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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국적 포기자, 어떻게 봐야 하나
쟁점:국적 포기자, 어떻게 봐야 하나
  • 김조영혜 기자
  • 승인 2005.06.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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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은 그만"…이중국적과 병역기피 구분해야

▲일러스트:이재열 ©
법무부가 관보를 통해 국적 포기자 명단을 발표하자, 국적 포기자들에 대한 신상 공개를 요구하는 등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학계 인사로 포함된 대학 교수들에 대해서는 해당 총학생회 등이 교수 퇴진운동을 벌이는 등 심각한 사태를 빚고 있다. 국적포기 사건과 관련한 쟁점들을 코스모폴리탄 시대의 세계적 추세와 국민의 권리와 의무의 등가법칙 등의 잣대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국적 포기자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국적 포기자를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조국을 등진 배신자’로만 치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민족감정에 기댄 감정적인 비난이 극한대립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발의한 ‘국적법 개정안’이 국적이탈을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중국적을 이용해 병역을 기피하려는 이중 국적자에 대한 응징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단일 국적만을 고집하는 태도는 국제화라는 큰 틀에서 코스모폴리탄이 늘어나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또, 단일국적을 주장하는 논리가 근대 국민국가를 기반으로 하지만, 국민국가에서 자국민 여부의 판단은 각 국가가 배타적으로 결정하는 것인 만큼 국민국가의 탄생과 함께, 이중국적은 존재해 왔다는 지적도 있다.

 

이중국적, ‘통제’ 아닌 관리’해야
시민권 연구자인 보스니아크(Linda Bosniak)는 “국민국가에 조응하는 국적으로서의 시민권 개념이 국경 없는 시대에 그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다”라며 “국적으로서의 시민권을 넘어선 ‘포스트 내셔널리티’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국민국가의 개념이 모호해지고 시민권의 정체도 불명확해질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국가주의적 국민국가 개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한 원정출산뿐만 아니라 국제결혼, 장기체류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이중국적을 갖게 된 시대적 변화를 감안할 때, 민족주의적 감정과 상류층의 도덕성에 대한 비난만으로 이중 국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정근식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분단체제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한국의 경우, 세계의 국적 정책 흐름을 따르는데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제적으로도 일정한 한도 내에서 이중국적이 불가피하다면, 이중국적에 대한 ‘통제’에서 ‘관리’로 정책기조가 바뀌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양자택일만을 강조하기보다 국적 이탈을 막기 위한 한국정부의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제 3세계와 유럽의 국가들이 이중국적을 인정하는 이유가 인권적 측면에서 시민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국가 자원 활용의 의미에서 이중 국적자가 가지는 경제적 가치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 

 

권리만 갖는 국민은 없다
국민으로서의 권리는 획득하고 의무는 이해하지 않겠다는 이기주의적 태도는 제재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은 국민정서와도 부합하는 명제인 듯 하다. 국적법이 개정되기 전에 국적을 이탈한 국적 포기자들이 비난받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행해야 할 병역 의무를 기피했다는 국민 정서를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법학)는 “징병제 국가에서 이중 국적자가 국적을 포기했다면 병역 기피의 의심을 받을 여지가 충분하다. 대부분의 이중 국적자가 미국 등 외국에서 국적을 취득할 기회를 가졌다는 점에서 사회 기득권층이고, 기득권층의 병역 기피는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비난받을 만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기피한 것은 비난받아야 할 사안이지만, 이중 국적자라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전공자들의 견해다. 국적을 이탈해 외국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국적을 포기한 이들은 합법적인 절차를 밟았을 뿐 일방적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병역 기피자와 국적 포기자의 개념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법학 전공 교수는 “이중 국적자가 하나의 국적을 선택할 때는 어느 나라와 사회문화적 접근이 밀접한가가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병역 기피를 이유로 배신자 낙인을 찍는 것은 무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의 상황에서 어느 국적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는 여전히 개인의 선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겠지만, 한국 국적을 포기한 이들은 국적 포기에 따른 한국민으로서의 권리도 박탈하면 그만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 점을 고려해서 미국 등 많은 나라들의 경우 이중국적자는 국가 고위직 공직자가 될 수 없다. 멕시코의 경우에도 이중국적을 인정하지만, 이중국적자의 참정권을 제한하고 있다. 국가 기밀을 다루거나 정책을 결정하는 고위 공직자의 경우, 국가 안보상 이중 국적자를 제한하는 것이다. 

여기서 간과되고 있는 것은 현행법상 남성의 경우 만 17세 미만의 미성년자가 국적을 선택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국적 선택의 실질적 주체가 부모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자녀의 국적 선택이 부모의 도덕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국적을 포기한 자의 경우, 현행법상 국적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부모가 미성년인 자식의 국적을 함부로 포기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다시 곱씹어 볼만한 문제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국적 선택의 문제를, 부모가 미성년인 자신을 대신하게끔 하는 현 국적법 제도 자체가 가부장제의 또 다른 산물일 수도 있다는 것.

정인섭 서울대 교수(법학)는 “거시적 안목에서 이중국적 자체의 허와 실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중국적을 일부 인사의 도덕성의 문제로 인식해 이중국적 자체를 사회적으로 금기시하는 태도는 건전한 논의와 분석을 봉쇄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또, 이중 국적자에게 복수 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게 한다면, 이중국적 여부가 논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징병제를 실시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중국적이 병역 기피의 도구로 악용돼 왔지만, 병역의 의무 등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한다면 이중국적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의견이다.

이중국적에 대한 세계적 추세는 이중국적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견지하던 유럽심의회도 1997년 유럽국적협약을 채택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국적유일의 원칙을 포기하고 일정한 경우 이중국적의 향유를 개인의 권리로까지 인정한 것. 국민의 의무와 권리를 동시에 이행해야 한다는 시민의식은 강조돼야 하지만, 세계적 추세에 따라 이중 국적을 용인할 수 있는 국제적 감각 또한 필요하다.
김조영혜 기자 kimj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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