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06:20 (금)
한국어 문법 교육론
한국어 문법 교육론
  • 이지원
  • 승인 2021.10.08 11: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방성원, 김제열 지음|한국문화사|416쪽

저자들이 한국어 교육 현장에 입문한 것은 90년대 초중반이다. 국어 문법 지식만 가지고 외국인 학습자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려고 들었던 시절, 문법 교수 방법을 고민하고 수업에 적용해 보며 좌충우돌 헤매던 초보 교사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이후 한국어 교육학의 눈부신 성장과 함께 교재 개발, 평가, 새로운 교수 방법 등을 경험하며 정신없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벌써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는 한국어 교사가 되고 싶어 하는 예비 교사, 재충전을 위해 대학원을 찾은 경력 교사들에게 경험을 나누어 주는 위치가 되었다.

한국어 문법 교육론 강의를 여러 해 진행해 오면서 이론과 현장 경험을 결합한 전문서의 필요를 느꼈다. 초보 교사로서 겪는 두려움, 시행착오를 잘 알기에 그간 축적해 온 현장 경험을 한국어 문법 교육의 체계 내에서 풀어 보고자 뜻을 모으고 함께 책을 집필하기로 하였다.

이 책은 한국어 예비 교사들에게 문법 교육을 위해 기초가 되는 언어 교수 이론, 한국어 문법 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소개하고 실제 한국어 교실에서 문법 수업을 운영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사항들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경력 교사들에게는 의사소통 중심의 한국어 교육 현장에서 교수요목을 설계하고 교재의 문법 항목을 집필할 때 응용할 수 있는 방안들을 제안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대학과 대학원에서 한국어 교육을 전공하는 학생들, 문법 교수에 대해 체계적으로 다시 공부해 보고자 하는 경력 교사들, 문법 교육에 대해 탐구하고자 하는 연구자들 모두 이 책의 독자가 될 수 있다.

책의 체제는 기초에서 실제까지 총 4부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론적 기초부터 차근차근 공부하고 싶은 분은 1부에서 4부까지 순서대로 읽어 볼 것을 권한다. 경력 교사로서 한국어 교재에서 한국어 문법을 어떻게 기술하고 수업에서 문법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궁금한 분들은 사례 중심으로 기술된 3부와 4부를 먼저 보고 나서 1부와 2부의 내용을 읽어도 될 것이다.

1부에서는 한국어 문법 교육의 기초가 되는 내용을 다루었다. 1장에서는 문법 번역식 교수법에서 형태 초점 접근법에 이르기까지 언어 교수법의 흐름에 따라 문법이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지 살피면서 현재의 시점에서 한국어 문법 교육의 의의를 짚어 보고자 하였다. 2장에서는 한국어 교육 문법의 개념과 특징을 살펴보고 문법 교수의 기본 원리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2부는 한국어 문법 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3장에서는 그동안 한국어 문법 교육의 단위로 다루어진 여러 형식을 정의하고 사용 중심의 문법 교육을 위해 어떤 내용을 포함해야 할지 논의하였다. 4장에서는 문법 항목을 선정하고 배열하는 원리를 제시하고 등급별 문법 항목을 정리하여 한국어 교수요목 설계에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5장에서는 문법 교육의 다양한 접근 방식, 수업 모형을 살펴보고 한국어 문법 교육의 효과적인 방법론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3부에서는 한국어 문법 수업의 구성 방안을 다루었다. 문법 수업을 진행하기에 앞서 문법 항목을 어떻게 제시하고 기술할 것인지 정리할 필요가 있기에 6장을 통해 문법 항목 기술의 주요 쟁점을 정리하였다. 7~9장에서는 문법 수업의 전개를 5단계로 구분하여 도입, 제시, 연습, 사용, 마무리 단계에서 활용되는 실제적인 교수 방안을 소개하였다. 7장의 문법 도입과 제시 사례, 8장의 문법 연습 유형별 예시, 9장에서 제시한 사용 단계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한국어 수업을 준비하는 예비 교사나 경력 교사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4부는 실제 교육 현장에서 한국어 문법을 어떻게 지도하는지 보여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를 위해 한국어 문법 교육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범주인 종결어미와 조사를 지도하기 위해 교사가 알아야 할 기본 지식을 비롯하여 문법 수업의 사례, 지도의 유의점 등을 각각 10장과 11장에서 제시하였다.

