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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61] 대학에 혼돈을 조직했던 기 디보르와 상황주의들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61] 대학에 혼돈을 조직했던 기 디보르와 상황주의들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 승인 2021.10.18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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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디보르
기 디보르=위키피디아
기 디보르=위키미디어

1968년 5월과 6월 사이 프랑스에서 두드러진 아나키즘 그룹은 상황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다다, 초현실주의 및 좌파의 영향을 받은 소규모 아방가르드 예술가 및 지식인 그룹으로 처음에는 결성됐다. 시와 음악을 융합하고 도시 경관을 변화시키려는 전후의 ‘국제 레트리스트’(Lettrist International)는 1957년 <국제 상황주의자>(Situationniste Internationale)라는 잡지를 창간한 그룹의 전신이었다. 문자주의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레트리스트의 레터리즘은 구체시(Concrete poem)와 관련된 것으로, 단어의 의미를 거부하고 독립된 단위로서 문자 사용을 특징으로 하는 문학과 미술 운동이었다.
상황주의자들은 예술의 대체에 관심을 가졌다. 즉 그들 이전의 다다이스트나 초현실주의자들처럼 예술과 문화를 분리된 활동으로 범주화하는 것을 거부하고 그것들을 일상생활의 일부로 변형시키고자 했다. 그들은 레트리스트들과 마찬가지로 노동에 반대하고 완전한 오락을 원했다. 그들에 의하면 자본주의하에서 사람들의 창의성은 방해되고 억압되며, 사회는 배우와 관객, 생산자와 소비자로 나누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것을 그만 두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노동을 지옥으로, 지루함을 지옥으로 보내라고 했다. 영원한 축제를 만들고 건설하라고 했다. 

 

기 디보르와 상황주의

아스게르 요른
아스게르 요른=위키피디아

처음에 운동은 주로 예술가들로 구성되었으며, 그중에서 덴마크의 화가인 아스게르 요른(Asger Jorn, 1914~1973)이 가장 두드러졌다. 그는 미술작품을 복제하여 그 일부를 지운 다음 다시 그 위에 그림을 그려 독창성이라는 것을 거부했다. 상황주의의 이론은 기 드보르(Guy Debord, 1931~1994)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국제 레트리스트’에 참여했으며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1962년부터 상황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비판을 문화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측면에 점차적으로 적용했다. 상황주의자들은 다른 종류의 혁명을 원했다. 그들은 상상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시와 예술이 모든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기를 원했다.

아나키즘 잡지 <사회주의냐 야만이냐>(Socialisme ou Barbaric)에서 영감을 얻은 상황주의자들은 특히 제1인터내셔널 시대의 아나키즘 운동의 역사를 재발견하고 1920년대 러시아의 크론시타트(Kronstadt) 반란과 마흐노파(Makhnovists) 반란 그리고 1930년대 후반의 스페인 내란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그들은 자본주의적 관료사회를 비판하고 노동자평의회를 옹호했다. 그러나 그들은 완전한 아나키스트가 아니었고, 특히 일상생활의 소외에 대한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의 비판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적 요소를 유지했다.

그들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혁명 운동이 대다수의 임금 노동자를 포함하는 '확대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지도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또한 추종자도 지도자도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도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소수를 축출함으로써 이견을 다루는 엘리트주의적 전위 집단으로 남았다. 그들은 최대의 쾌락을 가져오기 위해 세계적인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기대했다.

1967년 말, <스펙타클의 사회>(La société du spectacle)에서 기 드보르와 <일상생활의 혁명>(Traité de savoir-vivre à l’usage des jeunes générations)에서 라울 바네겜(Raoul Vaneigem, 1934~)은 1968년 학생 항쟁 당시 프랑스에 널리 영향을 미친 상황주의 이론의 가장 정교한 설명을 제시했다. ‘노동하지 마라’, 같은 파리의 벽에 낙서된 가장 유명한 슬로건의 대부분은 그들의 저술에서 나왔다. ‘국제 상황주의자’ 회원들은 상설 회의로 열리는 소르본대학의 점거위원회에서 낭테르대학의 진보파와 협력했다. 

 

자본주의 사회와 스펙타클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위키피디아

스트라스부르, 낭트, 보르도의 진보파들도 상황주의자에 자극되어 대학에 ‘혼돈을 조직’하고자 했다. 그러나 활동적인 사상가는 12명을 넘지 않았다. 그들의 분석에서 상황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모든 관계를 거래로 바꾸었고 삶은 '스펙터클'로 축소되었다고 주장했다. 스펙타클은 그들 이론의 핵심 개념이었다. 여러 면에서 그들은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에서 발전된 소외에 대한 견해를 새롭게 만들었다.

노동자는 자신의 생산물과 동료 노동자들로부터 소외되고 낯선 세계에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세계에서 노동자는 자신과 무관한 힘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산의 성공, 그것의 풍요는 생산자에게 소유의 풍요를 돌아가게 한다. 노동자의 소외된 산물들이 축적되면서 세계의 모든 시간과 공간은 노동자에게 낯설게 된다. 분업과 전문화의 증가는 노동을 의미 없는 고된 노동으로 바꾸어 놓는다. 바네겜은 “컨베이어 벨트에서는 창의성의 캐리커처를 기대하는 것조차 힘들다”라고 말한다. 

