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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비평: 과학은 몸을 지배하는가, 몸에 매달리는가
담론비평: 과학은 몸을 지배하는가, 몸에 매달리는가
  • 신정민 기자
  • 승인 2005.05.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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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과 '가십' 사이에서 실종된 과학

최근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생활의학에 관한 뉴스를 자주 접할 수 있다.  우리 언론이 미처 검증되지 않은 외국 저널에 소개된 의학정보를 검토하지도 않은 채 마구 옮겨 나르기 때문이다. 한 신문이 하루 3건 이상의 의학연구 결과들을 보도하고, 언론을 통해 한 달에 최소 2백~3백건의 의학정보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온다.

‘뚱뚱할수록 두통이 심하다’, ‘알콜없는 맥주는 복부비만과 상관없다’, ‘키스를 많이 하면 충치가 예방된다’는 건강과 관련된 보도, ‘남성의 육감이 여성의 육감보다 뛰어나다’, ‘지방세포가 혈관에 좋다’, ‘식욕은 태어나자마자 결정된다’, ‘여성이 주차에 약한 것은 호르몬 때문이다’와 같은 남녀비교나 생활과 관련된 보도들이 많으며, 성과 관련된 정보도 꽤 차지한다.. 이런 뉴스를 추적해 보면 동아사이언스나 네이처, 사이언스, 사이언스타임즈 등의 과학저널과 한국과학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사이언스올에서 집중적으로 유포된다.

그러나 다소 쇼킹한 것은, 상식을 위반하는 과학정보들이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적다는 점이다. 국내 모 대학 교수는 “요즘 누가 그런 걸 믿겠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꼭 믿는다고 효과가 발생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동차광고에 여성이 등장하는 게 효과를 발휘하듯 말이다. 따라서 이런 과학정보들의 신빙성을 검토하는 문화도 과학담론의 한 축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개별적으로 보면 그럴듯한 의학정보들 한달 치를 묶어서 살펴보면 서로 상반된 주장도 있어 당혹케 한다. 한 사례로 얼마 전 호주 시드니의 한 클리닉에서 ‘남성이 사정을 많이 할수록 정자의 질이 좋아진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얼마 후 미국의 마이애미에서 한 연구팀은 ‘적당한 금욕이 정자의 질을 높인다’는 상반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렇듯 연구대상과 그 대상이 처하게 되는 상황변수에 따라,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실험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만큼 삶은 복잡회로 속에서 움직인다. 그런데 과학정보들은 이런 점을 무시하기 일쑤다. 

염창환 관동대 교수(가정의학)는 “대개의 경우 하나의 학설에 지나지 않고, 단지 언론에서 시류에 맞는 흥미로운 거리를 다루는 것에 불과하다. 해당분야의 대가급 전문가가 신뢰성 있는 기관에서 연구하여 발표한 논문이라면 신빙성이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의학정보의 홍수 속에서 오홍근 포천중문의대 교수(사회·문화정신의학)는 “타당한 의학정보와 오보인 경우가 뒤섞여 있다. 일반인들이 그대로 믿고 행할 경우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가 있기 때문에 가려서 받아들여야한다”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이런 학설를 맞다, 틀리다고 검토하기도 어려운데, 한 의대 교수는 “수없이 많은 세부분야에서 이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비만의 경우 수많은 질병을 야기할 수 있지만 분야에 따라 접근법이 달라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의 과학담론이 정책에 대한 진지한, 그러나 하나마나한 당위성 명제들의 조합에 그치거나, 아니면 과학의 존재론적 당위성을 증명하기 위해 위와 같은 가십성 정보를 스스로 생산해 번식을 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하나를 보탠다면 산업계와 학자들의 일대일 ‘밀실계약’이 아닐까. 
 신정민 기자 jm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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