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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을 떠는 문화
수선을 떠는 문화
  • 박미경 계명대
  • 승인 2005.06.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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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박미경 / 계명대학교 음악·공연예술대학 교수, '음악과 문화' 발행인

작곡을 배우겠다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나는 한동안 전공에 집중하지 못하고 몹시 방황했다. 외국에서 서양음악사 학위를 받고 들어온 선생님의 강의가 보여주는 세계가 눈부셔 나는 방황을 끝냈다. 그때 생전 처음 내가 간절히 하고 싶었던 것이 보였던 것이다. 유학을 갈 수 있는 환경이 못되었는데도 내 간절함에 길이 뚫렸는가. 나는 미국에 건너가게 되고 한 대학에서 3년간의 꿈과 같은 세월을 보냈다. 바하에 심취하고, 말러에 심취하고, 그리고 서양음악의 완벽한 역사에 심취하였다. 그 역사학은 서양음악작품을 취미삼아 듣게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뜯어보면서 조직적으로 따라가면서 음향적으로 분석하면서 하나의 미적 추구를 위한 대상으로 몰두하게 하였다.

바하가 음악의 아버지요 헨델이 음악의 어머니라고 배우면서 음악의 근원지로 믿었던 내게 그들보다 150년 이전인 16세기 후반 이태리 귀족들이 사랑의 환희와 아픔을 담은 시를 노래한 마드리갈을 시간의 간극을 넘어서도 향유할 수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그 당시의 음악은 콩나물대가리음표도 아니고 규칙적으로 강세를 깔게하는 마디도 없는 악보에 담겨졌고, 그마저도 어느 정도 애용되다가 어느 순간에 사라져 버렸음직 한데, 300여년 후의 학자들이 극성맞게 찾아내어, 콩나물대가리와 마디구분이 있는 현대악보로 전환하고, 그것을 현대 연주가들에게 재현시켰던 것이다. 학문이 해낸 것이다.

음악학문은 소리를 살려내고, 취사선택한 작품의 미적구조를 설명하고, 그리고 그 작품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역사를 그려냈다. 그래서 나는 그 학문의 힘에도 감탄했다. 그렇게 계속 심취하고 체득하고 그랬다. 그런데 시작이 그랬듯이 서양음악사에 대한 열정도 갑자기 끝났다. 이러한 모든 유리알 유희같은 작품들이, 그 역사가,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서양은 저러한 음악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왜 우리는 없을까. 옛 한국인은 음악을 전혀 안하고 살아왔을까? 서양예술음악에 보편성을 실은 거대한 힘이 한국인인 나를 짓눌렀다.

음악인류학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공부를 끝내고 한국의 대학에 들어온후 서양음악을 가르치고 그리고 한국음악과 세계음악도 가르치고 있다. 15세기 서양음악 작품을 귀로 들으며 분석하는 방법을 가르칠때면 학생들은 한국의 15세기 음악은 없다고 착각하는 것을 본다. 국악학자들이 주는 당시에 대한 산만하고 고답적인 설명은 그 인식을 바꾸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 음악을 재현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조직과 체계도 설명하지 못하니 학문도 없는 것이 아닌가말이다.

소리를 다루는 예술로서 음악 고유의 정체성은 그 일시성에 있다. 그러나 서양은 악보라는 기재를 발전시켜 음악을 공간화시키고 영속화시켜 이를 통한 역사를 재구성하였다. 순간 사라지는 매체에 담겨져 감지하기 어려운 그 조직과 체계가 시각기재인 악보에 담겨 뚜렷해지는 현상도 그 방향으로 더 흐르게 했다. 그렇게 음악의 정체성이 점점 종이에 표현된 악보(또는 作品으)로 옮아가면서, 음악의 일시성적 정체성이 잊혀졌다. 그리고 그 취급의 기술인 즉흥성과 즉흥력은 전혀 필요없게 되었다. 연주가의 작곡능력도 그래서 작곡가의 전유영역에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세계의 많은 문화의 경우 음악의 그 정체성을 그대로 놓아 두었기 때문에 뚜렷이 작품이라할 것도 없고 역사도 쓰기가 어렵다. 작품이라고 할 기존 곡들은 끊임없이 즉흥연주의 출발점 만을 제공하는 단초일 뿐인 문화에서 음악역사를 재구성하기 어렵다고 해서 미적으로든 기능적으로든 의미없게 그 흐름이 전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인도가 아직까지도 고도의 즉흥전통을 유지하며 전혀 다른 미적, 이론적 체계와 역사를 가진 것을 보면 서양음악사학문이 세워논 탑의 보편성에 대한 믿음이 허구라는 것이 뚜렷한데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거기서 생산된 수많은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도 원래 즉흥이 강하고 신명이 넘쳐 남의 표현방식을 찍어낸 듯 하면 흉잽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원전에 충실한” 연주, “천재작곡가”, 어려운 곡을 “완전히” 소화낸 세계적 연주자가 없어서는 안되는 듯이 수선을 떠는 문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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