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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교협 금강산 총회 현장 르포
민교협 금강산 총회 현장 르포
  • 김조영혜 기자
  • 승인 2005.06.29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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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교협의 민주화를 위하여” 건배·건배·건배…主客이 顚倒돼서야

장면 1. 내부토론회 ‘우리시대 진보적 지식인은 무엇을 할 것인가’

“씨발, 난 이거 아니라고 봐요. 6·15 정상 회담 때 남북 정상이 손 흔들 때, 우리가 북한의 노동자 계급을 만나봤냐는 거야. 그걸 안 하고서 민족, 통일을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난.”

지난 19일 금강산 해금강호텔 세미나실에서 열린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상임회장 김세균 서울대 정치학과, 이하 민교협)의 내부 토론회의 한 장면이다.
얼큰하게 취한 ㅇ교수가 ‘우리시대 진보적 지식인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자료집에 실린 발제문과는 다소 상이한 이야기를 화두로 꺼냈다. 북측 땅인 금강산에 민교협 교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남측의 민족통일운동의 방식에 대한 나름의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ㅇ 교수는 이어 “금강산 관광은 현대라는 기업자본과 김정일 자본의 합작품이며, 민족이라는 미사여구로 넘어가기에는 북측도 상업주의에 이미 물들어있다”라며 “통일은 남북의 정상들이 손을 흔들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북측 노동자계급, 남측 노동자계급이 만날 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발제의 요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욕설이 섞인 발제 방식이었다.

앞서 발제를 맡았던 강정구 동국대 교수(사회학)는 “교수님이 이 정도로까지 말씀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민족운동의 진영에서, ㅇ 교수님은 민중운동의 관점에서 진보적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말씀하는 줄 알았는데, 좀 심하시네요”라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당황하기는 사회자인 장임원 전 중앙대 교수(의학)도 마찬가지였다.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청중석으로 마이크를 돌리려던 사회자는 발언에 나서는 교수가 없자, “젊은 교수들 가운데 의견을 듣자”는 원로교수인 ㅂ 교수의 제안에 따라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어독문학)를 지정해 마이크를 넘겼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토론 진행이 아닌 선배 교수가 후배 교수를 지정해 발언을 강요하는 방식에 따라 얼떨결에 마이크를 넘겨받은 김누리 교수도 당황스런 표정이었다.

잠시 마이크를 거절했던 김 교수는 두 교수의 발제에 대해 “현실감이 떨어진다”라고 일갈한 후 “민족과 자본의 공세가 집요하고 치밀해지는 데 비해 그에 대한 대응은 정서적, 감상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를 해결하는 것이 젊은 세대의 숙제”라고 말했다. 해묵은 사회구성체 논쟁을 넘어서지 못하는 두 중진 교수의 발제에 대한 질책 섞인 비판이었다.

이후 논쟁이 가속화되면서 통일운동에 몸담았던 ㅇ 퇴임교수는 사회자의 발언권을 얻지도 않은 채 발언을 시작하고도 민족통일 운동의 중요성에 대해 재차 설명하다 발언 시간을 초과해 사회자의 제재를 받고도 마이크를 놓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장시기 동국대 교수(영어영문학)는 “‘진보’도 서구적 개념으로 비서구 국가의 진보란 개념을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대립에서 찾는 이분법적 시각을 버려야 한다”라며 “여성, 환경, 생태 등에 진보의 주안점을 두는 학자들도 많다.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주장 보다는 유연한 연대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동진 경북대 교수(사회학)는 “금강산 관광이 현대 자본과 북한 자본의 결합이라 하더라도 자본마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좋았겠는가, 자본주의의 총체적 문제가 있듯이 사회주의에서도 문제가 있다. 다원적 문제에 대한 전선이 명확하지 않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발제를 맡은 ㅇ 교수는 “글로 답변을 제출하겠다”라고 말해, 민교협의 내부 토론회는 문제만 제기된 채 생산적인 토론없이 서둘러 막을 내리고 말았다.

