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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_고독한 신들의 나라
문화비평_고독한 신들의 나라
  • 이병창 동아대
  • 승인 2005.06.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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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 보라. 황우석 교수가 마침내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해 특정 신체기관을 분화시키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 이래 과학자들은 줄기세포를 이용해 거의 모든 신체기관을 재생하는 데 성공했다. 줄기세포 은행에서는 어느 때라도 낡거나 손상된 신체기관을 재생시킬 줄기세포를 공급했으니, 사람들은 정말 죽을 일이 드물었다. 우연한 사고로 손 쓸 시간 없이 손상당했을 때나 자기신체의 손상을 의도적으로 방치하는 자살에 의해서만 사람들은 죽게 됐다.  

상상해 보라. 황우석 교수가 죽자, 세계 도처에 그를 모신 사당이 세워지고 드디어 그가 신격화됐다. 그는 가장 힘 있는 신으로 모셔졌는데, 지금까지 신으로 모셔진 인간은 전부 저 피안에서 영생을 주었지만, 그는 영생을 스스로의 힘으로 발명했던 것이다. 한때 난치병이라 해서 삶을 포기했던 수천만 사람들이 그의 주요 신도들이었다. 줄기세포로 어떤 신체기관을 재생하는데 드는 비용이 워낙 비쌌기 때문에, 아주 소수를 제외하고 그들이 실제 치료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받았던 삶에의 희망만으로도 그들의 믿음은 충만했다.

상상해 보라. 세월이 또 지나, 어느 날 줄기세포 은행 때문에 폭동이 벌어졌다. 어느 나라에서도 이것을 국민의료 보험에서 부담할 수는 없었기에, 당연히 수익자 부담의 원칙을 세웠다. 그러자 부자와 빈자 사이에 생명과 수명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가 나타나게 됐다. 부자들 항상 젊고 아름다웠고, 1백살이 넘어도 건강한 생을 즐기게 됐다. 그러나 중산층 이하는 정말 가진 걸 모두 털어 넣어도 간단한 신체기관 하나 재생시킬 수 없었으니, 어느 나라에서도 늙고 추하고 병든 건 예외 없이 이런 중산층 이하였다. 그들의 수명은 기껏 1백살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황우석 교수가 아직 살아있었던 때는 늙음과 죽음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온 것이었다. 그러기에 노인들은 소주 몇 잔에 취해 겉으로는 하릴없이 청년들을 욕했고, 노인들에 대한 푸대접을 푸념했지만, 속으로는 차라리 기뻐했다. 왜냐하면 젊었을 때 질투를 야기하던 부와 명성과 권력과 미모의 차이도, 늙으면 다 없어지고, 모든 사람은 공평하게도 한결같은 노인이 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늙음과 죽음의 공평성이 사라졌다. 이제 늙고 추하고 병든 사람은 영원히 지속될 수밖에 없는 이런 차별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러기에 마침내 일단의 노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만국의 노인들이여 단결하라’라고 끝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들이 내세웠던 주장은 단 한 가지. 누구나 동등하게 줄기세포를 얻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상상해 보라. 그리하여 마침내 줄기세포 은행을 국가가 국유화했다. 그 결과 모든 국민들이 예외 없이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었고. 마침내 생명과 수명에 있어서의 정의가 실현됐다. 그런데 죽음이란 게 없어지자, 사람들은 태어나는 아이도 경계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이 한정된 지구자원을 더 많은 사람들이 쪼개 가져야 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차피 죽지도 않을 터인데, 굳이 후손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몰지각한 몇몇 사람은 여전히 몰래 아이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젠 아이를 키울 사회적 지반이 무너져서 학교도 놀이터도 없으니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부모에게는 혼자서 치르는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점차로 이런 몰지각한 사람들도 사라지게 됐다. 결국 태초에 아직 닭 울음소리 들리지 않던 그 때처럼 아이 웃음소리 들리지 않는 때가 다시 돌아왔다.

이처럼 불생불멸, 부증불감의 시대, 사람들은 결혼조차 거부했다. 아무리 사랑하는 부부들이라도, 아무리 살갑게 정을 나누는 부부들이라도 몇 십 년은 같이 살더라도 정말 수백 년을 같이 살 수 있을까. 그렇게 하라하면 이건 정말 지옥이 따로 없는 게 아닐까. 더구나 이제 집안에 아이의 웃음도 없으니, 휑뎅그렁한 방을 두 부부만 지켜 앉아 무슨 정이나 무슨 말을 더 이상 나누겠는가. 이리하여 마침내 올림푸스 신화에 보이는 저 영원한 신들, 그러나 여전히 미움과 질투, 탐욕과 어리석음을 그대로 지닌 고독한 신들의 나라를 건설했다.

이병창 / 동아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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