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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도쿄 올림픽에서 대만이 거둔 세 가지 성과
[글로컬 오디세이] 도쿄 올림픽에서 대만이 거둔 세 가지 성과
  • 이광수
  • 승인 2021.10.12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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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올림픽으로 바라본 중국과 대만의 양안관계
글로컬 오디세이_이광수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
도쿄 올림픽 배드민턴 남자복식 시상식에 올라가는 메달 획득 국가의 깃발이다. 좌측은 은메달을 딴 중국의 오성홍기이며, 금메달을 획득한 대만이 국기 대신 사용하는 올림픽 깃발 ‘매화오환기’가 중앙에 위치하고, 우측은 동메달을 획득한 말레이시아 국기다. 사진=자유시보

올림픽은 선수들의 뜨거운 경쟁 무대지만, 참여국 간에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영웅 대우를 받으며, 메달을 다수 획득한 나라는 강한 국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지난 8월에 개최된 도쿄 올림픽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도 불구하고 유엔 회원국 수보다 많은 206개 국가의 선수들이 국가 명칭이 쓰인 팻말을 앞세우고 개막식에 참가했다. 하지만 세 팀은 정식 국가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는 비정상적 형식으로 입장했다. 도핑 위반으로 제재를 당한 러시아 선수들은 자국의 올림픽위원회 명의로 참여했고, 정치적 이유로 각자의 국가의 대표로 참여하지 못한 29명의 난민 선수들은 난민대표단이라는 임시 명의로 참여했으며, 마지막으로 도시 이름을 내걸고 참여한 대만의 중화 타이베이 선수단들이다. 앞선 두 사례는 일시적인 경우지만, 마지막 사례는 197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꽤 오래된 경우다.

도쿄 올림픽은 엄격한 방역 조치로 인해 비록 다수의 경기가 무관중으로 진행되었으나, 경기장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치열한 승부는 TV를 통해 지켜보는 세계 수십억의 관중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에서도 정치, 군사, 방역, 접종 등에 있어서 점차 긴장 강도가 격화하고 있는 중국과 대만의 경우는 경기장에서의 선수들 간 치열한 승부와 더불어 경기 외적인 요인으로 긴장도가 더해지고, 마치 총성 없는 전쟁처럼 느껴졌다.

도쿄 올림픽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스포츠 강국인 중국은 88개의 메달을 획득하여 종합 순위 2위에 올랐다. 반면에 중화 타이베이라는 명칭으로 참가한 대만은 12개 메달을 획득하여 34위에 올랐다. 획득한 메달 합계나 종합순위에 있어서 양안은 현격한 격차가 존재한다. 양안의 격차는 비단 스포츠뿐만 아니라, 면적, 인구 등 기본적인 환경뿐만 아니라 경제력과 군사력에서도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과는 비교 불가능의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올림픽 폐막 이후 대만은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으며, 마치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유는 대체로 세 가지다. 첫째, 올림픽에서의 최대 성적을 기록했다. 둘째, 중국과의 배드민턴 남자복식 결승 경기에서 승리했다. 셋째, 국제적으로 중화 타이베이가 아닌 대만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경우가 나타나면서 대만에 대한 인식 정도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먼저, 대만은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역대 최상의 성적을 기록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금메달 2개를 획득한 것을 합쳐 5개의 메달을 획득한 이후,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 2016년 리우에서 2~4개의 메달을 획득했었다. 그런데 금 2, 은 4, 동 6, 총 12개의 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대만의 국회의장 격인 입법원장 요우시쿤은 페이스북을 통해 메달 수를 인구 비례로 비교한다면 대만은 196만 명당 1개이며, 중국은 1600만 명당 1개로 대만이 크게 승리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일본 및 한국보다도 나은 성적이라고 자랑했다. 요우시쿤 원장은 대만독립 성향이 강한 민진당의 주요 인사다. 대만 중심적 발언을 한 것은 대만인의 자존심을 높이고 중국과의 경쟁에서 물러서지 않는다는 의사 표시다.

다음으로 배드민턴 남자복식 게임에서 중국 선수들을 물리치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금메달을 획득한 왕지린과 리양은 95년생 동갑으로 이른바 90후 세대이다. 한국의 MZ세대와 비슷하게 유행과 트렌드에 강하며 SNS를 통한 자기 의사 표현에 익숙하다. 로이터 통신은 이들이 경기에서 승리한 이후 페이스북을 통해 “나는 TAIWAN에서 왔으며, 나는 대만 출신이다”라고 했다는 보도를 했다. 지난해에 재선에 성공한 민진당의 차이잉원 총통은 배드민턴 선수들에게 직접 축하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귀국 선수단 여객기가 대만 상공으로 들어설 때는 대만공군의 미라주 2000 전투기 4대를 보내어 에스코트하고 축하 조명탄을 발사하기도 했다.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은 국가 영웅으로 환대받는 정도에 이르렀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방역과 백신 수급의 문제와 관련하여 중국과의 갈등으로 자존심이 상한 대만으로서는 중국과의 경기에서 승리한 선수들이 대만의 자존심을 일정하게나마 세운 것으로 인식되는데, 이는 집권 민진당 정부가 양안관계에서 대만의 비타협적 자세를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의도도 내포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는 대만의 존재와 대만에 대한 인식 정도가 높아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개막식 중계방송에서 선수단 입장 장면을 소개한 일본 NHK 앵커가 중화타이베이 선수단이 아닌, 대만 선수단으로 호명했다. 대만은 환호하고 감사 표시를 했으며, 중국은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세계인이 주목하고 있는 올림픽은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양안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중국은 대만은 중국의 영토로 미수복 지역일 뿐이며, 대만의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준수를 국제사회에 요구한다. 반면에 대만은 중국과는 엄연히 다른 국가로서 존재하고 주권을 행사하고 있음을 천명하는 기회로 생각한다.

대만의 위상을 둘러싼 양안의 대립은 올림픽에서 대만에 대한 호칭 문제로 오랫동안 표출되었다. 올림픽에서 대만은 1960년 멜버른 올림픽에서는 대만의 예전 이름이었던 포모사(Formosa)로 참여했다. 1964년 도쿄 올림픽과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는 타이완 명칭으로 참가했고,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는 중화민국(ROC)의 명의로 참가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캐나다가 타이완 명의로 참가를 요구하자 불참을 선언했고,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냉전의 영향으로 불참했다. 1979년 미중 수교 이후에 국제올림픽 위원회는 대만에게 중화 타이베이 명의로 참가하고, 중화민국 국기 사용을 금지했다. 때문에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부터 중화 타이베이 명의로 참가한 이래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도쿄 올림픽은 대만의 명칭을 둘러싼 양안의 대립을 세계인에게 주지시킨 또 하나의 국제적 이벤트였다. 이러한 대립은 대만의 지위와 둘러싼 문제이기에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대만이 도쿄 올림픽에서 거둔 성과는 양안 관계의 전체적인 세력 구도에서 보면 미미하다. 하지만 양안 관계에 대한 세계의 관심과 주목도가 높아지는 것은 대만이 원하는 바다.

 

이광수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
양안 관계와 통일 모델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중국의 일국양제와 대안 모델에 대한 고찰」(2020), 공역서 『중국 정책결정: 지도자, 구조, 기제, 과정』(20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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