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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쟁점: 재벌개혁론을 비판한다
학술쟁점: 재벌개혁론을 비판한다
  • 신장섭 싱가포르대
  • 승인 2005.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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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민주주의'는 허구...정치로 경제 논하지 마라

신장섭 싱가포르대 교수(경제학)가 국내 재벌개혁론의 중심 주장인 ‘소액주주운동’ , '주주민주주의' 등이 갖는 문제점을 ‘신동아’ 5월호에서 논리적으로 비판해 여기 요약해서 소개한다. 과연 신 교수의 주장이 얼핏 합당해보이긴 하지만, 이런 시각이 갖는 또다른 위험성은 무엇인지에 대한 시각이 필요해 보인다. 신 교수의 이런 비판에 대해서 참여연대 측은 묵묵부답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장, 경제학)는 "그런 비판은 익히 알고 있으나 대응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답변한다. 왜 그럴까. 한 교수는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가는 것이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는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좀 납득하기 힘들다. 재벌이나 경제권력에 대한 시민단체의 감시기능이 필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지만, 한 교수의 답변은 요즘의 운동이라는 것이 얼마나 독선적인 자기중심주의에 빠져있는가를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 반성없는, 생각없는, 대화없는 운동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 오늘날 '회원참여 저조' 현상에 직면한 '대형시민단체'의 앞으로의 행보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새삼 떠올려보게 한다.  / 편집자주

재벌개혁론의 부작용은 재벌의 비효율성과 비민주성에 대한 비판이 재벌의 긍정적인 측면까지 없애버린 데 있다. 비효율성 논의는 국내외 재벌 비판론자들이 자료를 선택적으로 인용하면서 과장된 측면이 크다. 재벌의 功過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피지 않고 금융위기 당시의 문제만으로 재벌의 실패를 부각시켰다.

한국 기업의 효율성 여부는 어떤 이익률 개념을 적용하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만약 자산수익률을 적용할 경우, 수익율을 구할 때 분자로 사용되는 이익은 순이익, 즉 경상이익에서 세금을 뺀 이익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자산수익률은 46개 표본 국가 중에서 44위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을 영업이익률로 따져보면 국제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영업이익은 이자, 환차손 등 금융비용을 빼기 전 이익이다. 한국 제조업체들은 1988∼97년 기간에 평균 7%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해 미국(6.6%), 일본(3.3%), 대만(6.5%)보다 높은 수익률을 유지했다. 금융위기 이후 재벌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들은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이 높은 영업이익률을 유지했다는 사실은 무시한 채 낮은 순이익률이나 경상이익률을 집중 부각시켰다. 하지만 순이익률이나 경상이익률보다 영업이익률이 기업의 효율성을 살피는 데 더 나은 지표다. 경상이익률이나 순이익률은 사업의 효율성보다는 자금조달 방식에 따라 크게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벌의 영업이익 과소평가
금융위기 이후 재벌개혁은 금융위험의 고리를 단절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계열사 지급보증 금지, 부당 내부거래 제재 강화 조치는 이러한 목적으로 도입됐다. 그러나 계열사간 연결고리를 끊으면 기업집단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기능도 함께 없어진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때 독립기업을 세운다면 설립자금을 완전히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기업집단의 계열사로 설립하면 현물출자, 은행차입 등 초기 투자자본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또한 재벌 비판론자들이 내세운 ‘경제민주화’ 혹은 ‘주주 민주주의’는 실체가 없다. 정치에서 민주주의는 개인에게 주권이 있다는 전제 아래 개인의 의사가 정치활동에 반영되도록 하는1인1표 원칙이 공정한 규칙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주식회사는 개인의 동등한 주권이라는 개념 위에 만들어져 있지 않다. 1인1표가 아니라 ‘1株1표’의 원칙이 적용될 뿐이다. 또 주식을 보유하는 주체로는 개인(자연인)뿐만 아니라 법인도 포함된다. 그러나 주주 민주주의론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상법과 주식회사 제도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다.

