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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유럽통합과 프랑스』 임문영 외 지음| 푸른길 刊| 343쪽| 2005
서평_『유럽통합과 프랑스』 임문영 외 지음| 푸른길 刊| 343쪽| 2005
  • 박재정 충남대
  • 승인 2005.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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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왜' EU 헌법을 국민투표에 부쳤나

지난 5월 29일 유럽연합 헌법에 대한 프랑스의 비준거부 국민투표는 그동안 통합유럽의 건설을 목표로 매진해 온 유럽국가들은 물론 당사자인 프랑스에게도 충격과 좌절을 안겨준 일대 사건이었다. 프랑스의 각 정파들이 찬반으로 나뉘어 벌인 이번 비준 캠페인은 결국 국민들의 거부로 끝맺게 되었으며, 이번 비준 국민투표의 반대로 인해 유럽연합 내에서 프랑스의 영향력 퇴조와 함께 향후 유럽연합의 방향과 일정도 일대 수정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번 프랑스에서의 국민투표는 지금까지 정치인과 관료가 중심으로 추진돼온 “민주성이 결핍”된 유럽통합 과정에 대해 프랑스 국민들이 단호한 의지를 표명하면서 통합의 주체로 재등장했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사실 그동안 유럽은 정책의 유럽화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여전히 국민국가 수준에 머물러 있어 ‘정책과 정치의 괴리’라는 한계를 노정시켜 온 것이 사실이다. 민주주의의 본가인 유럽에서 민주정치의 기본적 메카니즘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와 정당 그리고 대의정치가 국민국가의 국경선 내부에서만 작동돼 왔다는 점은 통합유럽의 취약점으로 지적돼왔다. 통합과 관련한 유럽 수준의 공공영역 창출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무관심했던 유럽주의자들은 유럽헌법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보지도 못한 채 이제 “유럽시민에 의한 유럽연합”이라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임문영 외 5인 공저의 ‘유럽통합과 프랑스’는 이러한 유럽통합 과정에서의 ‘민주성의 결핍’이라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통합에 관한 어떠한 공공영역도 존재하지 아니하는 유럽현실을 직시하면서 공저자들은 통합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기본적인 인식성향, 기구와 제도에 대한 인식, 유로화에 대한 인식, EU확대에 대한 인식, 사회, 문화, 교육, 언어에 대한 인식을 실증적으로 조사함으로써 유럽통합의 국외자였던 프랑스시민들의 중요정책에 대한 지지 여부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통합과 관련한 다양한 쟁점 영역에 대한 역대 정부의 정책을 분석함과 동시에 이들 쟁점 영역에 대한 국민여론을 현지조사해 연구의 질을 제고시켰다고 할 수 있다. 조사지역을 파리로 한정하고 15세~35세가 70% 이상을 차지하며 직업별로는 대학생이 절반을 차지하는 등 샘플의 대표성에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유럽연구로서는 최초로 유럽연합 회원국가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조사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본 연구서를 통해 독자들은 이번 프랑스에서의 유럽헌법 비준 거부 사태의 복합적인 요인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유럽연합의 동구로의 확대와 관련한 프랑스 시민들의 경제, 사회적 우려는 안보 불안과 중첩됐고, 사회적유럽의 미진함에 대한 사민세력의 불만은 공동체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과 겹쳐지면서 유럽헌법 거부세력을 동원하는데 일조했다.

특히 본 연구서는 ‘통합에 대한 프랑스인의 문화적 인식’과 함께 ‘프랑스 영화를 통해서 본 프랑스인의 정체성 탐구’ 및 ‘EU의 다언어정책에 따른 대학생 교류 현황’ 등을 별도의 장으로 할애해 그동안 국내 유럽통합 연구의 공백으로 남아있던 문화적유럽에 대한 문화 선진국으로서의 프랑스의 입장을 주요 영역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민족국가들의 유럽과 탈민족적 유럽의 논쟁의 축에서 발전돼온 “완전히 새로운 단위”로서의 유럽연합의 정체성 규명은 이제 본서에서 시도한 바와 같은 문화적유럽에 대한 회원국가의 입장에 대한 탐구를 전제로 한다. 정치공동체의 법질서와 민족적 일체감의 문화적 질서를 구분할 때만이 유럽은 민족적, 지역적인 특수주의적 요구를 완화시킬 수 있으며, 반대로 초국가적 공동체가 민족들로부터 문화영역의 자율성을 회수하는 ‘초국가적’ 유혹에 항복해 버린다면 초국가적 공동체기구는 오히려 특수주의를 강화하고 그 자신의 권위를 파괴하는 결과를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통합이 반환점을 넘어섰다는 일부 유럽주의자들의 낙관적인 전망과는 달리 유럽연합은 유럽시민들의 완강한 저항 앞에서 새로운 진로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어쩌면 오늘의 유럽이 직면한 사태는 사회적연대의 약화, 공동체적 가치의 이완, 정치의 실종과 법률지상주의의 위협과 같은 근대적 개인주의에 노출 등과 같은 지금까지의 통합과정에 기인한다고 주장하면서 민족국가의 유럽을 줄기차게 주장해 온 티보(P. Thibaud)의 논지로 회귀해야 할 시점인지도 모른다. 그는 유럽통합이 민족국가들 간에 진정한 유사성을 끊임없이 창출해내는 “민족국가의 유럽화”라는 역동성 속에서 이해될 때만이 혁신적 가치를 가진다고 주장한 바 있다. 본 연구서는 민족국가의 유럽과 탈민족적 유럽이라는 대항명제를 균형있게 분석하고 있다.

박재정 / 충남대?유럽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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