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18:35 (수)
[문화가로지르기] 우울증
[문화가로지르기] 우울증
  • 김정아 기자
  • 승인 2002.03.2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파스칼과 IMF에 항우울제를?

 

세계정신건강의 날인 10월 10일에 WHO는 21세기 인류를 가장 괴롭힐 질병 중 하나로 우울증을 꼽았다. ILO는 노동자 10명중 1명이 업무로 인한 우울증, 정서불안, 스트레스 등 각종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우울증으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계층은 갱년기 주부들와 구조조정 기업의 사원들. 노화와 권태 혹은 정리해고 위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줄지어 병원을 찾는다는 뉴스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항우울제 개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의사들이 올해 노벨의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우울증이 언제나 질병으로 여겨졌던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우울은 감정 상태가 아니라 체질이었다. 우울질이라는 체액이 점액질, 다혈질, 담즙질과 함께 체액을 구성한다는 것. 플라톤에 따르면, 우울질은 철학적, 예술적 재능을 지닌 민감한 영혼의 소유자로, 신적 환희를 느낄 줄 안다. 2세기에 와서야 명의 갈렌이 우울을 체질이 아닌 감정상태로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우울은 게으르고 나태하고 주기적으로 격분과 정열에 휩싸이는 감정. 한편, 종교적 시각에서 우울은 죄였다.

우울이 병이라고 주장한 대표적 논자는 프로이트. 그는 우울증과 애도를 비교하면서 우울을 ‘증세’로 설명했다. 애도란 사랑하던 사람이나 추구하던 대의를 상실한 사람이 보이는 반응이다. 리비도를 부착했던 대상이 사라질 때 사람은 외부 세계에 관심과 의욕을 잃는다는 것. 반면에 우울증은 자기가 무엇을 상실했는지 모르는 사람이 느끼는 상실감이다. 자기가 무엇을 잃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새로운 대상을 찾을 수 없으며, 따라서 잉여의 리비도가 에고에 갇혀버린다는 것.

“눈을 내리깔고 실연 당한 사람처럼 어슬렁거린다. 인간의 무수한 활동이 아무런 기쁨도 아픔도 주지 못한다.” 프로이트가 묘사하는 우울증의 증세와 유사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 글의 필자인 독일 소설가 호프만의 우울은 인간의 보편적 정서였다. 셸링에 따르면 “우울은 인간의 본성 중 가장 어둡고 가장 깊은 근본”이다. 몽테뉴에 따르면 “우리 시대는 정신적 우울의 시대다”. 한편, 파스칼은 “우울은 신에게 버림받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우울하지 않다면 더 나은 상태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것이 더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오늘날의 의사는 파스칼에게 프로작을 처방할지도 모른다. 물론 파스칼은 자기 존재를 화학식으로 환원하는 현대의 유물론적 심리학을 거부할 테지만. 우울증 환자가 정상인보다 진실에 예민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프로이드였다. 일조량 감소로 가을에 나타나는 계절성 우울증은 5000룩스 정도의 광선치료를 한 시간 정도 받으면 해소된다는 보고도 있듯이, 우울의 원인을 화학물질로 본다면 약물치료가 중요하다. 철학자처럼 실존의 조건으로 본다면,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시대 우울의 원인이 과로와 실업이라면, 주40시간 노동을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정아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