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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가 알았던 것
메이지가 알았던 것
  • 이지원
  • 승인 2021.09.16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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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 지음|나희경 옮김 |도서출판 동인 | 416쪽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어른 세상 

헨리 제임스는 영미 소설가 중에서 주제나 문체에 있어서, 그리고 소설 장르에 대한 그의 입장에 있어서도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는 작가이다. 헨리 제임스의 예술이 아니라면, 그의 섬세함과 우아함, 능숙한 완곡어법이 아니라면, 목적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펼치는 얽히고설킨 결혼생활에 관한 다분히 현대적인 이야기를 이처럼 실질적인 문학작품으로 표현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메이지가 알았던 것』은 이미 완숙기에 접어든 작가 고유의 심리적 사실주의 주제와 문체가 충분히 실현된 작품이다. 이 소설은 원한으로 얼룩진 이혼의 후폭풍을 그린다. 이기심과 그로 인한 싸움, 그리고 탐욕이 대부분 인물의 행동 동기를 이룬다. 그래서 남녀가 한 쌍으로 결합하거나, 서로 싸움을 벌이거나, 다시 헤어지는 등의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그런 상황에서 어린 메이지는 어른들이 생활하는 아래층으로부터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올라오는, 뭔가 불분명한 소음을 듣게 된다.

그 아이는 어른들이 벌이는 복잡 미묘한 애정행각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혼자 듣게 되는 것이다. 처음 등장할 때 메이지는 6세 정도의 어린아이지만, 결말 단계에서는 대략 13세의 사춘기 소녀로 성장한다. 그 기간 동안 아이는 실체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얽힌 어른들의 애정 관계의 내막을 조금씩 알아가고 대응해 간다. 

어린아이 메이지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을 접한 독자라면, 읽어내기가 쉽지 않음을 금방 알게 된다. 헨리 제임스의 소설을 읽어나가는 동안 우리는 집중력과 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경험하게 된다. 독서의 진행 속도가 특히 더뎌지는 부분은 제임스가 인물의 내면 의식 상태를 묘사하는 대목이며, 그 상태가 미세하고 미묘하며 복잡할수록 독서 진행 속도는 그만큼 더 느려진다. 

역자는 이 소설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그의 독특한 문체와 그만의 독창적인 비유의 언어, 고유한 이미지를 깨뜨리지 않고 고스란히 옮기려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했다. 극도로 미세한 마음의 움직임을 감각적이면서도 우아하고 품위 있는 표현으로 묘사하는 제임스의 언어들이 역자의 노력을 통해 독자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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