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8:05 (금)
서평_『우승열패의 신화』 박노자 지음| 한겨레신문사 刊
서평_『우승열패의 신화』 박노자 지음| 한겨레신문사 刊
  • 하원호 성균관대
  • 승인 2005.05.3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논리의 유비에 빠진 '역사의 차이'

“개방시대 경제에 애국심이란 없다. 힘센 자는 계속 잘나가고 힘 약한 자는 죽게 될 뿐이다.” (한겨레신문, 5월 25일자)

한국은행 박승 총재가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한 말이다. 경제안정을 임무로 삼는 한국은행 총재가 했다고는 믿기 어려운 이 기막힌 말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힘에 대한 끝 간 데 없는 신앙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 ‘힘의 신앙’은 오래 전에 닮은꼴이 있었다. 다음은 박노자가 인용한 1893년 윤치호가 쓴 일기 속의 글이다.

“나태와 무식으로 자기 개선을 이루지 못하여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인종은 결국 한계에 도달하여 더 이상 존재할 의미를 상실한다”(윤치호일기 3권, 1893년 10월 14일)

박노자의 책은 현재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힘의 신앙’의 기원을 찾아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뿌리는 인종주의에 기반한 사회진화론이다. 이 책에는 근대 서양과 일본, 중국, 한국의 지식인들이 왕창 등장한다. 서양만 해도 사회진화론의 원조 스펜서(Hurbert Spencer)는 물론이고, 밀, 헤겔, 다윈 등등 알만한 인물은 다 한두 마디 한다. 근대 자본주의가 ‘힘 숭배’의 담론에 빠져 있는 탓에 뭐 굳이 사회진화론이 아니라도 ‘우승열패’의 힘에 대한 신앙은 근대의 뿌리다.

이 ‘힘의 신앙’이 일본으로 전파돼 한국의 유길준이나 개화파들은 후쿠자와 유키치를 비롯한 이들 일본 지식인에게 한 수 배우고, 중국의 량치차오가 일본 가서 이를 배워 책을 쓴 후에는 한국의 개신유림들이 이 책을 통해 익히면서 계몽운동기의 인식론이 되고, 이를 다시 일제시기의 지식인 이광수 등이 잇고, 이광수를 읽은 박정희가 배우고…. 물론 이 책에서는 박정희에서 끝나지만, 박정희의 무릎 밑에서 커온 관료나 지식인이 어떻다는 것은 말 안해도 다 안다. 몇 년전 월드컵에서의 붉은 물결도 박노자에 의하면 이 혐의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한 마디로 사회진화론의 도입 이래 우리의 의식세계는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결론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아나키스트가 된 신채호도 있고, 공산주의자가 된 이동휘도 있고, 불교의 한용운도 있지만, 이들은 소수이고 근 백년 넘게 한국 지식인의 사상적 계보는 ‘우승열패’라는 사회진화론의 연장에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사회적 인식체계를 ‘힘의 신앙’으로 보고 그 뿌리에서부터 브로델식의 ‘장기지속’을 주장하는 박노자의 나름대로 실증을 통해 내린 결론은 그의 질풍노도같은 명쾌한 글솜씨와 함께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현재의 우리가 서있는 자리를 돌아보게 한다.

하지만, 인간의 의식이란 놈이 머리든 가슴이든 한번 박히면 대를 이어 그토록 뿌리 깊게 지속되는가는 생각 좀 해봐야 한다. 인간과 사회의 의식구조를 밝히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박노자처럼 기원에서 출발해 사승관계과 언어적 유사성으로 설명하는 것이 흔히 사상사 연구자가 택하는 방법이다. 고전적 이 방법은 글쓰기는 편하지만, 모든 사상이 사회사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사상이 놀고 있는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 없이는 제대로 된 학문적 방법론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앞서 인용한 박총재와 윤치호의 글은 닮았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 의미는 다르다. 힘을 존중한다는 외면적 유비에서는 닮았지만, 이미 민족을 벗어야 될 거추장스러운 껍질로 보는 신자유주의의 입장에 선 2005년의 박총재와는 달리 1893년의 윤치호는 19세기 말 제국주의 침략기에 한국이 근대적 각성을 통해 민족국가를 이루기를 바라는 입장에 서 있었다.

박노자식의 글쓰기식으로는 박총재의 뿌리가 윤치호일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역사적 조건이 전혀 다른 시대의 논리가 언어가 유사하다고 같은 내용이 될 수는 없다. 사회구조에 대한 고려를 전혀 하지 않는 의식의 ‘장기지속’은 의미가 없다. 역사는 온실 속에서 사유할 수 없다. 의식세계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사회의 산물이다.

그러면 박노자 같은 지성이 혹할 정도로 왜 그렇게 2005년의 말과 1893년의 말이 닮았을까. 간단하다. 모든 사회적 행위가 경쟁으로 점철되는 근대자본주의의 사회구조 속에 있었고, 또 있기 때문이다. 물론 1893년은 자본주의체제가 형성된 때는 아니다. 윤치호가 꿈꾸던 세상이었고, 그 꿈의 실현방법을 일기에 적었던 것이다.
보론에서는 한국역사학의 비판적 극복을 위해 다원주의를 주장한다. 가치중립적인 입장을 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경청할 만하다. 그런데 박노자는 논문도 왜 이렇게 재미있게 쓰는지 모르겠다. 갑갑한 역사학자들도 글쓰기는 좀 배웠으면 싶다.

하원호 / 성균관대 한국근대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