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5:45 (금)
[교수논평] 국립대 등록금 인상은 교육의 공공성 망각한 처사
[교수논평] 국립대 등록금 인상은 교육의 공공성 망각한 처사
  • 유초하 / 충북대 철학과
  • 승인 2005.06.0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월 27일에 있었던 ‘네티즌과의 대화’에서 보여준 김진표 교육부총리의 자세는 노무현 정권의 개혁이 적어도 학문과 교육에 관한 한 원천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드러냈다.

김진표 부총리는 “국립대도 서서히 사립대 수준으로 등록금을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정부 재정이 넉넉하다면 사립대 재정지원도 늘리고 국립대 등록금이 올라가지 않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의 세금이 올라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국민생활과 국가적 필요에 따른 예산의 합리적 조정은 고려하지 않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말이다.  예산당국의 판단을 우선시하고 정부 부처간 재정규모 조정의 불가피성을 내세우면서 교육의 공공성을 외면하고 교육에 대한 국가적 책무를 방기하겠다는 것이다.  “국공립대학의 법인화를 통해 자율성을 강화하겠다”는 말은 실상 대학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을 축소하여 공교육의 운영을 시장의 영역 으로 내몰아 일상적 경쟁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교육은 국가사회에서 가장 대표적인 공공영역이다.  국립대 등록금을 올리는 것은 사립대 성원들에게 ‘고통의 공유’라는 상대적 위로감을 제공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없다.  충직한 재단이 운영하는 사립대에 대한 지원을 높여 국립대 수준으로 사교육비를 줄이거나 교육환경을 고급화하도록 하고, 등록금을 빼내가는 기업형 사립대 재단들을 철저히 감독하고 징벌해야 한다. 

현재의 대학서열화와 청년실업의 문제를 완화하는 데에는 교육부가 권장하는 대학의 특성화가 일정한 정책적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기업의 수요와 지역사회의 요구에 맞는 전공분야를 중심으로 대학의 정원과 구조를 바꿔나가는 것으로 실업문제와 학력사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는 없다.  막연히 ‘사회적 수요’를 기준으로 대학을 바꿔나가겠다는 것은 국민적 삶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내팽개치는 것이다. 

기업 중심의 사회적 수요나 국민 개개인의 생활적 요구에 대해 정부는 단순히 통계적 분석을 통한 결과적 인식에 머물 것이 아니라 세계적 문명상황과 역사적 발전방향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수요나 요구를 예측하고 창출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대통령이나 정부가 문명사적 비전을 스스로 지니지 않았다면 전국가적-범민족적 수준에서 그러한 비전을 동원해야 한다.  그러한 비전을 현실화하는 국가적 기획을 세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이른바 선진화를 향한 국가경쟁력은 온당하게 키워질 것이다.  대학의 정원조정이나 구조개혁은 이러한 국가적 기획 아래 진행돼야 한다.

대학서열화와 입시지옥의 문제는 대학을 산업으로 보는 노무현적 관점이나 교육을 사적영역으로 내모는 김진표식 발상으로는 결코 풀어질 수 없다.  대학의 문제를 해결하는 국가적 기획에는 적어도 한 가지의 원천적 발상과 두 가지의 원칙이 포함돼야 한다.  “국가적 선진화는 공동체적 윤리를 바탕으로 하고 학문과 예술을 양대 기둥으로 하는 고급문화를 창출할 때 성취된다.”  이 기본발상에 터하지 않고서는 어떤 국가적 기획도 실질적 의미를 지닐 수 없다. 

이러한 발상의 연장선상에서 요구되는 구체적 정책과제의 하나로 학문의 주체성과 고급화를 설정해야 한다.  학문은 국가발전의 초석이며 핵심적 사회간접자본이다.  산업생산에서의 고도기술-효율경영의 원천인 고급지식은 궁극적으로 순수학문-기초과학에서 나온다.  대학은 이러한 창의적 고급지식의 생산의 장으로 설정돼야 하며, 선진화를 향한 국가비전의 기획과 학문정책의 입안 및 집행에서 교육인적자원부는 현재의 조직을 유지하는 한 중심담당부서가 아니어야 한다. 

미래형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국가적 기획에서 중요한 또 한가지 과제는 학벌/혈연/지연이 중요한 가치를 지닐 수 없는 화해와 평등의 사회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다.  이러한 기획을 실현하는 구체적 정책과제의 핵심은 학벌을 사회적 지위나 대우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 제도를 도입하는 데 있다.  최소한, 동일한 범주의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집단은 비슷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예컨대 대학 교수에서 유아원 교사까지 비슷한 경력의 교육종사자가 비슷한 봉급을 받고, 오물을 수거하는 사람과 외국어뉴스를 번역하는 사람이 비슷한 경제적 향유를 누리게 될 때, 그런 사회를 이룰 때 대학의 서열화와 편중 및 입시지옥 등 대학의 문제는 전반적으로 해소될 것이다.

유초하 / 충북대 철학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