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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게 숙이고 힘껏 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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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정민 무용평론가
  • 승인 2005.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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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비평_앨빈 에일리의 무용 세계

아름다운 분수가 음악에 맞혀 춤을 추는 예술의 전당에서 5월 19~21일에 20세기를 대표하는 현대무용단, 앨빈 에일리 아메리칸 댄스 씨어터가 내한공연을 펼쳤다.

앨빈 에일리는 20세기 중반 백인 주도의 미국 현대무용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구축한 몇 안되는 흑인 안무가로서 일반대중으로부터 주류 무용계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인정받아왔다. 무엇보다 1989년 에일리가 별세한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의 유산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그의 역사적 가치를 말해준다.

앨빈 에일리는 발레에서부터 현대무용, 재즈 그리고 아프로-캐리비안(Afro-Caribean)풍의 춤 충동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춤 스타일을 아우르며 자기만의 색깔을 만들어갔다. 특히 현대무용에 있어서, 그 당시의 많은 무용가들이 그랬듯이 입지전적인 마사 그레이엄과 도리스 험프리, 찰스 와이드만, 한냐 홀름 등 동시대의 선례자들에게 영향 받았다. 그 중에서도 마사 그레이엄의 테크닉, 즉 ‘수축과 이완(Contraction and Release)’ 같이 상체와 골반으로부터 시작하는 움직임 원리들을 적극 수용해 갔는데, 사실 이러한 춤동작들은 에일리가 표명하는 흑인들의 사회적 위치나 삶의 애환과 같은 진지한 주제를 잘 표현해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에일리의 방대한 범주의 춤 영역은 그의 유산이 오랫동안 살아남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이다. 사실, 에일리는 그 자신의 고유한 춤 정체성은 약해보이지만, 즉 독자적인 춤 원리를 확립하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춤 영역을 끌어다가 주제나 분위기에 맞게 적재적소에 활용함으로써 최상의 작품 표현력을 이끌어 냈다. 예를 들어 춤의 서정성을 강조할 때에는 발레적인 신체의 선(line)을, 진지한 주제를 극적으로 표현할 때는 마사 그레이엄식의 상체 움직임을, 흑인 특유의 탄력적인 몸놀림과 풍부한 감성을 담아낼 때에는 재즈적인 움직임을, 그리고 춤 충동성이나 리드미컬한 감각을 표명할 때는 아프로-캐러비안풍의 춤을 적극 활용해갔다. 보다 최근에 앨빈 에일리 무용단의 새로운 안무가들은 힙합 등과 같은 현재 진행하는 춤 트렌드를 직접적으로 투영함으로써 작품에 동시대적인 활기를 더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에일리 무용단은 소속된 안무가들뿐만 아니라 무용계에서 주목받는 여러 안무가들에게 작품을 위촉하는 시스템을 잘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에일리 무용단의 표현력과 레퍼토리를 다양하게 늘려가고 있다.

이렇듯 에일리의 정신을 이어받은 무용단은 개방적인 접근 방법과 수용력을 바탕으로 시대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왔고, 많은 역사적인 현대무용단들이 설립자의 死後에 협소한 고유성만을 고집하다 현실적 적응력이 떨어져 자연 도태되었던 것과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

특히, 에일리는 20세기 중반 당시 순수 예술무대 위에서 암암리에 등한시 해왔던 흑인들에 관련된 주제를 전면에 내세웠던 무용가며, 더 정확히 말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했던 무용가였다. 앨빈 에일리는 다민족주의, 미국 내 흑인의 역사나 사회적 위치 등과 같이 비교적 진지한 주제들을 표명하면서도 흑인 특유의 리드미컬하면서도 감각적인 춤사위로 주제가 갖는 무거움을 희석시킴으로써 관객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갔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20세기 중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관객들에게 에일리와 그의 무용단만의 색깔을 각인시킨 예술적 특질이다.

