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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키와 탱키
양키와 탱키
  • 김성희
  • 승인 2021.10.19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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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North Face ⑨

미국인을 지칭하는 말 중에 양키라는 표현이 있다. 이 명칭은 야구팀이나 양초 브랜드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미국 내로 한정해서 말하자면, 양키는 일상적인 수준에서 사용되기보다는 역사적인 맥락에서 발견되는 옛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명칭이 미국 밖으로 나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조롱과 비난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말이라 할 수도 있다. 인종주의적인 함의가 강해서 더욱 그러하다. 

지난 세기 냉전 시대 동안 양키라는 멸칭(蔑稱)은 미국의 개입주의적 경향을 비판하기 위해 동원되곤 했다. 그래서 양키는 미제국주의 혹은 미제(美帝)라는 말과 함께 사용되는 어휘였다. 국내에서는 학술적인 글이나 공론의 장에서도 이 양키라는 호칭이 사용되기도 했다. 한국의 지식인들이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근대사를 쓰기 시작하던 무렵, 한 저명한 학자는 해방기 미군정이 한국에 “양키데모크라시”를 이식하려고 했다고 주장했었다. 반미운동이 정점에 이르렀던 시기에는 “들어라 양키야, 이 땅 분노의 함성을”이라며 목청 높여 노래 부르던 대학생들도 많았다. 

양키데모크라시에 대해 말하자면, 영국의 해군 제독 조지 코크번이 1814년 백악관과 의회 건물 등에 불을 지르며 썼던 말이다. 그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를 “양키데모크라시의 항구”라고 불렀다. 식민지배자의 언어였던 “양키데모크라시”라는 말이 160여 년 후, 자신들이 “양키”의 피식민자라고 생각했던 한국인들에 의해 다시 사용된다. 저급한 정치이념이라는 의미에서 영국인들과 한국인들의 용법은 비슷했다.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즈가 쓴 『들어라, 양키야(Listen, Yankee)』 표지 

한편, “들어라, 양키야”는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즈(C. Wright Mills)가 쿠바 혁명의 참가자들을 인터뷰하고, 관찰하여 쓴 책의 제목이었다. 1960년에 미국에서 출판된 『들어라, 양키야(Listen, Yankee)』는 1985년 즈음에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됐다. 그리고 민족해방파(NL)라고 불렸던 학생운동 그룹이 이 책의 제목을 노래로 바꾸어 부르며 반미감정을 향유했다. 뒤돌아보면, 20세기 말은 감정이 격렬해질 때면, 미국이라는 어휘 대신 양키라는 멸칭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대였던 것 같다. 

그런데 냉전 시대는 미소 양국 간의 갈등의 시대였기에, 미국에 대한 멸칭이 있었다면 당연히 소련에 대한 멸칭도 있었을 것이다. 정확히 대비되는 단어는 아니겠지만, 아마도 탱키(tankie) 정도가 소련에게는 양키에 해당하는 어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탱키는 탱크를 몰고, 1956년 헝가리 민주혁명과 1967년 프라하의 민주화운동을 진압했던 소련을 비난하기 위해 만든 말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소련의 강력한 리더십을 찬양하고 추종하던 영국의 스탈린주의자들을 지칭하던 말이었다. 이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이 소련의 헝가리 침공이나 프라하 점령보다는 한참 후인 1985년의 일이었지만 말이다. 

탱크의 리더십은 한국인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김일성의 주도로 북한이 소련제 T-34 탱크를 몰고 삼팔선 남쪽을 침공한 한국전쟁은 “탱키”들의 잔인함을 한국인들의 뇌리에 각인시켰던 사건이었을 것이다. 민주화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탱크들이 광장에 진입하던 이웃 나라의 공포스런 풍경 역시 한국인들에게는 큰 충격으로 남았을 것이다. 탱크는 사회주의 진영 지도자들이 행한 폭력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탱키도 양키만큼이나 점잖지 못한 표현임에 틀림없다. 다소 교양 없는 말을 즐겨 하곤 했던 영국의 총리 보리스 존슨은 런던 시장에 재직 중이던 2015년 노동당 당수 제레미 코빈과 그의 지지자들을 “탱키와 트로츠키주의자(tankies and trots)”라고 힐난했었다. “양키”처럼 인종주의적 함의가 없다 하더라도 “탱키” 역시 지나치게 거친 표현이다. 

양키든 탱키든 이런 폭력적인 말이 오가는 시대는 폭력적인 시대였다. 물론 언어적 폭력보다는 물리적 폭력이 선행됐지만 말이다. 

김성희 숭실대 한국기독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연세대 언더우드국제대학, 고려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문학과 영어논문쓰기 등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문학이론, 북한문학, 동아시아 냉전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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