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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_천황과 전두환: 5.18의 윤리
문화비평_천황과 전두환: 5.18의 윤리
  • 김영민 한일장신대
  • 승인 2005.05.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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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죽은 이 나라에 ‘한줌의 도덕’이라도 남아 있다면 나는 전두환이 암살이라도 돼야한다고 최소한 1990년대 초반까지 '공상'했다. 그런데 이 생각은, 서구의 1789년이나 1989년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역사의 종말'을 신봉한 일본사회가 ‘한 줌의 도덕’을 위해서라면 그 스스로 히로히토 천황을 암살해야 했다고 '공상'만했던 것과 연동돼 있었다. 박열과 이봉창 등 식민지의 애국청년들이 그 목숨을 노렸던 히로히토는 결국 천수를 누렸고, 일흔을 훌쩍 넘긴 전두환 역시 그의 전재산 29만원을 아껴 쓰면서 호의호식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히로히토는 맥아더와 손을 잡기 전에 자신의 臣民에 의해서 처단되어야 했고, 문민정부 시절 정치재판의 쇼가 벌어지기 전에 전두환은 광주의 핏빛 혼에 의해 붙들려 가야만 했다.

침략과 전쟁범죄에 관한 일본의 거듭된 망언에는 사안별로 그 나름의 복잡한 배경이 스며있다. 그러나 마루야마 마사오가 말한 '무책임의 체계'로서의 일본사회라는 시각은 비록 공소하긴 하지만 사태의 대체를 꿰는 일리있는 지적이다. 매사 역사사회적 책임이 主將에 귀착하는 것은 상식이다; 이 상식이 짓밟힌 채 나태한 봄날같은 일상이 뻔뻔스레 계속될 때 책임의식은 倒錯되고 윤리는 속으로부터 썩는다. 주범이 언죽번죽 역사와 시대를 희롱하고, 從犯들은 그 희롱당한 역사와 시대 속에 변함없이 기생한 채 번창하며, 그 아래 민중의 恨은 조직적으로 은폐되거나 왜곡될 때, 그 무책임의 체계는 반윤리적으로 전염된다. 이른바 15년 전쟁의 주범인 히로히토를 면책하고 그 무책임의 체계를 재가동시킨 것은 동북아시아의 공산주의 혁명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정책적 타협이었지만, 수백만의 무고한 생명을 죽음과 고통의 지옥으로 몰아넣은 일은 그 어떤 정책적 고려로서도 미봉할 수 없는 엄혹한 역사요 현실이다. 전후의 일본이 지금에 이르도록 과거사에 대한 헛소리를 반복하거나 그 국가의 경영철학이 아전인수격으로 두루뭉술한 이유도 전쟁의 주범인 천황이 건재했고, 여전한 추앙을 받았으며, 마침내 천수를 누린 사실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그 천황은 정책적 고려나 정치적 담보가 될 수 없는 전범이었다. 그 천황의 배후에는 정책이나 정치의 타협으로서는 상쇄하거나 환치할 수 없는 수백만의 피와 살, 그 固有名의 고통과 한이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전두환 일당이 정치와 정책의 보호 아래 후안무치하게 광주의 핏빛 영혼들을 조롱하고 있는 한, 5.18은 우리에게 아무런 윤리적 빛을 던지지 못한다. 그런 뜻에서 빛고을(光州)은 아직 어둡다. 광주의 피가 윤리의 빛으로 거듭나 새로운 역사의식의 요청으로 다가오려면 만시지탄이지만 80년 5월의 범죄에 대한 엄혹하고 확실한 처벌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타협과 미봉, 그리고 섣부른 화해의 제스처가 남발되었을 뿐이며, 전두환을 비롯한 주범들은 건재하고 심지어 그 건재를 흉물스레 과시한다. 이 경우, 용서와 관용은 추악한 3류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까뮈의 말처럼 오직 역사에 대한 올바른 기억과 대접만이 화해를 불러올 수 있으며, 아렌트의 말처럼 시대의 어두움은 기억의 빛이 사라지기를 기다린다.

나치즘의 갖은 범죄들을 '기억, 책임, 미래'라는 원칙과 순서에 의해서 진지하고 철저하게 처리하고 있는 독일은 좋은 방증이다. 그러나 전후의 일본은 책임의 주체없는 명령-체계의 순환 속으로 퇴각함으로써 그 끔찍한 침략과 전쟁의 참화에서 윤리의 메시지를 건져내지 못했다. 천황의 존재마저 그 무책임한 체계의 고리를 끊지 못했으며 오히려 정치적 타협의 술수 속에서 면책됨으로써 수백만명의 무고한 생명을 살상한 이 참학한 재앙은 윤리의 빛을 잃었고 원혼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아울러 그 천황이 여전한 숭앙을 받으며 천수를 누리게 함으로써 일본은 그 값비싼 윤리의 마지막 기회를 영영 잃고 만 것이다.

광주의 5월이 번듯한 이름을 얻고 망월동이 성역화된 일은 내 눈에는 한갓 우스개요 역사에 대한 조롱이다. '전두환'으로 대표되는 그 학살의 주범들이 여전한 권세를 누리는 한 5.18은 모욕받은 현실의 이름일 뿐이다. '암살'은 이 모욕받은 현실을 구제하려는 판타지였지만, 나는 이 판타지조차 마감하려는 逆說의 힘으로써 죽은 윤리를 다시 꿈꾼다.

김영민 / 한일장신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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