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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남성, 소수자/다수자의 경계를 허물기 위한 소통의 공간
여성/남성, 소수자/다수자의 경계를 허물기 위한 소통의 공간
  • 강현아 전남대
  • 승인 2005.06.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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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강현아(전남대·사회학)

너무 일찍 더위가 찾아왔다. 남부지역은 5월인데도 30도에 이르는 기온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찌는 듯 더울 땐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힘겨워 할 일이 걱정이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더위에 지쳐있어야 할 학생들이 입가에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물고 즐거워하고 있다. 강의를 듣는 나이 든 학생이 그 동안 어린(?) 학생들의 배려에 대한 고마움으로 한 턱 냈다보다. 어찌된 아이스크림인지도 모른 채 먹느라 정신이 팔려있는 학생들의 천진함에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하지만, 잠시 뒤 발표 조 학생들의 발표가 시작되자 이내 학생들의 눈빛은 진지해진다.

‘성의 사회학’을 강의하고 있다. 이 강의를 통해 오랜 동안 은폐되고 억압되고 금기시되어 온 성(sexuality)을 공적 장으로 끌어내고 이를 담론화 하여 학생들과 소통하고자 했다. 성매매, 포르노그라피, 성폭력과 같은 성문화와 성규범, 남성의 성·여성의 성, 결혼제도, 성적 다양성으로서 동성애와 트랜스 젠더를 이야기하고, 임신·피임·낙태·출산과 다이어트·몸관리에 대한 영역까지 확장시켰다. 한 학기 동안 교양과목에서 다루는 주제가 너무 많아 버거울 때도 많지만, 학기를 끝내고 난 후의 만족감과 성취감을 학생들과 함께 느낄 수 있어 좋다.

 

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강의시간은 나의 일방적인 강의로 이어지지 않는다. 학생들이 관심있는 주제를 선택하고 같이 발표할 조를 자율적으로 짜도록 한다. 학생들의 발표와 토론, 그리고 관련된 영상을 때로 감상하고 난 뒤 상호의견교환이 이루어진다. 학기 중 한번은 성적 소수자, 예를 들면 동성애자를 강의실로 초대하여 이들의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호기심이 가득 찬 눈빛을 보내던 학생들이 진지하게 동성애자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질문과 토론을 거치면서 어느새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한다.

강의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소통의 중요성이다. 타인과 자신 사이에 가로놓인 경계의 벽을 허물기 위한 소통을 시작하자는 주문을 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기 자신을 둘러싼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회의 성규범과 성문화에 갇혀 있던 자신을 버리고 성의 사회학 강의시간과 강의실이라는 공간 안에서만큼은 평소에 말하지 못했던 성에 대한 생각들을 자유롭게 쏟아내야 한다고. 사회의 모든 금기와 자기감시로부터 자유로워지자고 강조한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학생들이 차츰 강의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거침없이 솔직하게 토해낸다. 이제는 강의시간과 강의실만으로 한정시키지 않는다. 기숙사에서, 카페에서, 술집에서, 집에서 친구들과 선·후배들과 부모님과 성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한다. 토론하다 막히면 새벽이든 밤늦은 시간이든 주저없이 전자메일을 내게 보낸다. 학생들이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에는 가급적 끼어들기를 자제한다. 교수의 지식이 권력이 되어 학생들의 자유로운 ‘말하기’를 방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흔히 말하는 ‘요즘 학생들’의 일상적인 생각을 읽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교수와 학생, 여성과 남성, 선배와 후배, 소수자와 다수자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소통의 시간과 공간을 계속 만들고 싶다. 종강이 얼마 남지 않은 오늘, 한 학생이 제출한 기말보고서의 결론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의 세계와 정신을 가지고 있는 인격체이다. 그것이 여자든 남자든 그 인격은 그 자체만으로도 존중되어야 하며 소중히 여겨져야 할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더 강하다고 해서 약자를 짓밟아서는 안되고 같은 생각을 지닌 다수자가 소수자들을 짓밟아서는 안된다.

 

모두에게는 자유가 있고 그 자유에 따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또한 자유하고자 했던 사람의 몫이다. 결국 모든 행동과 생각의 결과들은 자신들의 책임이다....성매매 여성들의 삶을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지 말자. 그것은 그들은 삶이다. 나는 내가 책임질 만큼의 자유를 행하며 살아야 한다. 모두들 그렇게 살자. 남들의 자유를 비판하지 말고 자신의 자유부터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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