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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y die, You die"
“They die, You die"
  • 김조영혜 기자
  • 승인 2005.05.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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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 평생 새를 좇아 새와 살다

“쿵쿵쿵, 쿵, 쿵, 쿠르르릉”하는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1백 킬로미터, 10 킬로미터, 아니면 1 킬로미터 밖에서 나는 것일까? 포대가 연습을 하고 있나? 당시에는 한국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것이 목도리뇌조수컷이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날개를 치는 소리임을 알게 되었다. - ‘숲에 사는 즐거움’(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 사이언스 북스 刊) 중에서

무엇이 인간의 새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키는 걸까.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는 그 답을 ‘숲에 사는 즐거움’을 통해 간단히 정리한다. 대포 소리인 줄 잔뜩 겁을 먹었다가 수컷 새가 암컷을 유혹하려 낸 소리인 줄 알게 됐을 때, 그는 새라는 생명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충만해진다. 바로 그 호기심이 수년간의 숲속 생활을 거쳐 생물학자가 되기까지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베른트 하인리히의 자서전 성격을 띄고 있는 이 책은 전쟁통에 부모와 함께 피난을 떠나 독일 함부르크 숲 속에서 5년간이나 살아야 했던 시절, 1951년 미국으로 부모를 따라 이민, 메인주의 한 농장에 정착한 이야기 등을 담담히 풀어내며 개인의 삶과 과학의 삶 사이에 주조된 자연적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새를 쏘아 잡고 그것들을 솜을 채워 박제하는 것이 ‘조류학’이라고 생각했다”라고 고백하는 저자가 생물학자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따뜻한 비가 내린 후 푸르다 못해 거의 투명한 너도밤나무 잎이 돋아나면 날개짓 하는 새들을 찾아다니는 어린 아이가 눈에 선하다. 나뭇가지 위에 내려앉거나 매달리는 폼이 곡예사 같은 푸른 박새나 구애를 위해 거의 2분마다 꼬르륵꼬르륵 부드러운 딸꾹질 소리를 내다가 이어 1초에 여섯 번 정도 음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노래를 부르는 수컷 누른도요는 저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음에 틀림없다.

특히 새가 둥지로 무엇을 물어오는가를 알기 위해 몇 시간이나 새를 관찰하고 그 미묘한 차이를 알고서 기뻐하는 저자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은 이 책이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게다가 관찰한 새의 모습 중 어느 것 하나가 본격적인 연구 주제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고 더 많은 질문을 던질수록 더 많은 것이 밝혀진다는 점에서 생물학자로서는 더한 즐거움이 없을 듯 하다. 그는 “내가 ‘끝낸’ 과제가 다른 사람에게는 연구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연구 분야가 생겨난다”라며 경이로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베른트 하인리히는 “바로 여기에 나를 평생토록 사로잡을 것이 있다는 사실”이라며 숲에 사는 즐거움을 전한다.

‘새:한국의 새와 함께한 45년, 생태 사진가 유범주의 새 이야기’(유범주, 사이언스북스 刊)는 사진으로 새에 대한 관찰기를 써 내려갔다. 새들의 탄생, 사랑, 다툼, 죽음 등 새에 관한 모든 것을 5백여컷의 사진 속에 담았다. 이 책은 아름다운 사진집인 동시에 새에 대한 완벽한 안내서다. 30만장 가까운 사진들에서 엄선한 5백여컷의 새 생태 사진과 기록들을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이 교차하는 새들만의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저자가 몇 십킬로그램에 달하는 장비들을 들쳐 메고 더우나 추우나 전국 산간 오지를 돌아다니며 새 사진을 찍고 그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긴 흔적을 한 권의 책으로 마주하게 된다.

드높은 창공을 유유히 가르는 흰꼬리수리, 설원 위에서 사랑의 춤을 추는 두루미 한 쌍, 암컷에게 물고기를 선물하는 쇠제비갈매기, 두엄 더미를 뒤져 새끼에게 줄 먹이를 찾는 후투티, 먹이 사슬의 꼭대기에 군림하는 매 등 흥미진진하고 생동감 넘치는 사진들은 새들의 생태에 관한 놀라운 정보와 생명의 아름다움에 대한 신선한 깨달음을 준다. 2005년 올해의 논픽션상 생할과 자연 부문 수상작인 이 책은 작가 정신이 묻어나는 생태 사진가의 작품집이기도 하다.

