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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고 떠나가는 아이들
상처받고 떠나가는 아이들
  • 교수신문
  • 승인 2001.06.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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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11 17:57:52
이철호 / 배문중 교사, 전교조 정책위원

우리나라 중등 교육은 대학진학이라는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지 이미 오래다. 학교에서는 더 이상 개인의 적성이나 소질을 계발하고 민주사회의 시민을 양성하며 전인교육을 한다는 등의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교사와 아이들과의 관계는 지식이라는 상품의 공급자와 수요자라는 관계로 의미 지어진다.

서열화된 대학구조는 중등학교의 학생들마저 서열화 시키고 있다. 서열의 상위를 얻기 위한 경쟁에서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학교교육은 학생들의 인권이나 개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직 시험점수라는 하나의 기준에 의해 아이들을 평가하고 있을 뿐이다. 이 평가에서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서 학생들은 평가 기준에 적합한 사고를 해야하며, 평가 기준에 준거한 행동을 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학교의 내신이나 수능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좋은 학벌을 얻기에 성공한 학생들은 개성적이거나 창조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 이런 주체적인 인간의지의 상실은 그 개인뿐 아니라 우리 사회 자체를 멍들게 하는 원인이 된다.

폭력문화 조장하는 학벌사회

학생들은 규격화된 삶을 살고 있다. 학교에서는 아직 배워야 하는 학생이라는 이유로 학생들에게는 무수히 많은 규칙과 통제가 가해진다. 학생들의 잘못을 고쳐줘야 한다는 이유로 체벌이나 욕설, 모욕적인 행동, 말하고 싶지 않은 개인적 일의 강요, 개인 소지품의 검사 등 학교에서는 학생에 대한 인권 침해와 폭력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런 일상적인 폭력은 학생들 사이에 폭력 문화를 조장할 수도 있다. 처벌 위주의 학교 생활을 내면화한 아이들은 상호 관계에서도 이런 처벌 위주의 교우 관계를 가지게 되며, 집단에 의한 따돌림이 횡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주 이런 지적을 받은 학생들은 쉽게 폭력이나 따돌림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승리자만 우대하는 풍토에서 학교에 대한 기대는 대학입학 합격생의 수, 특히 서울대 입학생 수에 달려있다. 그에 따라 학교에는 입시대비 수업이나 상위권 학생중심 수업, 보충교재위주 수업, 자습으로 대체되는 실험·실습, 강제적인 보충수업, 타율적인 자율학습이나 형식적이고 변칙적인 특별활동·학급활동 운영 등 온갖 편법과 부정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대학입학 원서를 쓰는 과정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 사이에 벌어지는 좋은 학벌을 얻기 위한 치열한 눈치와 흥정의 과정이다. 여기에 학생들의 꿈이나 학부모들의 바램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교육기회는 경제력에 따라

학벌을 얻기 위한 경쟁은 사교육 시장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내몰고 있다. 우리나라의 학부모는 그 종류도 다양한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다. 교과교육을 받는 수강료 및 교재 구입 등이 필요한 학원비, 개인교사 및 대학생 과외비, 어학, 미술, 음악, 컴퓨터, 태권도 등의 학원비 및 해당 준비물 구입비, 학교내 방과후 과외비, 일일공부 문제집·테이프 등의 교재구입비·학습비, 가정방문 학습, 전화학습, 인터넷 학습에 드는 전화비 및 학습비 등 쉽게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런 과도한 경쟁은 필연적으로 고액과외를 낳게 한다. 이는 부담의 정도를 감당할 수 없는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들에게 실질적으로는 교육기회의 균등한 보장을 하지 않는 것이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학벌 경쟁으로 멍드는 교육 현장의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이 떠나는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 안팎에서 겪는 학업성적에 대한 중압감은 정서불안으로 이어져 일탈과 비행의 원인이 되고, 누적된 정신적·육체적 피로는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의 건강을 상하게 한다. 학벌 경쟁은 학업을 중단하거나 목숨을 끊은 아이들, 더 나은 길을 찾아 해외 이민이나 조기유학을 떠나는 아이들, 폭력이나 따돌림으로 등교거부를 하는 아이들을 낳고 있다.

지금 중·고등학교에서는

“방과후 과외교과 활동(보충수업)은 말이 ‘과외’지 정규 교과수업과 다를 것이 없어요. 그 중에는 문제집을 하시는 선생님이 계시기는 하지만 어떤 선생님은 교과서 진도를 나가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니 보충수업에 참가하지 않는 애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지요. 아마 많은 아이들이 보충수업을 싫어하면서도 참가하는 이유는 ‘손해보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지요.” <서울 인문계 여고 2학년생>

●“이번 수능시험에서 서울대에 지원하기에는 약간 못 미치는 점수를 받았다. 그래서 특차를 지원하려고 했으나 선생님은 서울대에 가야한다고 완강히 거절했다. 하루종일 애원했으나 거절당하고 특차 마감 날에도 끝내 써주지 않아 결국 사유서를 쓰고 원서를 냈다. … 서울대를 나오지 않으면 출세할 수 없다고 학생들에게 선전하고 몇몇 상위 학생들에게는 압력도 가한다. 자기 반 학생이 서울대에 들어갈 경우 담임에게는 수당이 나오기도 한다고 들었다.” <대구 인문계 고 3학년 남학생>

●“지난 토요일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셔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열심히 공부해서 나온 점수가 나쁘다고 아버지께서 화를 내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정말 한심한 저, 그리고 한심한 교육입니다. 그리고 저 자신이 부끄럽습니다.”<서울 인문계 고 2학년 남학생>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모임 홈페이지에서(http: //antihakbu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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