1부와 2부는 방성원이, 3부와 4부는 김제열이 주 집필을 맡아 원고를 작성하였다. 역할은 나누었지만 1부와 2부가 기초적인 토대가 되어 3부와 4부에서 실제를 적용할 수 있도록 집필한 내용을 수차례 검토하고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각 부와 장이 서로 체계적으로 연계되고 일관성을 가지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보여 원고를 떠나보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앞으로 독자들의 지적을 받으며 교육과 연구에 더 정진함으로써 보완할 것을 기약해 본다.

원고를 마무리하면서 저자들이 결코 잊지 못할 분이 있다. 30여 년 전 우리에게 오셔서 20년 동안 우리의 학문을 이끌어 주신 영원한 스승, 故 김기혁 교수님. 선생님의 이끎과 가르침이 없었다면 우리는 한국어 교육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을 것이다. 선생님의 영전에 부족한 이 책을 삼가 올린다.

저자들이 이 책을 설계하고 집필하기까지 도움 주신 분들이 너무나 많다. 경희 우리말연구회에서 국어학 공부를 이끌어 주신 선생님들과 선후배 동료들, 경희대 국제교육원에서 한국어 교육을 같이 고민해 주신 선후배 선생님들,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문법 교육에 대한 경험을 나누어 주고 깨우침을 주신 선후배 동료 선생님들, 경희사이버대에서 한국어 교사 교육의 방법을 같이 고민해 주신 동료 교수님들, 그분들의 조언과 격려가 책의 초석이 되었기에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끝으로 이 책의 3부와 4부에서 예비 교사의 관점으로 내용을 검토하며 원고를 정리해 준 연세대 한국어학당의 백초롱 선생님, 보기 좋은 책으로 완성될 수 있도록 애써 주신 한국문화사의 조정흠님, 김주리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외국어 교실에서 왜 문법을 가르치는가, 외국어를 배울 때 문법을 꼭 배워야 하는가, 외국어 교육에서 문법 교육이 필요한가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논쟁은 매우 고전적인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외국어 학습자로서 문법을 열심히 공부했지만 많은 문법 지식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외국인을 만나면 말이 나오지 않았던 불편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만일 또 새로운 외국어를 학습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여전히 문법 학습이 필요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한국어를 학습하는 외국인들에게 문법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물어보면 어떤 대답을 할까? 한국어 학습 경험이 있는 외국인들에게 문법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질문하자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현실적으로 말할 때나 글을 쓸 때 문법이 필요하죠.” (일본)
“문법은 언어의 규칙이에요. 우리는 규칙을 통해서 언어를 배운다고 생각해요.” (말레이시아)
“한국어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문법을 알아야 해요.” (폴란드)
“한국어 읽기, 쓰기를 잘하려면 문법이 필요해요.” (미얀마)
“외국어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문법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문법을 모르면 외국어를 올바르게 쓸 수 없어요.” (몽골)

이들은 한국어 교육에서 문법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말하기나 쓰기 같은 표현의 영역뿐만 아니라 읽기 같은 이해의 영역에서 문법이 필요하다고 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일부 학습자들 중에서는 전통적인 한국어 문법 교육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문법을 안다고 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문법의 이해를 강조하는 것은 전통적인 교육 방식이에요.” (캐나다)
“한국어 고급 단계에서 배운 문법 중 어떤 것은 한국인과 대화할 때 거의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일본)

캐나다에서 온 학습자는 의사소통 중심 접근법을 적용하여 영어 강의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최근의 외국어 교육 경향과 달리 한국어 교육의 현장에서 문법 지식에 대한 이해가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였다. 일본인 학습자는 고급 단계를 모두 마치고 한국의 대학원에서 한국어 교육을 전공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어 과정을 모두 이수한 후에 한국인과 부딪치면서 생활하고 공부해 보니 고급 단계에서 배운 문법 항목들 중에는 실제 생활에서 별로 사용되지 않는 것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더라는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였다.

