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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풍경] 제5회 인권영화제
[예술계풍경] 제5회 인권영화제
  • 김정아 기자
  • 승인 2002.03.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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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22 14:37:34
영화를 통해 인권을 실천하는 인권영화제가 올해로 5회를 맞았다. 정치적 탄압과 재정적 어려움에 불구하고 인권영화제가 명실상부한 인권실천의 장으로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인권수호라는 원칙에 대한 순수한 열정 때문이다. 타협을 지혜로 여기는 시대에, 인권의식의 고양을 영화적 완성도에 앞세우며 철저한 내부적 토론을 거치는 작품 선정 원칙, 일종의 검열인 심의제도를 거부하는 불법 감수의 원칙, 누구나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무료 상영의 원칙은 자체만으로도 감동적이다. 그러나 지난 해까지 인권영화제에 대한 관심은 영화제의 내실에 부응하지 못하는 듯 했다. 무장 경찰이 상영장을 포위하고 단전단수 조치를 취했던 초창기에 비하면 상영 환경은 나아졌지만, 재정난과 홍보문제는 여전했다.

영상 통한 ‘두꺼운’ 역사 이해
한편, 이번 영화제는 대중성확보의 가능성이 엿보였다. 커밍아웃으로 동성애 인권문제를 여론화한 홍석천씨의 사회로 진행된 개막식에 관객과 취재진이 몰렸고, 개막식에 화환을 전달한 국회의원까지 있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금 1천만원을 받은 것도 달라진 점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외국감독들이 영화제를 찾은 것도 처음이고, 영화매니아를 인권의 영역으로 유혹하는 36mm필름을 상영작에 포함시킨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영화제를 인권수호의 현장으로 만드는 반인권적 현실은 여전하다. 애초에 인권영화제는 대중과 가까운 영화의 힘을 빌어 효과적인 인권교육을 수행한다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그러나 등급분류제나 국가보안법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인권투쟁의 장으로 떠올랐다. 우리나라 인권영화제의 짧은 역사가 인권투쟁의 역사 속에 일획을 그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인권유린과 투쟁의 생생한 현장을 영상으로 기록한 올해 상영작들은 세계 곳곳의 학살과 전쟁, 인종차별, 이주자와 난민의 고통,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미국적 세계화의 연결고리를 드러낸다. 미국과 관련된 작품이 압도적 다수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선, 미국의 건국이념을 비웃으며 미국의 역사가 유색인에 대한 인권유린의 역사임을 보여주는 영화들이 상영됐다. 백인여자를 강간했다는 누명을 쓰고 사형선고를 받은 흑인 청년들을 다룬 ‘스코츠보로: 미국의 비극’와 미국정부에 의한 인디언 대량 학살과 인디언보호구역의 절망적 상황을 다룬 ‘고향’.
대외적인 미국의 반인권적 폭력을 성토하는 영화들도 상영됐다. 걸프전 이후 미국이 이라크를 대상으로 벌이는 ‘문명화된 전쟁’ 즉 경제봉쇄와 그로 인해 고통받는 이라크 민중의 삶을 그린 ‘바그다드의 비가’는 북한의 기아문제를 해석할 전지구적 시각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도 중요한 작품이다. 한편, 터키 정부의 반쿠르드 정책으로 4천개 이상의 촌락이 파괴되고 수십만의 사망자와 수백만의 난민이 발생한 쿠르드족의 고통과 투쟁을 다룬 ‘착한 쿠르드 나쁜 쿠르드’는, 쿠르드족에 대한 터키정부의 인권유린을 방조하는 미국의 행태를 고발하며, 유고내전에 개입한 미국의 정당성을 의심할 정치적 맥락을 제공한다. 유교내전 당시 한 영국 방송사가 세르비아 회교도의 이미지를 조작했음을 치밀하게 증명하는 ‘판단’은, 인도주의를 빙자한 무력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기에 앞서 대규모 인권침해의 존재 여부를 규명해야 함을 암시하는 작품.
우리에겐 매향리로 불거진 미군의 해외주둔문제도 많은 영화에서 다뤄졌다. 하와이 주민들의 미군기지 반대투쟁 20년사를 눈부신 풍광 속에 수놓은 작품이나, 8만5천여명이 참가한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투쟁을 기록한 작품 등은, 미군의 인권 유린 행태를 세계적 차원에서 보게 한다.
IMF 체제 이후 직장을 잃은 현대중기 노동자들의 4백50일간의 복직투쟁을 기록한 ‘인간의 시간’, 그리고 현대자동차에서 정리해고된 식당아줌마 1백44명의 힘겨운 고용승계 투쟁을 담은 ‘평행선’은,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구조조정이 노동자의 생존권을 어떻게 짓밟고 있는지를 가까운 곳에서 보여준다. 지난 4월 워싱턴에서 진행된 IMF 반대투쟁을 담은 ‘세계은행 부수기’는 세계화에 대한 저항의 단면을 보여준다.

‘ 재미’ 이데올로기의 정체
인권 유린에 분노하고 인권 투쟁에 감탄하게 하는 것이 인권영화의 최종적인 목표는 아니다. 분노와 감탄은 한때 우리를 강타했던 체 게바라 열풍처럼 상품으로 소비되고 잊혀질 수 있다. 인권개념 자체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20세기적 인권 개념은 여전히 자본주의 국가가 주도한 자유주의 전통에 의지하며, 따라서 각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지적과 평가 역시 편파성을 벗어나기 어렵다. 영화의 순수한 문제제기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여지도 없지 않다. 프랑스 자연사박물관의 살아있는 전시물이 됐던 아프리카 여인의 기구한 일생을 그린 ‘사라바트만의 생애’에서도 드러나듯이, 제국주의가 자행한 인종차별적 작태들에 대한 비판은 프랑스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정치적 계산 속에 희석된다.
이렇듯 영화로 재현되는 인권은 거대서사에 종속된 대의가 아니라 무수한 심급으로 해석되는 ‘두꺼운’ 역사다. 거대서사의 틈새에 존재하는 고통의 현장을 목격하는 관객이 느끼는 것은 언제나 새롭게 계몽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인권영화제의 숙제인 ‘재미’의 문제도 새롭게 해석된다. 인권영화제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정작 찾아 보길 망설이게 만드는 우리시대 ‘재미’ 이데올로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헐리우드 미학의 세계화야말로 감수성을 유린하는 반인권적 폭력이 아닐까.
<김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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