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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집'같은 '새 집'에 담긴 사연
'헌집'같은 '새 집'에 담긴 사연
  • 박길룡 국민대 건축학
  • 승인 2005.05.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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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현대건축-2. 건축의 사회적 의사표현-'기차길옆공부방'

그림으로 보는 현대건축 2. 건축의 사회적 의사표현 '기차길 옆 공부방'

이번에 만나는 건축은 한껏 뽐내는 멋쟁이가 아니다. 여유롭지 못한 주변 동네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함께 어울릴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하는 건축이다.  사회적 의사를 담은 건축. 이일훈의 ‘기차길 옆 공부방’은 적은 예산으로 ‘공동체 정신’과 주변 동네 사람들의 정서를 담고자 했다. 작은 땅위에 주변을 끌어 안는, 소박하지만 넉넉한 ‘품’을 가진 환영받는 ‘이웃집’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건축가 이일훈에게 첫 과제는 ‘공동체 정신’의 표현과 동네 사람들의 정서를 담아내는작업이었다. 건축주는 문열면 바로 부엌과 방이 보이는 주변 동네의 정서를 이해하기를 바랐다. 건축주는 또 달동네의 건축적 특징을 설명하면서 “수십채의 집이 하나의 ‘공동화장실’을 쓰는데 새로 짓는 집에 ‘화장실’을 갖춰 놓으면 동네 사람들이 편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라며 넉넉한 품을 담아내기를 요구했다. 완공된 뒤에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웃집’이 되기를 바랐다.

‘기차길 옆 공부방’은 옥상까지 올라가는데 ‘제어장치’가 없다. 수평적인 동네의 길과 이 건물의 수직 길(계단)이 만났다. 층마다 계단형식을 다르게 해서 옥상까지 ‘열린 공간’이 되도록 했다. 옥상은 이 동네의 또 다른 놀이터다. 가장 폐쇄적인 공간을 누구나 발길이 닿을 수 있게 했다. 이런 정서적 맥락을 건축화 한 것이 ‘공부방’의 생명이다.

땅이 너무 좁아 외부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려면 옆집 담을 허물어야 했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옆집을 허물지 않고, ‘좁은 계단’을 만들었다. 옆집 사람들도 이런 ‘이웃집’을 환영했다. 1층은 공부방, 2층은 살림집과 회의실, 3층은 작은 방과 ‘열린공간’ 옥상이 마련됐다.

이일훈은 “공부방이지만 공부를 가리킨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남선생님은 ‘삼촌’이고, 여선생님은 ‘이모’라고 부른다”며 이 건축을 이해하는 ‘키워드’라고 설명했다.

공부를 하겠다는 아이들의 우선순위는 첫째가 ‘결손가정’의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을 먼저 챙긴다. 때문에 건축가는 건축물을 알리기 위해 사진도 찍지 않았다. 혹시나 아이들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건축비평 / 박길룡 국민대 건축학과

▲박길룡 국민대 건축학 ©
만석동(萬石洞), 동네 이름치고는 참 아이러니한 빈궁(貧窮)의 마을이다.

해방전부터 인천으로 모인 부두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주거 권역이 형성되고, 도시 빈민이 이입되면서 현재의 모습이 굳어졌다. 아직도 주거 환경이 열악한 저소득층의 밀집 지역으로서 인천의 환부(患部)이다.

한국의 근대 문학에서 ‘빈민’의 무대는 곧잘 등장한다. 그만큼 처절한 삶의 내용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을 들여다 보기에 명징하리라. 너무 없기 때문에 건축은 서투른 조형의 손이 닿을 여지조차 없으며 스스로 만들어가는 텍토닉이다. 척박하지만, 맹목적인아파트 건물보다는 생생함이 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김중미), '우리 동네에는 아파트가 없다'(김중미)는 인천 만석동 궁핍의 동네를 사실로 그린다. 그 사실의 무대가 만석동이며 작가 김중미는 여기에 스스로 둥지를 튼다.

아마 건축가 이일훈이 만석동 공부방의 설계를 의뢰 받고는, 긴 호흡을 가다듬었을 것이다. “나는 이 땅의 건축가들이 어떻게 만드느냐 라는 문제보다 왜 만드느냐를 먼저 물었으면 좋겠다....어떻게 만드느냐 보다 왜 만드느냐가 더 중요하다. 왜 만드느냐가 내게는 힘이다.” -이일훈. 건축가는 아마 설계도 거저 해 주었을 것이다.

얽히고 설킨 주거 건물들은 남의 발등을 밟고, 허리춤을 잡거나, 무등을 타면서 지어진다. 최대의 생화 밀도를 쑤셔 넣어야 한다. 그 궁핍의 동네 사람들은 같이 사는데 더 익숙하다. 어느 부촌보다 길은 깨끗하고, 비록 공동변소이지만 청결하다.

 집집마다 내놓은 화분들이 길꽃밭을 이루기에 충분하다. 거기에서도 아이들의 미래는 배움에 있다. '기차길 옆 공부방'은 이 공동 사회의 별당(別堂)이다. 그들에게, 안심할 수 있는 장소, 삶을 문명과 문화로 이어 볼 창구, 이웃을 사회할 공간, 그리고 과외 공부 등이 이일훈이 왜 만드느냐의 일이다.

건축가가 일찍부터 한국 건축의 특질에서 발견한 ‘채 나눔’의 방식은 그래도 길과 여백과 건축 공간이 있을 수 있었던 조건에서의 생각이었다. 이 만석동에서는 주어진 대지를 모두 짜내어 채워도 필요한 프로그램을 충족시키기 어렵다. 그래도 그는 외부에 오르는 길을 두고, 옥상에라도 마당으로 나누어서 공간 사이를 열어둔다.

어떤 뜻에도 불구하고 이 건축은 그렇게 여유로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조그만 공동체를 위해 이일훈은 이 건축을 아주 값싸게 짓지 않으면 안되었고, 또한 뭔가 특별한 소유의 의식을 주고 싶다. 그들에게 최소한의 안식 공간이지만, 그래도 문화가 향유되어야 한다. 그가 그들과 만나는 방법은 그냥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값싸게 짓는 것은 재료를 아끼고 구법을 간소하게 하면 어느 정도는 해결된다.

보다 중요한 것은, 김중미의 소설이 그렇듯, 이 삶에 대한 각별한 이해와 애정이다. 그러고도 이 근린의 건축은 언제부터인가 전에부터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듯 하여야 한다. 그래서 건축은 커다란 한 덩이가 아니고, 잘게 저며지며, 콘크리트와 목재라는 재료는 낡은 주택들과 같은 시간성을 향한 몸짓이다.

지금도 상윤이, 상민이, 상미, 또는 상희의 또래들이 이 근거를 따듯하게 품는다.

필자는 건축의 역사와 현대적 동향을 찾는 것이 전공이다. 특히 건축비평가, 이론가로서 날카로운 시선과 현장성을 지닌 비평을 해왔다. 저서로 '건축이라는 우리들의 사실'이 있으며 최근에 '한국현대건축의 유전자'(SPACE刊 2005)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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