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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 누가 ‘경희궁의 아침’을 반기나
[신문로 세평] 누가 ‘경희궁의 아침’을 반기나
  • 성염 서강대
  • 승인 2001.06.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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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11 18:07:52
성 염
서강대 ·철학

지난 5월 26일 신록이 한껏 푸르른 지리산 달궁에서는 한국 7개 종단이 참석한 가운데 ‘생명평화 민족화해 지리산 위령제’가 열리고 있었다. 이 행사는 지난 2월부터 실상사 주지 도법 스님의 주창으로 1백일 동안 그 절에서 바쳐온 遷度祭를 매듭짓는 자리이기도 했다. 50여년전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지리산 일대에서 숨진 민간인, 군경, 빨치산 희생자들의 고혼을 달래는 위령제는 남한의 가장 크고 아름다운 지리산을 찾는 산사람들에게 주는 소리없던 중압감, 그 아름다운 골골에 서린 죽음의 냄새와 원혼들의 냉기에서 느껴지는 역사적 양심의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은 씻김굿이었다고 할까? 참전군인 한 사람이 “지리산에서 숨진 영혼들을 위로하고, 함께 죽어간 꽃들과 나무들과 짐승들에게 용서를 청한다”는 말은 그 자리의 산악인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6월의 산하는 저토록 푸르건만 우리 겨레에게는 해묵은 생채기를 되살리는 가슴 아픈 계절이기도 하다. 해방과 더불어 미국과 소련이 전염시킨 죽음의 이데올로기, 황석영씨의 근자 소설에 묘사된 ‘손님’이 남북 지도자들의 골수를 파먹고 들어가자, 이북의 사회주의가 자행한 얘기를 빼더라도, 남한에서만도 한라산과 지리산에서, 또 한국전쟁 중에는 전국토에서 단군의 개국이래 가장 많은 동포가 살육된 참화를 입었다. 미국이 2차세계대전의 잉여 폭탄을 모조리 쏟아붓는 바람에 포탄이 작열하지 않은 산과 숲이 이 강산 어디에도 없었고, 등성이와 골짜기, 마을과 시가지, 시체가 나뒹굴지 않은 땅이 있었던가. 연합군 사령관이 38선 이북에는 단 한 그루의 나무도, 단 한 채의 건물도 “똑바로 서 있지 않았다”고 미의회에 자랑스럽게 보고했다는 말처럼 이 강산을 철저하게 초토화했었다.

무려 반세기의 세월이 흐르고 포탄과 화염으로 벌겋게 벗겨진 민둥산이 제법 초목으로 푸르게 덮였건만 여전히 우리는 생명을 보전하기보다는 파괴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우리가 공부했고 가르치고 연구하는 전문지식이 경제적 담론 앞에 얼마나 설득력을 갖는지 갈수록 자괴감을 갖는다. 동강과 그 계곡이 물속에 잠길 참에 그래도 국민의 저항으로 간신히 침수를 모면하였지만, ‘징게맹경외에밋들’을 닮아 넓디나 넓은 새만금 갯펄은 결국 경제와 정치논리에 밀려 간척사업이 강행되기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환경전쟁을, 경제적 이익을 앞세워 자연환경을 초토화하는 전쟁을 목격하는 느낌이다.

규제개혁을 핑계로 거의 모든 그린벨트가 풀리고 있고, 읍이든 도시든 난데없는 ‘나홀로 아파트’들이 산자락에 자리잡아 녹색스카이라인을 지워버리는 중이다. 하기사 요즘 환경보전을 외치지 않는 정치인과 정당이 어디 있으며, 그린 디자인을 내세우지 않는 기업이 어디 있던가? 하지만 서울에서 필자가 간여하는 환경운동의 시야에서만 보더라도, 북한산·도봉산을 고층아파트들이 철갑처럼 에워싸는 중이고, 우이동 계곡에 고층아파트들이 꿈틀거리며, 미아리에서 의정부에 이르기까지 도로변에서 북한산과 도봉산을 조망하도록 설정되어 왔던 미관지구가 모조리 풀려나갔다. 수년내에 우리는 도봉로에서 이 명산들을 결코 바라보지 못할 것이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차이는 그림의 여백에 있다. 도봉산과 북한산만 하더라도 자연경관보호와 시민전부를 위하여 조망권을 설정하는 도시행정의 ‘여백의 문화’가 아쉽다.

불란서 사상가 떼이야르 드 샤르댕은 지구에서만 볼 적에도 1백50억년의 진화의 축이 인류를 꽃피우기 위해서 산고를 겪어 왔고, 지금은 지구가 꽃피워낸 인간들에게 지구 자체의 운명을 맡기고 있다고 하였다. 예수회 신부였던 그는 고비사막에서 미사를 올리면서 지평선에 떠오르는 태양을 두 손에 받쳐들고 삼라만상을 대표하는 제관으로서 제사를 바쳤노라고 일기에 기록하였다. 그는 인간이 자연을 지키면 자연은 인간을 살려주리라고 예감하였다.

안타까운 것은 그래도 과거와 미래라는 넓은 전망에서 자연과 환경을 바라봄직한 우리 지식인 대다수의 침묵과 방관이다. 오히려 내수동의 ‘경희궁의 아침’을 낙찰받는데 앞장서고 평창동의 고층아파트 건립을 추진하는 등 생명과 환경 파괴의 수혜자로 변신하지나 않는지 저어된다. 검찰, 교수, 언론인이 바로서지 못하는 사회는 늘상 갈지자 걸음으로 허둥된다는 사회학자 뢰프케의 말이 있지만, 우이동 1번지에 성원아파트라는 괴물을 세운 사람들도 검찰, 교수, 언론인들의 주택조합이었다! 황량하게 파괴된 자연과 삭막한 생활환경을 후손에게 물려줄 때에 우리가 받을 역사의 손가락질이 두렵다. 그때에 올려질 씻김굿도 죽어간 자연과 생명을 되살려내지는 못할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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