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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기의 한자성어로 보는 세상_(6)臨渴掘井
김풍기의 한자성어로 보는 세상_(6)臨渴掘井
  • 김풍기 강원대
  • 승인 2005.05.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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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없는 삶

임갈굴정(臨渴掘井) : 목마름에 닥쳐서 우물을 파다. 준비 없이 일에 닥쳐 허둥지둥하는 일을 뜻함.

지난 겨울, 친구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녀와다. 산행을 하는 날이었는데, 우리를 안내하던 사람이 얼음에 미끄러져 손바닥이 크게 찢어졌다. 산 속이라 응급처치를 할 어떤 물건도 없었다. 다급하게 손수건을 꺼내 지혈도 했지만 흐르는 피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 때, 뒤처져 따라오던 친구가 얼른 배낭을 풀더니 그 속에서 솜과 소독약, 붕대 등을 꺼내는 것이었다. 덕분에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나중에 가만히 지켜보니, 그 친구 배낭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구급약품 뿐 아니라, 여행정보, 물, 사탕, 화장지, 메모지, 밑반찬 등을 마치 화수분처럼 쏟아냈다.

언제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해서 살아온 것은 아닌가 되돌아 볼 때가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만한 준비가 있다면 험난한 세상을 훨씬 여유롭게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안타깝게도 이런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내 삶 속에서 실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언제나 내 삶은 궁색하고 팍팍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삶의 여유도 없고, 삶을 바라보는 거시적 안목도 없다.

어찌 개인의 삶에서만 그러하랴. 우리 사회의 조급증이 어쩌면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하는 것에 근원하는 것은 아닐까. 무엇이든 닥친 현안만을 해결하면 그뿐이요, 내가 이 자리에 있는 동안만 사고가 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준비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미봉책으로만 사태를 덮으려는 태도에서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중국 고대 의학서인 ‘素問’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병이 이미 만들어진 뒤에 약을 쓰는 것은 마치 목마른 상태에 닥쳐서 우물을 파는 것과 같다.”(病已成而藥之, 猶渴而掘井)

병이 몸에 만들어지기 전에 그것을 예방하는 약을 쓰는 것이 중요하고, 목이 마르기 전에 미리 우물을 파는 것이 순리다. 우리는 지금 몸 속에 병이 깊어 썩어들어가고, 갈증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도, 여전히 미봉책을 만드는 데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강원대 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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