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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_폭력의 진화
문화비평_폭력의 진화
  • 김진석 인하대
  • 승인 2005.06.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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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트럭기사가 자신의 차 밑에 둥지를 튼 딱새가족을 위해 한달 정도 생업을 포기하고 그들을 돌보면서, 그 사정을 인터넷에 올렸다. 어느 날 새끼 여섯 마리가 없어져서 그는 깜짝 놀란다. 동네 아이들의 소행인가 싶어 수소문하기도 하는데, 다음 날 배가 불룩한 누룩뱀을 본다. 뱀이 괘씸해 혼내줄까 생각도 들지만, “자연의 법칙을 따랐을 뿐인 뱀에게 무슨 죄가 있겠냐”고 생각해 자연으로 돌려보내준다. 생업을 포기하면서까지 딱새가족을 보살피던 온정적 평화주의는 뱀의 폭력 때문에 파국을 맞이했지만, 자연의 법칙을 인정하는 선에서 파국은 자연스럽게 봉합이 된다. 폭력은 자연 안에서 죄도 아니기에 벌도 없고, 말도 많은 ‘사면’도 애초에 필요 없다.

그와 달리 인간사회의 폭력은 자연법칙으로 승화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사회법칙’으로도 조정되지 않는다. 자연의 폭력을 공인했던 온정적 평화주의는 오히려 인간적 폭력은 절대 용인하지 않으려고 한다. 죄는 더 많아지고 벌도 따라서 많아지고, ‘사면’은 더 말도 많다. 말이 되지 않는 ‘사면’을 비웃기라도 하듯 죄는 더 많아지고, 근대적 사법체계는 죄-벌-사면의 악순환 속에서 파산직전이다.

다시 자연으로 가보자. 인간은 자연법칙으로서의 폭력에 대해서는 매우 너그럽다. TV에서 사람들은 독사와 호랑이를 비롯한 사나운 맹금들을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동시에 거꾸로, 아주 약한 짐승들이나 심지어 ‘장애’가 있는 짐승들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비용을 들인다. 인간은 자연법칙을 너무 잘 이해하다 못해, 그것을 살짝 위반하기까지 하면서, 확장한다. 왜냐하면 원래는 자연법칙에 의해 자연히 도태됐어야 할 약자를 극진히 보살펴 살리고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원래의 자연법칙에는 속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맹수도 살리고 약한 짐승도 살리는 일은 자연법칙을 위반하면서까지 자연법칙을 확장하는 일인 셈이다. 만일 그렇게 살려낸 약한 짐승이 다시 포식자에게 잡아먹힌다면, 인간은 아쉬워하면서도 다시 그 폭력을 포용할 것이다.

이렇듯 자연법칙을 깨뜨려가면서까지 자연법칙을 이해하고 확장하는 인간이 정작 자신들의 폭력에 대해서는 갈팡질팡한다. 물론 인간이 단순히 무지몽매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는 많은 점에서 과거 사회의 폭력을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해소하고 개선했지만, 오히려 폭력에 대한 감수성과 예민함은 나날이 증대한다. 이상하게 보이지만, 당연한 일이다. 현대 사회에서 조그만 폭력이라도 부당하게 느끼는 경향이 늘어난 것도 진보의 결과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점에서 근대적 인권의식은 폭력에 관한 한 획기적 진보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미시적 폭력의 새로운 발견 속에서 역설적으로 폭력을 더 다양하게 만들고 편재하게 만든다. 사회적 차별의 개선도 눈부시지만, 동시에 차별의 목록은 점점 더 늘어나고 차별에 대한 불만도 더 증대한다. 조금 단순화해서 말하면, 진보 혹은 진화의 수준에 비례해 폭력도 늘어난다.

황우석교수의 배아복제를 둘러싸고 불안이 커지는 것과 동시에 흥분과 열광도 증가하고 있다. 난치병 치유에 대한 기대와 여러 윤리적 불안은 막연하나마 벌써 널리 보도됐다. 새로운 사실은 한국이 국가주의적으로 배아복제연구를 지원하려고 하며, 이에 자극받은 다른 나라 과학자들도 자국 장부에 전폭적인 지원을 요구하면서, 갑자기 폭력적 경쟁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회가 배아연구법을 가결하려는 분위기 속에서, 보수적 근본주의에 의존하는 부시 대통령은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예측된다. “또 코리아야?” 하며 그는 남북한을 골칫덩어리로 여길 듯한데, 이 점이 다시 한국 사회에 도저히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의 매력을 부여하는 듯하다.

사회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역사는 종말을 맞이하고 시장자유주의만이 영속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후쿠야마도 그 이후 다름 아닌 생명공학의 진행 앞에서 안절부절못했다. 유일한 주류로 등장한 듯한 보수주의가 그 과정에서 분열할 것을 걱정했는데, 그 가능성이 크다. 미국뿐 아니라 도처에서 그럴 것이다.
김진석 / 인하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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