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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국적 생산방식은 가능한가』조형제 지음, 한울 刊, 258쪽, 2005
서평: 『한국적 생산방식은 가능한가』조형제 지음, 한울 刊, 258쪽, 2005
  • 박준식 한림대
  • 승인 2005.06.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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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이즘' 공격적 생산 확대로...경영시스템의 합리적 개혁 제안

박준식 / 한림대·사회학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자동차, 전자, 조선, 철강 등 주요 제조업 부문에서 더욱 현저하다. 이 중에서도 특히 한국의 대표적 자동차 메이커인 현대-기아차는 세계 시장에서 질주를 거듭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인도, 중국, 중동, 동유럽에 이미 생산과 판매 거점을 성공적으로 구축하였을 뿐 아니라, 마침내 올해에는 자동차 시장의 최대 격전지인 미국에 생산 거점을 건설함으로써 글로벌 생산 체제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몇 안 되는 세계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할 가능성을 가시화하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로 등장하면서 한국의 제조업을 대표하는 이 회사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크게 증가하였다. 수많은 국내외 대중 매체들과 경제 전문지들이 현대-기아차의 성장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이 회사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지난 수 년 동안 현대-기아차가 이룩한 품질과 이미지, 가격과 기술 경쟁력의 놀라운 성과에 대하여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대로라면 현대-기아차는 머지않아 일본과 독일 등 선진국의 시장 선도 기업들과 충분히 어깨를 겨룰 수 있다는 낙관론이 팽배해 있다.

그러나 쏟아지는 찬사와 기대에도 불구하고 현대-기아차를 중심으로 발전해 온 한국 자동차산업의 속살에 대해 장기간에 걸쳐 깊이 있게 분석하고, 급속한 성장과 성공의 이면에 감추어진 내면의 핵심 과제들에 대한 해법을 천착한 학술적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현대차 뿐 아니라 한국 자동차산업, 더 나아가 한국 제조업의 글로벌화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 역시 피상적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출간된 조형제 교수의 책 ‘한국적 생산방식은 가능한가?: Hyundaism의 가능성 모색’은 현대-기아차의 내면에 대한 냉정한 심층 연구를 통해 한국 자동차산업의 대표 기업의 현 상황과 문제, 앞으로 극복해야 할 핵심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저자가 서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지난 20여 년에 걸친 한 학자의 열정과 각고의 노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문으로 나뉜다. 생산방식과 작업조직을 다루는 제1부에서는 현대자동차에서 추진되어 온 유연생산체제와 작업조직, 생산방식의 국제 비교, 셀 생산방식 등 다양한 형태의 생산 시스템 혁신을 위한 실험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추진되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현대차에서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던 유연적 자동화와 생산 조직 혁신 노력이 기업지배구조, 노동 배제형 인적자원 관리, 대립적 노사관계로 인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필자의 지적은 현대차가 도달할 수 있는 성과와 현재의 한계를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제2부는 현대자동차의 인적자원관리와 노사관계에 대한 연구에 집중되고 있다. 이 회사의 숙련 형성과 교육훈련, 고용 조정과 노사관계, 그리고 생산합리화와 노조의 대응에 대한 심층적 논의를 통해 현대차가 세계적 수준의 자동차 메이커로 발전하는 데 필요한 핵심 과제들을 논의하고 있다. 고용조정, 인적자원 관리, 그리고 생산 합리화 전략 추진 과정 분석을 통해 필자는 현대차가 글로벌 기업의 위상 확보를 위해서는 노사관계의 선진화를 위한 노사의 노력이 절실하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제3부에서는 ‘모듈화’로 지칭되는 부품공급 시스템과 경영 시스템에 대한 분석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대차의 핵심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추진되어 온 생산의 모듈화는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데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한 고용 문제의 부각, 노사 긴장의 증가 문제가 새로운 과제로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산업구조 조정과 생산 합리화에 대한 논의에서는 재벌 주도적 산업 생산 체제의 성격과 개혁 과제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한국 자동차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획득하고, 한국 나름의 독창적 방식으로 일본이나 독일 등과 견줄 수 있는 독자적 생산 방식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데 필요한 절실한 과제들을 제시했다. 현대차로 대표되는 한국 자동차산업이 일본의 ‘도요다 방식’과 경쟁할 수 있는 ‘현대이즘’을 실현하기 위해 넘어야 할 과제들에 대한  지적은 자동차산업 뿐 아니라 대다수 한국 기업들에 던지는 저자의 고뇌에 찬 문제 제기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특히 노동자들의 창조적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인적자원관리, 상호 불신의 대립적 노사관계, 재벌 체제의 수직적 통제 시스템, 중소부품업체들과 하청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혈을 요구하는 수직적 하청구조 등은 현대차가 국제시장에서 여전히 중·저가 중심의 가격 경쟁력에 의존하면서 저가 제품의 대량 생산을 추구하는 공격적 생산 확대에 주력해야 하는 근본 이유를 설득력 있게 말해준다. 저자의 이러한 문제제기에서 우리는 참여적 생산 조직, 숙련에 대한 투자, 노사관계의 전환, 부품업체들의 경쟁력 향상, 경영 시스템의 합리적 개혁이 현대자동차가 진정한 글로벌 메이커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핵심적 과제라는 사실을 읽어낼 수 있다.

조 교수의 이 책은 한 기업을 중심으로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연구이다. 그러나 이 연구는 단일 기업을 넘어 전체 업종, 나아가 한국 기업들이 추구해야 할 미래의 청사진에 대한 풍부한 함의를 담고 있다. 한국 기업에 대한 한 사회학자의 열정적 도전과 문제 제기가 우리 기업의 선진화를 촉진하는 데 작은 초석이 될 것으로 확신하며, 계속되는 후속 연구를 기대한다. 

필자는 연세대에서 ‘중공업 대기업에서의 노사관계 유형에 관한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노동자들이 본 동아시아 다국적기업’ 등의 논문이 있고, ‘구조조정과 고용관계 변화의 국제비교’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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