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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강의 스케치] 3 고미숙 수유연구실 연구원의 ‘근대계몽기 강좌’
[열린강의 스케치] 3 고미숙 수유연구실 연구원의 ‘근대계몽기 강좌’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1.05.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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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31 14:45:36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모임이 폭발적인 생산력을 보인다면, 그야말로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가 타율의 조직력을 가볍게 뛰어넘는다면, 구심력이 없는 모임이 모여드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면, 누구나 꿈꿀 법한 이런 공상을 현실화해낸 모임이 있다. 학술모임들이 유산과 사산을 거듭하며 급기야 해체되기 십상인 척박한 학문생태를 볼 때 ‘기형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는 애초에 고미숙씨(국문학자)가 수유리에 마련한 ‘널찍한 연구공간’이었을 뿐이었고, 누구도 준비하고 계획하지 않았다고 한다.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고 동료연구자들을 초청했던 것이 전부이다. 처음 연구실을 개방공간으로 ‘방치한’ 고미숙씨가 염두에 두었던 것은 “전위적 지식인들이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 정도. 그 공간이 시끌벅쩍 해 지더니 마침내 일이 터졌다.

수유연구실, “자유로운 연구 공동체”

기획하지 않았지만 모임들은 우후죽순 생겨났다. 서울사회과학연구소에서 개설한 철학강의를 듣던 중, 마침 문을 연 수유연구실에서 강좌를 개설해도 되겠다 싶어 이진경씨를 초빙한 것이 강좌개설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에는 그야말로 자발적인 모임들이 이어졌고 지금은 3강좌에 14가지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맑스의 친구들’, ‘문학과 철학 사이’,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의 탐색을 위한 7가지 테마’가 그것으로, 고씨는 세 번째 강좌를 이제 막 끝냈다. ‘동아시아 근대성 세미나’, ‘수사학이론 세미나’, ‘시간 세미나’, ‘’고려사’ 세미나’ 등, 그때그때 요구가 생기면 자연스레 모였다가 공부가 끝나면 소리소문 없이 흩어지는 유령같은 모임들.

더군다나 이곳에서는 누구나 선생일 수 있고 누구나 학생일 수 있다. 강의가 개설되고 그 강의를 듣다가 다음 강의에 강사가 되는 식의 자가발전이 이 공간에서는 가능하다. 고미숙씨 역시 서울사회과학연구소에서 개설한 강의를 듣다가 강사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식의 유쾌한 전환이 자유롭다.

고미숙씨는 동료연구원들과 일상을 나눈다. 앞서 말한 ‘유쾌한 전환’의 밑거름이다. “일상을 공유하지 않고 어떻게 사유의 전환이 가능하겠어요? 한달에 한 두번 만나는 것으로 사람이 바뀔까요? 그렇게 만난다면 일상에서의 변화, 즉 예전 습속과의 단절이 힘들꺼라 봅니다.” 고씨는 옛 기억 속에 잠자고 있던 ‘꼬뮌’이라는 어휘를 살려내려 하고있다. 구태여 그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일상을 공유하는 것의 이점은 많다. 한 달만 같이 지내면 10년쯤 사귄 듯 서로에게 스스럼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른바 시간절약이 가능하단다.

고미숙씨가 꿈꾸는 공사구분의 유쾌한 전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지식이 개인소유라는 의식이 희박하다. 한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글에 대해서 ‘내 것’이라는 느낌이 별로 없고” 오히려 “내 생각이 계속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는 과정이 행복하고, 내 의견을 지켜야 한다든가 반박당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없어졌”다. 고미숙씨는 스스로 ‘카피레프트’ 운동에 동의하고 있는 셈이다. 그녀는 책도 근본적으로는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없다고 여긴다. 서고를 열어 잠자고 있는 책들을 내남없이 공유하자며 사람들을 부추기는 동안 고씨의 그런 생각은 “계속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는” 중이다.

국문학 박사인 고미숙씨는 교수가 아니지만, 그를 선생으로 여기는 많은 학생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녀의 근대계몽기 강좌를 들으러 모인 이들은 대개 대학원생들이다. 학교와 다른 풍경이라면 그들이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잡담만큼이나 자유로운 관계라는 것 뿐. 학생들이 그녀에게 농담을 건네면 천연덕스레 받아치는 것이 꼭 친구같다.

정작 강의가 시작되면 표정이 바뀌고 분위기는 금새 전환된다. ‘’민족’ 혹은 새로운 ‘초월자’의 출현’을 주제로 한 오늘 강의는 ‘정체성’이라는 익숙한 단어로 출발한다. “처음 만나면 이름과 소속, 즉 ‘이른바’ 정체성으로 상대를 기억하지만 일주일만 지나면 그것 대신 그 사람이 뭘 좋아하고 뭘 잘하더라는 식의 ‘욕망’과 ‘능력’으로 상대를 새기게 되지요. 그런 가운데 때때로 잊고있었던 그 ‘정체성’을 마주 대하고는 놀라게 됩니다. 그 ‘정체성’이라는 것이 어떻게 작동하게 되는지 살펴보면 아주 흥미롭지요. 그 가운데서 가장 무의식적이고 신비로운 것이 ‘민족정체성’인데…”

“민족을 망각하는 삶을 살수는 없을까”

고미숙씨는 ‘한민족’이라는 허상을 파헤치는 데 열중이다. 연신 ‘아주 재밌다’는 말을 연발하며 ‘대한매일신보’를 읽어보라고 학생들에게 권한다. 언문일치를 이룬 최초의 신문 속에서 여성과 어린이 등 기존의 소수자가 ‘국민’으로 탈바꿈하는 계기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한국의 민족정서라고 일컬어지는 ‘恨’은 없다고 선언한다. “생각해보세요. 조선은 5백년간이나 권력이 교체되지 않은 국가,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나라예요. 게다가 한용운이나 김소월을 제외하고는 한을 추출해낼 만한 텍스트도 그다지 없습니다.”

학생들의 놀라움과 은근한 반발도 개의치 않고 강의는 계속된다. “현재 ‘소중화주의’를 민족주의의 맹아로 보기도 하지만, 실학파, 특히 박지원, 박제가, 이옥 등의 실학파 학자들이 ‘중화’의 초월성을 끊임없이 격파하려 했던 사실을 상기해야 합니다.” 그녀의 결론이란 “민족은 외부에서 주어진 것.” 계속되는 질문은 학생들에게 던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란 인상을 준다. “민족을 망각하는 삶을 살 수는 없을까요? 그렇지 않고서는 근대성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니까요.”

최근 고미숙씨와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 연구원들은 공동작업의 결실을 보았다.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문학과 경계’라는 계간지를 창간한 것. 예기치 못했던 도움에 고미숙씨는 의아해하지만, 잡지발간조차 그녀의 인생행로를 꼭 닮았다.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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