‘숲에 사는 즐거움’과 ‘새’가 숲에 사는 동식물, 새에 대한 관찰기라면, ‘천상의 새:두루미’는 오직 두루미 하나에만 집중한다. 이 책은 자연연구가이며 환경운동가인 피터 매티슨이 세계에 남아 있는 15종의 두루미를 찾아 세계의 모든 대륙을 찾아다닌 길고 긴 일지를 풀어쓴 형식이다. 시베리아의 아무르 지역에서 일본,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서유럽에서 아프리카까지를 두루 돌아다니며 두루미의 행적을 쫓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두루미일까? 왜 새일까, 의 질문이 아직 풀리지 않은 채 두루미로 넘어온 셈이다.

두루미는 전설 속에서 때때로 하늘의 파수꾼으로, 장수와 행운의 전조로 상징된다. 두루미는 뛰어난 아름다움과 위압적인 체구, 비행할 수 있는 조류 중에서 가장 크다. 이러한 이유로 두루미는 신성시되기도 했다. 야쿠티아인들은 두루미를 아래 세상과 위 세상을 이어주는 영매로 여기기도 했다. 아래 세상으로 가기 위해 샤먼이 흑두루미로 변신하고 위 세상으로 날아가기 위해서는 흰 두루미로 변신한다는 믿음 말이다.

그러나 피터 매티슨이 두루미를 쫓아 전 세계를 돌아다닌 것은 두루미의 신성함 때문만은 아닌 듯 하다. “두루미요? 그런 데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있단 말예요?”라는 질문에 피터 매티슨은 “두루미는 위엄이 있고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모든 생물의 전령이자 상징”이라고 말한다. ‘They die, You die'라는 환경운동의 슬로건이 말하는 최후의 They가 두루미인 셈이다. 실제로 두루미는 현존하는 15개 종 가운데 11개 종이 인간에 의해서 위협받거나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키가 크고 자태가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성격이 야성적이고 격렬한 이 품위있는 새들이 사냥, 독극물, 덫 등 직접적인 공격이나 환경오염을 통해 깨끗하고 신선할 물이 사라지는 간접적 타살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몸을 지면과 평행을 이룬 채 날개를 접고 내려앉을 때 길고 곧으며 우아한 꼬리 깃털을 자랑하는 두루미는 목을 어깨 위로 구부리지 않고 곧게 편 채 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두루미가 한국에도 날아든다. 한국에서도 붉은머리두루미는 현자, 학자, 음악가들의 존경받는 벗이었다. 7장 ‘우연히 생긴 낙원’편에는 한국의 DMZ가 소개돼 있다. 폭이 4킬로미터이고 길이가 2백38 킬로미터의 무인지대 DMZ는 지구상에서 가장 엄격하게 감시받는 야생동물 보호지역이며 두루미들에게는 우연히 생긴 낙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재두루미가 가장 대규모로 집결하는 한강 어구의 중간 휴식지는 상류의 댐과 제방 건설로 인한 염분농도 상승 때문에 환경이 나빠졌고 그 뿌리가 두루미들의 먹이가 되는 사초가, 침입한 갈대에 의해서 밀려나고 있다. 중요한 겨울 서식지의 상실로 인해서, 개체수가 크게 줄어든 이 두 종의 두루미들에 대한 위협은 더욱 가중될 것이라는 저자의 예상은 안타깝게도 적중한 듯 하다. 낙동강의 흑두루미는 서식지가 거의 다 파괴되었고 한강과 임진강 서식지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철원분지만이 두루미의 마지막 피난처로 남았기 때문이다.

새들의 멸종을 걱정하는 것은 세 권의 저자 모두가 마찬가지다. 베른트 하인리히는 “새 사냥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자연환경이 파괴되면 어차피 새들이 살 수 없는데도 환경 파괴를 금지하는 법은 없으니 이상한 일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평생 이 언덕에서 새 사냥을 하고 살아도 새의 개체 수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지 않고 설령 영향을 준다고 해도 새의 개체 수는 1년 정도 지나면 회복될 것이지만, 서식지를 파괴하면 새들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생태사진가 유범주는 ‘새’의 뒷부분에 새 사진을 찍으며 느낀 감상을 ‘사진일기’로 남긴다.

사진 일기 중 하나.
“93. 12.19. 충남 서산 노랑 부리 저어새 천연기념물 제205호
세계적인 희귀조, 한 쪽 발은 어디에 있을까. 왜, 누가 그랬을까.”
김조영혜 기자 kimj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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