앨빈 에일리의 불후의 명작이라 함은 곧 ‘계시(Revelation)’를 떠올리곤 한다. 이 작품은 에일리가 불과 29세의 나이에 창조해 낸 것으로, 그의 어린 시절의 경험들이 반영돼있다. 1931년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난 앨빈 에일리는 이미 여러 세기 전부터 이어져 온 흑인에 대한 불평등을 몸소 겪으면서 자라났다. 이와 더불어 부모의 이혼과 가출 등으로 순탄치만은 않은 유년 시설에, 에일리의 안식처는 바로 침례교회와 주일학교였고, 그곳에서 접했던 다양한 흑인 예배문화들은 후에 그의 작품 세계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슬픔의 순례자’, ‘나를 데려다주오’, ‘움직여요 여러분, 움직여’의 3부분으로 진행되는 ‘계시’는 흑인 예배와 그 안에 산재한 블루스, 흑인영가, 가스펠 등의 문화들을 소재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리고 에일리는 탁월한 안무력을 발휘해 그 이면에 미국 흑인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축약함으로써 ‘계시’를 역사적인 명작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계시’는 1960년 초연된 이후 현재까지 시대를 초월한 감흥을 전해주었고 이번 내한공연에서도 같은 감동을 선사했다.

내한공연 프로그램에는 들어있지 않지만 에일리의 또 다른 대표작 ‘크라이(Cry)’는 “이 세상의 모든 흑인 여성들 특히 우리 어머니들”에게 헌사되어 그들의 고통과 타락, 수치 등을 씻어내는 춤이다. 에일리는 1972년 주디스 제이미슨의 무용수로서의 천부적인 재능에서 영감을 얻어 그녀를 위해 이 작품을 안무했다. 그리고 제이미슨의 무대를 압도하는 폭발적인 표현력과 테크닉은 그녀를 곧 ‘크라이’와 동일시되게 만들었다.

내한 공연한 작품들 중에서 최근작 ‘러브 스토리즈’는 에일리 무용단이 추구해가는 예술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 ‘러브 스토리즈’는 2004년에 3명의 안무가가 공동 안무한 작품으로, 예술 감독인 주디스 제이미슨, 힙합계의 선구자 레니 해리스 그리고 현대무용계의 이단아 로버트 배틀이 각각 에일리 무용단의 과거, 현재, 미래를 그려냈다. 이 공연작품은 에일리의 전통적인 춤 스타일, 대중적인 춤 트렌드인 힙합, 동작의 유연한 흐름을 강조하는 현대무용의 최근 성향을 상존시키는 한편 이 모든 것을 다재다능하게 소화해 내는 에일리 무용단의 역량을 십분 보여주고 있다.

영원한 ‘크라이’의 히로인 주디스 제이미슨은 1989년 앨빈 에일리가 별세한 이후부터 무용단의 예술 감독직을 맡아왔다. 제이미슨은 무용수로서의 재능뿐만 아니라 무용단을 이끌어가는 데에도 탁월한 능력을 가진 듯하다. 많은 역사적인 무용가들의 무용단조차 사후에 크고 작은 어려움에 봉착해 존폐의 위기에서 허덕이는데 비해, 앨빈 에일리 아메리칸 댄스 씨어터는 설립자의 사후 15년이 지난 지금에도 건재함을 과시하며 그의 유산을 이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앨빈 에일리는 20세기 중반 백인 일색의 현대무용계에서 흑인 무용가가 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예술세계를 펼쳤다. 동시에 에일리는 미국의 순수예술로부터 대중문화까지 포괄하면서, 다민족국가의 문화적 다양성과 그 속에서의 융합을 작품에 그려냈다는 점에서 가장 미국적인 예술을 표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무용단은 전 세계적인 순회공연을 통해서 하나의 미국 문화사절단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의 많은 현대무용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머리를 싸매고 봐야할 정도로 어렵고 복잡 미묘하게 전개되는 반면에, 내한한 앨빈 에일리 무용단은 어떤 진지한 주제를 표명하든지 간에 근본적으로 흑인 특유의 리드미컬하고 감각적인 춤 그리고 열정적인 춤 에너지를 선보임으로써 대중에게 손쉽게 다가갔다. 실제로 공연 현장에서의 관객의 호응도는 과히 폭발적이었다. 바로 이것이 급변하는 예술 경향과 관객의 요구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앨빈 에일리 아메리칸 댄스 씨어터만의 근원적인 특질이자 매력인 것이다.

심정민 / 대진대 무용평론가

필자는 이화여대에서 ‘19세기 프랑스 무용비평이 20세기 초 미국무용비평에 미친 영향’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무용비평이란 무엇인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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