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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대학 명강의: 염무웅 영남대 교수의 '문학과 현대사상’
우리대학 명강의: 염무웅 영남대 교수의 '문학과 현대사상’
  • 남경순
  • 승인 2005.07.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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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체험 듣다보면 어느새 내 문제

 

남경순 (영남대 국어국문학과·4학년)

복수전공과 교직 이수 등의 기회가 확대되면서, 학년이 올라 갈수록 교양과목 수강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또, 인문계열 과목의 수가 줄어들고, 실용교양 과목이 늘어나는 오늘날 현실을 고려해 볼 때, 괜찮은 교양과목 수강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이런 상황에서 이 수업의 가치는 더욱 발한다. 문학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보고, 미래 세계 속 한국, 나의 존재를 찾아가는 수업. 염무웅 교수님의 ‘문학과 현대사상’이다.

“이 수업에 대해서 잘 알고 왔는지 모르겠

▲염무웅 영남대 교수 ©
어. 수업을 신청한 학생들한테는 미안한데, 이 수업이 쉽지만은 않아. 들어보고 ‘아니다’ 싶은 학생은 수강 정정기간 때 정정해.”

조용하면서도 낮은 목소리로 시작된 교수님의 선전포고에도 불구하고 수강정정 후 학생들의 수는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안정된 수업 분위기와 오랜 경험, 그것을 바탕으로 한 교수님의 수업에 대한 무한한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80년대 냉전체제가 붕괴된 이후 우리 사회는 급격한 변화와 더불어 다양한 사상들이 등장했다. “사상은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만들어 지는 것”이라는 교수님의 말씀처럼 이러한 사상에 대한 이해 없이 현대사회를 올바르게 살아갈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문학과 현대사상은 문학 작품의 감상을 통해 현대사상의 윤곽에 접근하는 동시에 그러한 사상의 토대가 되는 한국 현대사의 주요 국면을 심층적으로 점검해 보는 수업이다.

사실, 이 수업에는 특별한 교수법이 없다. 수업 참석이나 과제 제출 여부에 대한 교수님의 특별한 제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양한 교수자료를 이용하는 것도 아니다. 학생들의 발표와 토론이 수업의 핵심적인 과정이라는 교수님의 말씀과 달리, 수업을 하는 교수님의 평소 고민과 삶의 가치관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교수의 비중이 다분히 높은 수업이라 하겠다. 매시간 교수님이 던져주시는 세계 속의 한국, 그 속에 나의 존재에 대한 화두는 이 수업에 대한 매력을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고리이자 이 수업을 지탱해 주는 힘이다.

오랫동안 계간지 ‘창작과 비평’(이하 창비) 편집인과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교수님의 경륜은 수업 중에서도 다분히 드러난다. “1970년대 후반 내가 교수 자리에서 쫓겨나 창비 편집 일을 하고 있을 때 말이지. 제주도 4·3항쟁을 다룬 현기영의 ‘순이 삼촌’을 창비 계간지에 게재할까 말까를 한참 고민했던 적이 있어.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갈 수 있는 중요한 문제였다구. 결국, 작품을 발표하고 현기영 씨가 잡혀가 많은 고문을 당했어. 우리 사회에 똘레랑스 정신이 필요해.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허용하는 그런 사고가 필요하지” 이런 이야기는 교수님의 체험에서 나온 것으로, 어렵고 낯선 주제를 마치 나의 일처럼 느끼게 해준다.

수업은 전반기 ‘동아시아 문제와 시각’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읽고 토론하는데서 시작해 후반기는 문학작품과 제시된 논설의 요약 발표,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수업에서 사용된 글은 기계적으로 암기하는데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주체적으로 소화하는데 있다. 교수님은 이런 과정을 학생들의 발제와 감상문 작성으로 대신하셨다. 과제 중 잘된 부분은 수업 시간에 발표를 시키는데, 학년과 전공이 다양한 학생들의 생각을 비교할 수 있는 이 시간은 자못 흥미롭다.

학생 스스로의 관점에서 주제에 대한 생각을 발표하고, 교수님의 덧붙임과 해설이 진행된다. 동아시아 사회주의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보다 몰락시기가 늦은 이유에 대해 민족성, 발생시기, 경제력 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교수님은 한자문화권을 중심으로 한 문화적 전통과 연대가 그 이유라고 말하며, 나아가 ‘EU와 같은 동아시아 연대는 불가능한가’라는 의문과 함께 아시아 침략 경험이 있는 오늘날 일본의 반성을 과제로 남기기도 했다.

또, 6·25를 배경으로 한 소설 ’장마‘ 감상문을 통해 6·25를 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과거 희생자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줬다. 여기서 교수님의 역할은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자유로운 생각을 열린 분위기에서 토론할 수 있도록 하는 길잡이 역할에 있다.

수업에서 또 다른 특징은 매시간 시사적인 내용을 언급한다는 것이다. “어떤 주제를 다루더라도 그 현상을 이해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없지. 시사적인 사건도 역사의 한 흐름이고 그것을 알았을 때 더 큰 것을 볼 수 있어.”

이것이 평소 교수님의 지론이다. 당시 ‘장쩌민의 사임’이나 ‘한일국교정상화 40주년 한일합동 포럼’ 등을 수업시간에 다루면서 다양한 시각으로 살펴봤던 기억이 난다. 북한 핵 개발 의혹에 관련해 교수님은 찬성, 반대라는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자국의 이익을 진행되고 있는 오늘날 핵개발의 문제, 북한이 핵 개발에 관심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 우리의 역할 등 다양한 시각에서 살펴봤었다.

문학과 현대사상은 문학과 사회에 고루 조예가 깊으신 2~3명의 교수님만이 가르치는 과목이다. 개설 강좌가 그리 많지도 않다. “인류가 공멸하지 않고 공생하기 위한 길, 거기서 동이사아와 한반도가 주목받는 이유를 사상과 문학작품을 통해 가르치려고 했다”라는 교수님의 말씀. 다소 지루하고 어려울 수도 있으나 우리가 한번쯤은 고민해 봐야할 주제로 구성되어지는 것만큼 결코 지루할 수 없다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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