 

장면 2. 금강원 만찬

“내 밑으로 다 빳다를 쳐야 해, 후배 교수놈들.”

민교협 금강산 총회 이틀째인 지난 20일, 금강원에서 저녁식사로 북한식 요리를 즐기며 술자리가 이어졌다. 그러나 술이 과한 교수들의 망언도 이어졌다.

오전 구룡연 산행 후부터 낮술을 즐겼던 교수들이 술에 취하면서 저녁 식사 자리는 술자리로 변했고 어수선함이 감돌았다. 특히 구룡연 산행을 서둘러 마치고 일찌감치 산자락에서 술자리를 폈던 교수들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또다시 술자리를 이어갔다. 게다가 삼일포 관광과 평양 교예단 공연 등 정해진 일정마저 무시하고 온정각 근처에서 웃통을 벗어제끼고 술을 마셨던 교수들은 이미 취할 대로 취한 상태였다.

김세균 상임회장이 식사 시작과 함께, 건배를 제의하려 일어섰으나 술에 취한 ㅇ퇴임 교수가 정년퇴임을 앞둔 ㅎ 교수에게 바톤을 넘기면서 어수선한 분위기는 증폭됐다. 특히 ㅎ 교수는 “내 밑의 교수놈들 다 엎드려 뻗쳐 하고 빳다를 쳐야 해, 후배 교수놈들”이라고 말해 식사 중이던 몇몇 교수들의 얼굴을 붉히게 했다.

술이 과한 老 교수들의 행동에 유제호 전북대 교수(불어불문학과)는 “우리가 조폭입니까. 교수끼리 형·아우가 어디 있습니까”라며 반박하기도 했다. 유초하 충북대 교수(철학)는 술취한 몇몇 교수들에게 전임 의장의 권한으로 “앉으라”고 말했으나 이 발언이 불씨가 돼 신·구 교수간 시비가 붙기도 했다. 

북측 식당 안내원 등이 바라보는 자리에서 벌어진 교수들의 민망한 모습들은 한 시간여 가량 이어졌으며, 老 교수들의 행태에 몇몇 교수들의 볼멘소리도 이어졌다. 장임원 전 중앙대 교수는 “민교협의 민주화를 위하여” 건배를 제의하기도 했으나 사태 수습은 어려웠다. 민주화를 위해 모인 전국의 교수들이, 조직 내의 민주화를 얼마나 소홀히 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에 대해 유제호 교수는 “교수사회 잘못된 술문화와 형동생 문화가 빚은 해프닝”이라며 “민교협이 금강산까지 온 것은 뜻깊은 자리에서 총회를 갖고 그 의미를 되새기자는 것인데, 관광과 술자리가 우선시 되는 주객이 전도된 사태가 벌어졌다”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장면 3. 총회

민교협 정체성 논란…중앙과 지부 연계 활성화해야
 
만찬 이후에도 술에 취한 몇몇 교수들의 행패는 계속됐다. 전날 발제를 맡았던 ㅇ 교수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 장임원 교수가 “우리 중심을 지킵시다, 흔들리지 맙시다”라고 여러 차례 경고하기도 했다.

당초 해금강 호텔 세미나실에서 치룰 예정이었던 민교협 제18기 총회도 술자리가 난동으로 이어지는 바람에 자리를 옮겨 금강산 호텔 앞 풀밭에서 열렸다. 몇몇 교수들은 이렇게 된 마당에 총회를 취소하자는 의견을 보이기도 했지만, 총회를 위해 금강산에서 모인 대의를 져버리지는 않았다.

민중의례로 시작된 총회는 지역 지부별 활동 보고로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이민환 부산대 교수(음악학)은 전임 부산울산경남지부장인 고순희 부경대 교수를 언급하며 “여성 지부장이 부울경 지부를 이끌며 회원들의 화합과 활발한 활동을 이끌어 냈다. 타 지역에도 여성 지부장 선출해 주저하지 말라”라고 말해 교수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고순희 지부장이 사임한 현재, 민교협에는 여성 지부장이 한 명도 없는 실정이다.

