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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역사_ 공자의 논어
번역의 역사_ 공자의 논어
  • 전호근 경기대
  • 승인 2005.05.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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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문법으로 번역하길 바라며"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는 ‘논어’이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논어를 번역하는 일이 오히려 난해한 문헌을 번역하는 것보다 어렵다. 논어에 관한한 최고의 주석가라고 할 만한 주희의 경우도 자신의 ‘논어집주’에서 “어떤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未知孰是)”라는 문구를 여러 차례 삽입해 스스로 텍스트의 내용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하물며 주석과는 달리 완전한 번역어를 제시해야 하는 번역의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현재 논어의 우리말 번역서는 시판되고 있는 것만 1백60여종에 이르고 있으며 절판된 책까지 모두 합치면 3백종이 넘는다. 어떤 동양고전보다 많은 양이다. 하지만 수많은 동양고전 가운데서 논어가 가진 특별한 지위를 감안한다면 그리 많은 양이라 할 수 없다.

우리 나라에서 논어 번역의 역사는 16세기의 ‘논어언해’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근대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번역은 1909년 최남선이 간행한 종합잡지 ‘소년’ 9호~12호까지 실렸던 ‘소년논어’라 할 수 있다. ‘소년논어’는 비록 완역은 아니지만 원문의 내용을 우리말로 옮기는 수준에 그친 것이 아니라, 원문의 신성성을 떨쳐버리고 주체적인 의미의 번역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소년논어’는 단순히 한문 문자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선에 그치지 않고 삶의 문맥을 활용해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대중어를 이용해 번역했다는 점에서 깜짝 놀랄 만큼 생동감이 뛰어나다. 완역이 되지 못하고 팔일편 첫부분에서 중단되고 만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최남선 이후 지금까지의 논어 번역사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으로는 1974년 박영사에서 문고판으로 간행한 이을호가 옮긴 ‘한글 논어’를 들 수 있다. 이을호 역은 원문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하게 우리의 일상언어로 바꾸어 번역했는데, 자연스러운 대화체를 사용함으로써 마치 공자의 육성을 직접 듣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간결 명료한 번역으로 원문과의 대칭적 구조까지 살렸다는 점에서 절묘한 번역이라 할 만하다.

또 이을호 역은 삶의 문법이 분명히 보이는 번역으로 당시 65세, 막 정년을 앞둔 노학자의 치열한 학문역정을 엿볼 수 있을뿐더러 번역을 통해 권위를 굴레를 벗고 일상 속으로 다가오는 공자의 모습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앞으로 논어를 번역할 이들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탁월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간행된 1백여종에 가까운 논어번역서 가운데에도 훌륭한 것이 많다. 이 시기의 논어 번역서는 주희나 정약용 등 전통 주석가들의 견해를 번역의 근거로 제시하는 한편 현대 학자들의 견해까지 반영하여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논어 원문에 없는 부분까지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부기하고 있는 점, 기존의 번역서에서 해결하지 못한 난해처를 많은 부분 해결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기존의 논어 번역보다 한결 심층적인 번역물이 간행되었다.

예컨대 1998년 동녘에서 간행한 한필훈 번역의 ‘한글로 읽는 논어-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하나의 사례로 들 수 있다.

이 책은 논어 본문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나올 경우에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본문 앞부분에 당시 공자가 그런 말을 하게 된 배경을 간단하게 기술하면서 본문으로 이어지게 편집해서 쉽게 읽히는 논어로 청소년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또 1999년 홍익출판사에서 간행한 김형찬역 ‘논어’는 표현하기 까다로운 특수 용어를 우리말로 적절하게 번역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자로편 21장의 ‘狂者’를 ‘꿈이 큰 사람’으로 번역함으로써 기존의 번역서가 모호하게 처리하고 넘어간 난해처를 분명하고 적절하게 해결하고 있다.

아울러 2000년 시공사에서 간행한 황희경 번역의 ‘논어-삶에 집착하는 사람과 함께하는’의 경우는 학이편 4장을 학이편 1장의 내용으로 해설한 내용, 팔일편 24장에 나오는 의봉인과 공자의 만남을 몽타주 기법으로 해설한 내용 등에서 기존의 논어 번역을 넘어서는 참신함이 엿보인다.

우리는 공자가 논어를 읽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자주 망각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공자가 아니라 논어텍스트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성인으로서의 공자를 가정하고 일상 속의 인간들에게 당신들의 삶은 잘못됐으니 이처럼 비범한 말을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라는 일방적 훈계로 일관된 번역과 해설을 붙여왔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고전 읽기는 우리의 일상을 얕보는 천박한 사고를 부추겨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현실의 모순을 은폐하고 안락한 도피처를 찾아 떠나게 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고전을 해체하고 우리의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는 길만이 참된 의미에서 우리의 고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삶의 문법으로 번역한 논어를 기다리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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