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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벌써 노벨상을 타도 되나?
우리가 벌써 노벨상을 타도 되나?
  • 김소영
  • 승인 2021.10.12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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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우리나라 연구시스템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연구를 제대로 지원한 적이 있는가? 
도전적인 연구를 원한다면 연구시스템 역시 도전적이어야 한다. 
기존 틀을 조금씩 고치는 수준으로 노벨상을 받길 바란다면 과욕이다. ”

김소영 편집기획위원(카이스트)

올해 노벨상은 그 어느 때보다 의미 깊다. 코로나19 사태로 과학이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노벨상 후보로 코로나 백신 연구를 이끈 과학자들이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아쉽게 올해 수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만약 이들이 수상했다면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가장 정확하게 부합하는 상이 되었을 것이다. 

노벨의 유언은 “수상 전해(preceding year)에 인류에게 가장 큰 혜택을 부여한” 과학자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원체 노벨상 수상까지 소요 기간이 길다 보니 이 유언이 글자 그대로 지켜진 적은 별로 없다. 

백신을 만드는 일은 과학기술 활동의 핵심인 연구와 개발의 집합체다. R&D로 약칭되는 연구와 개발은 사실은 매우 이질적인 활동이다. 연구의 속성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인데 비해, 개발의 속성은 어디로 갈지 분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어려운 이 두 가지가 같이 일을 벌이면 큰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과학기술은 세계사에서 큰 위력을 발휘해왔다. 2차 대전을 종전으로 이끈 원자폭탄 개발 맨해튼 프로젝트는 1938년 핵분열 현상을 발견한 독일 핵물리학자들의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이른바 포노 사피엔스에게 필수불가결한 터치스크린 기술은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로 유명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1970년대 양자역학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이번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에 처음으로 응용된 mRNA 백신은 1990년대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모더나는 중국 연구진이 코로나 바이러스 유전자 지도를 공개한 지 이틀만에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mRNA 백신의 설계도를 만들었고, 화이자 백신을 공동개발한 독일의 바이오앤텍은 유전자 지도 공개 보름만에 후보물질 10개를 설계했다. 여기에 미국과 독일 정부는 천문학적 연구비와 임상시험, 사전구매까지 전쟁 작전처럼 지원하였다. 이 같은 연구와 개발의 폭발적 결합은 통상 4~5년 걸리는 백신 개발을 11개월로 단축시키는 기폭제였다.

노벨상 시즌의 단골 메뉴는 우리는 아직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없나 하는 한탄이다. 단골 대답은 허약한 기초과학 때문이란 것인데, 기초과학이 약한 데 노벨상을 받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므로 이 대답은 허약한 동어반복이다. 이제는 질문을 뒤집어 우리가 벌써 노벨상을 받아도 되는 건지 물어야 한다. 

먼저 우리나라 연구시스템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연구를 제대로 지원한 적이 있는가? 이번 정부 공약인 기초연구 예산 2배 확대라는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기초과학 연구자들이 크게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기초연구 지원의 효과가 단순히 연구비 증가가 아니라 연구비를 쓰는 방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연구비를 많이 주어도 연구관리나 평가가 그저 그렇다면 창의적인 연구가 움틀 수가 없다. 도전적인 연구를 원한다면 연구시스템 역시 도전적이어야 한다. 기존 틀을 조금씩 고치는 수준으로 노벨상을 받길 바란다면 과욕이다. 

개발로 눈을 돌리면 인류에게 혜택을 가져다주는 기술을 위해 우리 국민의 세금을 통 크게 쓴 적이 있는가? 압축성장 시기 우리는 기술자립과 산업부흥을 유일무이한 목적으로 하여 과학기술 추격이라는 속도전을 치렀다. 성공의 저주라 할까, 국가주의적 과학기술 진흥 패러다임에서 인류를 위한 과학기술은 선심쓰기로만 인식된다. 노벨상의 취지가 교과서에나 나올법한데 벌써 노벨상을 받아도 되나?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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