계명문화대학, 대구보건대학 등 사학 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구경북지부에서는 김석진 지부장(경북대 경영학)이 계명문화대학 교수협의회 회장 복직, 대구대 총장 사표 제출 등의 경과를 보고했다. 또, 포항에 위치한 한동대와 대구의 대구보건대학 등에 민교협 지부가 건설될 계획을 알리기도 했다. 김석진 교수는 “대구경북지역 민교협 회원 중에 총장 등 보직교수들이 배출되면서 이른바 ‘승자의 저주’라 불리는 사태가 벌어졌다”라며 “전임 민교협 지부장이 탈퇴를 선언하는 등 많은 교수들이 민교협의 정체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유제호 전북지회장(전북대 불어불문학과)은 “전북지역의 민교협 활동은 관성적으로 명맥만 이어가고 있는 현실”이라며 “일부 대학 총장선거에서 민교협 교수간의 갈등이 빚어지는 등 민족진영, 민중진영 간의 조직 갈등이 심각하다. 또, 민교협과 교수노조 간의 관계정립에 대해서도 민교협이 장기적으로 교수노조에 편입돼야 하는 게 아니냐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병운 부산대 교수(국어교육학)는 민교협 명의의 성명서 제출시 회원들의 동의를 얻었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또, 추진 중인 (가칭)‘평화와 진보를 위한 아시아 교수연대’와 관련해 “중앙집행부가 대외적 활동에 힘쓰는 것보다 지회를 중심으로 지역별, 대학별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총회가 끝나갈 무렵, 어슴프레 해가 지면서 술에 취해 잠들었던 만찬 자리에서 난동을 부렸던 ㅇ 교수가 일어나 발언권을 얻지도 않고 발언을 하려다 장임원 교수 등에게 제재를 당했다. 활동 보고 중이었던 한준 사무처장(연세대 사회학)은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보고를 끝마쳤다.

이번 총회에서는 새 집행부 선출은 이뤄지지 않았으며 현 집행부의 연임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신임 집행부 선출에 대한 의견이 미리 조율되지 않아, 잠시 혼선을 빚기도 했다. 신임 집행부 선출을 위해서는 총회 전 사전 입후보 등의 절차가 필요한데, 과정을 밟지 않은데다가 현 집행부가 연임할 것을 상정하고 회원들에게 별다른 통보를 하지 않은 것이 탈이었다. 총회에서는 “아예 집행부의 임기를 2년으로 늘리자”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으나 본격적인 토론으로 이어지지는 못 했다.

또 민교협의 활동 방식과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공유하지 못한 채 시간에 쫓겨 총회를 마무리 지었다. 이미 날이 저물어 서로의 얼굴을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총회를 지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북측 땅 금강산에서 열렸던 제18기 민교협 총회와 내부 토론회는 북녘 땅에서 뜻깊은 의미를 되새기자는 당초 취지는 무색하게 술로 主客이 顚倒되는 상황에서 마무리됐다. 금강산 관광과 내부 토론회, 총회 등 빡빡한 일정마저 몇몇 교수의 술타령으로 수순을 밟지 못하고 말았다.

특히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교수들의 작태는 북측 관광지라는 특성상, 북측 안내원, 남측 관광객, 현대 아산 직원 등이 보는 틈에서 벌어져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접근성이 용이한 대도시에서 총회를 개최하지 않고 굳이 금강산에까지 가서 총회를 계획한 민교협 집행부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김조영혜 기자 kimj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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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다가 2005-06-29 22:30:47
공부하기는 싫은데 그것을 사회민주화 내지는 정의라는 명분으로 포장해 자신의 나태함을 감추려는 자들,
그러면서도 학내와 학외에서 어떻게 자리라도 하나 차지해보려고 기웃거리는 자들,
술 퍼먹고 게기기 좋아하면서 그걸 남자다움으로 아는 마초들과 그걸 사회성이 높은 것으로 착각하는 자들,
이런 자들의 모임이 민교협인데, 기자 양반이 그걸 몰랐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