그들이 마르크스 이론에 추가한 것은, 자본주의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보장하기 위해 '사이비 욕구'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의식은 생산 지점에서 결정된다고 말하는 대신 소비 지점에서 발생했다고 보는 그들에게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소비사회, '스펙타클한' 상품 소비사회였다. 오랫동안 생산자로서 극도의 멸시를 받아온 노동자는 이제 소비자로서 아낌없는 구애와 유혹을 받는다.

동시에 현대 기술은 자연적 소외(자연에 대한 생존을 위한 투쟁), 주인과 노예의 위계질서를 유지시키는 사회적 소외를 종식시켜 사람들은 수동적 대상처럼 취급된다. 존재를 소유로 격하시킨 후에 스펙타클의 사회는 더 나아가 소유를 외양으로 변형시킨다. 그 결과 문화적 빈곤과 경제적 부, 있는 것과 될 수 있는 것 사이의 끔찍한 대조가 나타난다. 바네겜은 “우리가 굶어 죽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 세상을 원하는가, 지루해 죽을 위험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상황주의자들의 탈출구는 먼 혁명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일상을 재창조하는 것이었다. 지금 세상의 인식을 바꾸는 것과 사회의 구조를 바꾸는 것은 같은 것이었다. 자신을 해방함으로써 권력 관계를 변화시키고 따라서 사회를 변화시킨다고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고와 행동의 관습적 방식에서 사람들을 벗어나게 하기 위해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질서를 파괴하는 새로운 상황을 구성하려고 시도했다. 석화된 삶 대신에 그들은 파생(행위와 만남의 흐름과 함께)과 우회(사건과 이미지의 경로 변경)를 추구했다. 그들은 날조된 구경거리와 상품 경제를 파괴하는 방법으로 기물 파손, 비공인파업 및 방해 공작을 지원했다. 그러한 거부의 제스추어는 창의성의 표시로 간주되었다. SI의 역할은 대중에게 그들이 이미 암묵적으로 하고 있는 일을 분명히 하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혁명 과정에서 촉매 역할을 하고자 했다. 일단 혁명이 진행되면 SI는 하나의 그룹으로 사라질 것이다. 스펙타클의 사회 대신 상황주의자들은 회폐, 상품 생산, 임금노동, 계급, 사유재산, 국가가 없는 코뮤니즘 사회를 제안했다. 사이비 욕구는 현실적 욕망으로 대체될 것이며 이윤의 경제는 쾌락의 경제가 될 것이다. 분업과 일과 놀이의 적대감은 극복될 것이다. 그것은 주도되고 희생하고 역할을 수행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특징인 자유로운 놀이에 대한 사랑에 기반을 둔 사회일 것이다.

 

상황주의자가 상상한 정치 그리고 아나키즘

파리 코뮌=위키미디어
파리 코뮌=위키미디어

무엇보다 모든 개인이 삶의 매 순간 재건에 적극적이고 의식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 그들은 모든 개인이 자기 삶의 상황을 구성하고 자신의 잠재력을 발산하며 자신의 즐거움을 얻어야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상황주의자라고 불렀다. 미래 사회의 기본 단위로 '주권을 갖는 평민 평의회가 기업과 이웃에 존재해야 한다고 믿었다. 아나키 코뮤니스트의 코뮌과 마찬가지로 평의회는 직접 민주주의의 한 형태를 실행하고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주요 결정을 내리고 집행한다.

대의원은 위임을 받고 소환될 수 있다. 그러면 평의회는 지역적으로, 국가적으로, 국제적으로 연대할 것이다. '국가와 모든 종류의 소외된 집단의 구체적인 초월'을 요구하고 코뮤니스트 사회에 대한 비전에서 상황주의자들은 아나키스트에 가장 가깝다. 그들은 권위주의적 구조와 관료제에 대한 공격에서 바쿠닌을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기 드보르는 '아나키즘이 1936년 [스페인에서] 사회혁명과 프롤레타리아 권력에 대한 가장 진보된 개략도를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상황주의자들은 배타적 집단으로서의 엘리트주의와 이론과 실천의 일관성에 대한 최우선적인 관심에서 전통적인 아나키즘과는 다르다. 프롤레타리아트를 유일한 혁명계급으로 협소하게 주장하면서 그들은 다른 사회 집단, 특히 학생들의 혁명적 잠재력을 간과했다. 그들은 또한 3월 운동과 같은 '자발주의자'임을 부인했고, 노동자들에게 부과된 또 다른 제한적 이념이라고 주장하는 한 아나키즘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했다.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날카롭게 비판했어도 상황주의자들은 전후 프랑스에서 일시적인 경제 호황을 자본주의 사회의 영구적인 경향으로 잘못 인식했다. 경제적 풍요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이제 매우 낙관적인 것으로 보인다. 선진 산업사회에서는 저생산뿐 아니라 저소비도 계속되고 있다. 지구의 많은 지역, 특히 남반구에서는 사회적 소외는 고사하고 소위 '자연적 소외'가 아직 극복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주의자들은 현대 문화에 대한 비판, 창의성에 대한 찬사, 일상생활의 즉각적인 변형에 대한 강조를 통해 아나키스트 이론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SI 그룹은 전술에 대한 격렬한 논쟁 끝에 1972년에 해체되었지만 그들의 아이디어는 계속해서 아나키스트와 페미니스트 서클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고 때로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펑크 록의 스타일과 내용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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