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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국립대 이춘우 교수, '사물의 시인' 프랑시스 퐁주의 '비누' 번역 출간
경상국립대 이춘우 교수, '사물의 시인' 프랑시스 퐁주의 '비누' 번역 출간
  • 이승주
  • 승인 2021.10.18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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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누를 발견한 기쁨뿐만 아니라, 우리 정신의 때를 벗겨주기를 기대

 경상국립대학교(GNU·총장 권순기) 인문대학 불어불문학과 이춘우 교수가 20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시인인 프랑시스 퐁주(Francis Ponge, 1899-1988)의 ≪비누≫(읻다, 292쪽, 1만 3500원)를 번역 출간했다.

이춘우 교수와 시집 ≪비누≫의 표지
▲이춘우 교수와 시집 ≪비누≫의 표지

 ≪사물의 편≫(1942)에서 조약돌, 빵, 오렌지, 달팽이 같은 평범한 사물들을 소재로 하여 사물에 대한 집요한 관찰과 묘사를 바탕으로 독특한 사물의 미학을 보여 주었던 퐁주는 ‘비누(Le savon)’라는 하나의 사물에만 집중하여 20여 년에 걸쳐 작성했던 시작 노트를 1967년에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간행하였다.

 첫 시집 ≪사물의 편≫의 마지막 시 ‘조약돌(Le galet)’〉에서 조약돌을 중심으로 우주 발생론적 관점에서 지구의 탄생과 변화라는 서사시적 경향을 보여주었던 그는, 물과의 친연성, 그리고 형태에서 조약돌과 매우 유사한 비누를 통해서 시의 탄생과 소멸, 그리고 시의 유희적·도덕적 기능 등 문학에 대한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수십 년에 걸쳐 비누를 응시하고, 만지고, 방치하고, 함께 비비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시인의 말 또한 비누 거품처럼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부풀어 올랐다가 되돌아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퐁주는 강연용 원고를 더하거나 희곡으로 설명을 대신하기도 한다.

 또한 시각적 텍스트, 일기와 함께 부록에 실린 프로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로 수다스러운 비누에 대적할 만한 푸가적 텍스트를 시도한다.

 퐁주는 시를 대상(objet)과 주체(je) 사이의 놀이(jeu)인 ‘대상놀이(objeu)’로, 또한 이 놀이가 주는 기쁨(joie) 때문에 ‘대상기쁨(objoie)’으로 파악한다. 그는, 비누와의 놀이로 탄생할 비누에 대한 시가 비누에 대한 발견의 기쁨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의 때를 벗겨주기를 기대한다. 비눗갑에 놓여 있는 비누가 약간의 물과 공기만 있으면 언제든 활성화되어 세척의 기쁨을 안겨 주듯이, 서재에 꽂혀 있는 ≪비누≫는 약간의 독서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독자의 정신을 말끔하게 세척해 줄 것이다. 독자들은 이 지적 세척을 통해 진정한 자기 자신과 세계와 대면하게 될 것이다.

 파리3대학에서 프랑시스 퐁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춘우 교수의 번역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이 작품은, 이전에 번역 소개된 ≪사물의 편≫을 흥미롭게 읽은 독자들뿐만 아니라, 퐁주를 몰랐지만, 인간을 편드는 시들에 식상함을 느껴 새로운 시를 원하고 있던 독자들에게 신선한 발견의 기쁨을 선사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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