국내 소액주주운동의 대표주자인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총수 개인의 지분은 소량에 불과하고 절대지분을 일반 소액주주들이 소유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총수들은 계열사간의 상호출자를 이용하여 ‘소유하지 않고 지배하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해 오너가족 지분 5%, 계열사 지분 45%, 소액주주 지분 50%라고 가정하자. 소액주주 운동가들은 기업집단이 계열사간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개별 계열사들의 지분을 다시 개인 지분과 법인 지분으로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순수법인이 갖고 있는 지분은 실질적인 소유권을 따질 때 제외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주장에 따를 경우 45%의 계열사 지분은 ‘가공자본’이 된다. 따라서 소액주주들이 50%를 보유하는 주인인데도 소수 주주인 오너가족들이 5%만으로 소유하지 않고 지배하는 구조가 된다.

문제는 주주 민주주의론자들이 소액주주들이 마치 동질적인 집단인 것처럼 취급한다는 것이다. 소액주주 지분을 단순히 더해서 실질적으로는 소액주주가 최대주주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액주주들은 이질적인 집단이다. 여기에는 거대 기관투자가들도 포함된다. 재벌 계열사의 주식 보유를 ‘가공자본’으로 취급하고 지배권을 개인 지분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주주 민주주의론자들의 계산 방식이 일반적인 원리로 채택되려면 소액주주들 중 법인 보유 지분에 대해서도 개인들의 궁극적 지분을 계산해야 한다.

소액주주들은 동질집단 아니다
만약 펀드A가 10% 지분은 원금을 이용해서 매입했고, 20% 지분은 빌린 돈으로 매입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펀드A가 소유하고 있는 ‘궁극적인’ 지분은 개인들의 실질 지분에 해당하는 1%로 줄어들어야 한다. 부채는 개인 이름으로 조달하는 것이 아니라 펀드 이름으로 조달해 펀드가 파산한다 하더라도 개인투자자는 부채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따라서 부채로 획득한 투자지분에 대해 개인이 궁극적인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개인의 궁극적인 지분에만 정당성을 부여하는 논리를 적용하면 기관들의 레버리지 활용도에 따라 기업의 지배권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해야 한다. 상법은 이와 같은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개인과 법인의 소유권을 똑같이 인정한다. 부채를 활용했건 상호출자를 활용했건 해당기업의 주식을 소유한 개인과 법인을 동등한 주주로 인정하는 것이다. 상법에 맞게 소유권을 행사하는 것을 놓고 ‘비민주적’이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재벌의 ‘비민주성’을 둘러싼 논쟁은 실질적으로는 기업집단에서 내부인과 외부인 사이에 벌어지는 경제 갈등이 정치적 용어를 통해 발현된 것이다. 내부인과 외부인은 주식을 보유하는 목표가 서로 다르다. 외부인은 기업집단 전체의 성장이나 수익에 관심이 없다. 자신이 보유한 회사만이 관심대상이다. 반면 내부인은 기업집단 전체에 관심을 둔다. 사업을 확장하려고 할 때 현재 수익성 높은 기업을 통해 신규 사업을 보조하는 경우가 많다. 이 기업에 투자한 외부인들이 반대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재벌 비판론자들은 재벌이 이렇게 계열사 보조를 통해 잘나가는 기업의 수익률을 떨어뜨리는 것을 ‘비합리적’ 경영의 결과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내부인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기업집단의 평균수익률을 떨어뜨릴 유인이 있다. 따라서 기업집단 운영에서 나타나는 내부인과 외부인의 갈등은 서로 다른 합리성의 대결로 인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에는 ‘외국인 투자자-국내 신자유주의자-진보세력’의 3자연대가 형성되면서 외부인의 목소리가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됐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각종 이권을 챙길 수 있으리라는 상업적 목표를 갖고 있었다. 이에 비해 국내의 反 재벌 진영은 자신들에게 떨어질 경제적 이득이 무엇이 될지 불투명한 상태에서 재벌개혁을 밀어붙인 듯하다. 신자유주의 진영은 개별기업 단위로 사업을 하도록 하는 게 경제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 것으로 막연히 기대한 것 같다. 하지만 이는 오판이라는 것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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