실제로 오랜 세월 동안 외국어 교육 분야에서 문법 교육에 대해 찬성하는 주장과 반대하는 주장이 대립해 왔다. 여기에서는 Thornbury(1999)가 제시한 문법 교육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핵심적인 주장을 바탕으로 하여 한국어 문법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관점을 정리하고 개선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1.2. 문법 교육에 대한 비판론

문법 교육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은 학습자가 왜 언어를 배우는가 하는 본질적인 물음으로부터 비롯된다. 학습자가 외국어를 배우는 목적은 대부분 목표 언어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의사소통하기 위한 것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문법 지식을 학습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문법 교육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살펴보면서 기존의 문법 교육 방식을 반성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문법에 대한 지식이 실제 언어 사용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비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문법서를 통해 문법 항목의 의미를 이해하고 규칙을 공부했으나 막상 외국인과 만나서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그런가 하면 제2언어 사용자 중에는 언어 교육 기관에서 정식으로 문법을 학습하지 않았고 문법 지식을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구어 상황에 직접 부딪히며 유창하게 의사소통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사례는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차이를 보여 준다. 즉, 문법 지식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제 상황에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 현장에서 문법 개념이나 지식을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기보다는 학습자에게 실제적인 언어 사용 상황을 제공하고 문법을 사용하는 경험을 갖도록 해야 한다.

둘째, 언어 능력은 의사소통 능력이며, 문법은 의사소통 능력을 구성하는 하위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다. 전통적으로 외국어 교육에서는 문법적 능력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 왔지만 실제로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문법적 능력 외에도 다양한 능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주장은 의사소통 중심 접근법의 논의를 통해 구체화되었다. Canale과 Swain(1980)은 의사소통 능력을 문법적 능력, 사회언어학적 능력, 담화적 능력, 전략적 능력으로 정의한 바 있다. 언어 교육에서 문법 교육만을 중시하는 것은 학습자의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일부의 역할을 할 뿐이다.

셋째, 제2언어 습득 연구에서는 자연적인 습득과 의식적인 학습을 구별하며 문법 지도와 같은 학습의 유용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Krashen(1982)은 언어 습득은 잠재의식적인 과정인 반면 학습은 언어의 규칙을 의식적으로 배우는 과정이라고 정의하며 학습이 곧 습득으로 전환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문법 지도와 같은 형식적인 학습보다는 학습자가 심리적으로 편안한 상태에서 이해 가능한 입력에 충분히 노출되는 것이 습득에 필요한 요건임을 강조하였다. 아동이 적절한 언어 환경에 노출되면서 자연스럽게 모어를 습득하는 것처럼 제2언어도 충분한 입력을 통해 습득이 일어난다고 본 것이다. 아동과 성인의 제2언어 습득을 동일한 조건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습득과 학습을 엄밀히 구별할 수 있는가 등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으나 형식 중심의 문법 지도보다 학습자가 이해할 수 있는 최적의 입력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문법 교육에 대한 비판적 견해는 근본적으로 언어 교육에 주어진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학습자는 목표 언어로 의사소통하는 능력을 빨리 신장시키고자 하는데 교실 수업이 문법의 형식이나 개념 전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면 비판 받는 것은 당연하다. 교사는 교실의 문법이 학습자의 의사소통 능력 신장에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문법이 노출되는 맥락을 조성하고 목표 문법의 학습이 바로 목표 언어의 사용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교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