감추어진 끼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요즘 학생들의 수학능력이 떨어진다는 한탄의 소리가 들리지만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수학능력보다 교수들의 교수능력이 아닌지. 영양가 없는 이야기라고 핀잔 받을지 모르지만 스승으로서의 역할에 조금 더 관심과 열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