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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종족과 민족』(김광억 외 지음, 아카넷 刊, 508쪽, 2005)
화제의 책: 『종족과 민족』(김광억 외 지음, 아카넷 刊, 508쪽, 2005)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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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족성 박람회

미국의 사회학자들은, 사회적 갈등을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과정에 따른 계층화와 구조화가 가져오는 필연적인 결과로 인식함으로써 사회병리학적 접근을 통해 사회학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이것은 곧 그리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의 문제는 다민족 혹은 다인종으로 이루어진 복합 국가가 지니는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성격에 기인한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한국은 단일민족의 신화가 강하지만, 외국 노동자 유입, 국제결혼, 외국기업 국내진출, 우리의 해외진출로 일상생활의 범주가 다민족화되었다는 진단은 이제 일반적이다. 이것이 전 계층으로 확장되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다.

종족의 문제를 핵심적으로 다루는 인류학이 중요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인류학은 종족문화론을 구축함으로써 현대사회의 다민족적 환경에 대한 심층적 시각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출간된 ‘종족과 민족-그 단일과 보편의 신화를 넘어서’는 국내 인류학자 10명이 종족성(ethnicity) 문제를 가지고 지난 몇 년간 씨름한 결과물이다. 종족성 연구의 이론적 시각들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종합적으로 점검한 총론에 이어 일본과 홍콩, 시베리아, 동남아시아, 중남미, 남아시아, 아프리카, 서남태평장, 서유럽, 미국 등 지구상의 다양한 사회의 종족문제를 다룬 논문 10편을 싣고 있다.

1부에서는 피지, 나이지리아 등의 소수민족들이 정치·경제적으로 억압되었다가 종족성을 회복하고, 그것을 탈식민을 위한 전략적 자원으로 이용하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2부에서는 근대국가의 형성과정에서 종족성의 변주를 보여주는데 멕시코가 메스띠소를 새로운 국가의 문화적 상징의 핵심으로 채택함으로써 다양한 인종적 범주와 문화적 전통의 혼합으로 민족 정체성을 발명하는 과정을 논하는 식이다. 3부에서는 ‘일상’ 속의 종족성을 다루는데, 미국사회에서 이뤄지는 민족 간의 계층적 질서 확립, 말레이시아 무슬림들이 종족의 경계를 확립하기 위해 순수에 관한 종교적 상징체계를 특정 음식에 적용해 일상세계의 분류체계를 실천하는 것을 관찰하기도 한다.

이 책은 ‘종족성’ 자체가 지니는 단일성의 신화가 사실은 이질적 요소의 혼합의 정도에 차이가 있는 것을 말해주는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또한 그런 개념적, 이데올로기적 지적을 넘어 종족갈등의 구체적인 해결책도 모색한다. 북아일랜드의 신구교도들 의 종교적 유혈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통합교육을 통한 인지구조 교정 필요성을 제기한다는 것 등이나 그 실현성은 당장 낮다. 종족성이 형성된 그 장구한 역사성과 그것이 적응기제로서, 그리고 배척과 배제의 기제로서 재생산되고 발명되는 힘이 아직 강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족성 연구는 문화적 다양성을 단순히 설명하는 편안한 지적 여행이 아님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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