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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학총장 - 흔들리는 리더십
한국의 대학총장 - 흔들리는 리더십
  • 안길찬 기자
  • 승인 2001.06.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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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12 16:50:32
“대학총장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일하는 총장이고, 다른 하나는 향유하는 총장이다. 전자는 권위를 앞세워 대학을 일방적으로 경영하려 한다. 후자는 그 지위를 즐기려 구성원들에게 굽신거림을 강요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총장 열 중 아홉은 두 가지 성격을 겸하고 있는 것 같다.”

지방 국립대에 재직중인 이 아무개 교수의 눈에 비친 대학총장의 모습이다. 이 교수의 총장에 대한 불신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처음엔 상당한 기대를 가졌다. 장관을 지낸 전력은 외풍으로부터 대학을 지켜줄 것으로 보였다, 추락한 대학의 위상도 높여 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지금 총장의 모습은 권위주의와 엘리트 의식에 젖은 개발독재시대 리더에 다름 아니다.”

이 대학은 2년 전 교수출신으로 정부부처 장관을 역임한 명망가를 총장으로 영입해 화제를 모았다. 국립대 총장은 학내교수가 된다는 관행을 깨고, 교수들이 직선으로 외부인사를 총장으로 택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서울집중으로 인해 추락하고 있는 대학의 위상을 곧추세우기 위해 교수들은 무엇보다 총장의 대외교섭력을 높이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년이 흐른 지금 대학은 총장의 운영능력과 관련 적지 않은 갈등을 빚고 있다. 급기야 지난해 12월, 교협은 총장 중간평가를 진행했다. 그리고 70~80%가 넘는 교수들로부터 총장은 낙제점을 받았다.

교육철학없는 경영자의 오류

변화와 개혁의 시대, 갈 길 바쁜 대학의 형편을 감안하면 총장의 능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엇나간 총장의 지도력과 리더십은 한 대학을 어려움에 빠뜨릴 위험성 또한 안고 있는 것이다.

최근 총장 선임과 퇴진을 둘러싸고 몇몇 대학이 치르고 있는 분쟁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숭실대는 법인의 일방적인 어윤배 총장 재선임 이후 6개월째 분규가 지속되고 있다. 이숙자 총장의 복직판결로 성신여대도 다시 분쟁 재연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덕중 총장의 퇴진을 두고 1년 이상 싸움을 벌인 아주대는 김 총장이 사직서를 내면서, 분쟁해결의 단초를 마련했다. 하지만 후임총장 선임을 놓고 법인과 교수들간의 줄다리기는 계속되고 있다.

총장 퇴진 요구에 비하면 총장 중간평가는 온건한 문제제기 방식인 셈. 지난해 부산대, 서울대, 숭실대, 인하대, 교수협의회가 총장 중간평가를 진행한데 이어 올 들어 건국대, 진주교대, 조선대 등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교협이 중간평가를 꺼낸 이유가 총장의 대학운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지만, 평가결과 보고서를 통해 드러난 총장들의 대학운영능력 성적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노건일 인하대 총장은 경영능력, 인품과 학식, 여론수렴 등 모든 평가항목에서 1백점 만점에 20점을 밑도는 성적표를 받았다. 지난달 기초학문 분야 교수들로부터 공개 항명서를 받은 이기준 서울대 총장의 성적표 역시 구조조정, 교수 인사 및 처우 개선, 재원조달 등에서 부정적인 것이었다. 얼마 전 성적표를 받은 맹원재 건국대 총장도 절반이 넘는 교수들로부터 ‘직무수행능력이 매우 실망스럽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김 아무개 건국대 교수는 “임기가 1년여 밖에 남지 않은 총장에 대해 중간평가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대학이 이대로 흘러가선 안된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그 점에서 보면 교수들이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총장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대학이 직면한 위기”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총장에 대한 교수들의 불만과 불신은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가. 그것은 총장의 지나친 권력남용에서 두드러진다. 신 아무개 부산대 교수는 “구성원들의 여론을 무시하는 독선이 가장 큰 문제다. 입후보 당시의 약속은 총장이 되고 나면 空約으로 바뀌고,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스레 관철하려는 권위적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서 아무개 숭실대 교수의 비판은 더욱 신랄하다. 그는 “교육철학이 없고, 리더로서의 소양을 변변히 갖추지 못한 총장이 대학을 경영하려 들어 문제다. 그런 총장은 구성원의 쓴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고, 의견을 수렴하기 보다 오히려 분쟁을 조장한다”고 질타했다.

총장의 권위는 어디에서 나오나

개혁적 리더로 인정받아 교육부장관까지 지냈던 김덕중 전 아주대 총장에 대한 학내 교수들의 평가도 밖의 시각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유 아무개 아주대 교수는 “대학개혁의 성과는 김 전 총장 혼자서 일궈낸 것이 아니다. 학내 구성원들이 동참하고 고통을 분담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전 총장은 앞으로 개혁을 내세우고, 뒤로 분별없는 권력을 남용해 대학을 기업으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개혁과 변화가 강조되는 시대일수록 총장의 리더십은 중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경영논리에 흠씬 젖어든 대학의 총장의 리더십은 곧잘 강력한 권력남용으로 왜곡된다. 현재 각 대학이 치르고 있는 분쟁과 총장 중간평가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점에서 신경철 부산대 교수가 전하는 말은 변화와 개혁의 시대 총장들이 곱씹어 봐야 할 부분이다. “총장의 소신은 자기생각만 관철시키는 소신은 아니다. 성공한 총장을 만들기 위해 실패한 총장들이 남긴 교훈이 무엇인가. 그것은 언제나 원칙으로, 초발심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민주적 의사결정속에서만 총장의 권위는 힘을 얻는 것이다.” 안길찬 기자 chan121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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