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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와 대학의 미래
메타버스와 대학의 미래
  • 최재목
  • 승인 2021.09.14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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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최재목 논설위원 /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논설위원(영남대)

메타버스로 입학식을 거행한다는 등, 최근 대학사회에서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우주(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성한 ‘메타버스’(Metaverse)란 현실을 초월한 가상공간을 뜻한다. 

기존의 가상현실은 특정한 가상 환경에 체험자가 몰입하는 것을 도와주는 도구적 기능에 그쳤다. 그러나 메타버스에는 현실의 공간, 문화, 경제적 구조까지 더해져, 온라인 내에서 체험자 각자가 주체로서 소통하며 그들만의 문화를 향유케 한다. 현실을 재현한 사이버 세계에는 시공간의 제약도 실제 사회의 복잡한 이해득실도 없다. 

‘메타버스’ 자체는 그렇게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근래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기술이 비약적 질적 상승을 이루긴 했으나, 싸이월드· 세컨드 라이프 등 낯익은 이름들이 사실 메타버스의 초기 버전이다. 이처럼 메타버스는 이미 친근했던 개념이다. 그런데 최근 그 위상이 한층 높아진 이유는 무엇인가. 잊혀져가는 ‘대면’의 추억을 메타버스가 회생시켜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19로 거리두기가 시행된 지 어느덧 1년. 어떻게 내가 타인과 거리를 둘 것인가가 일상적 고민이 됐다. 보고 싶은 풍경과 사람들이 있으나, 여의치 않다. 코로나 일일 확진자 ‘최다 갱신’이란 제목의 기사가 잦고, 상황개선의 희망은 자꾸 줄어든다. 과거의 일상적 풍경들은 돌아가고프나 ‘갈 수 없는’ 이상향이라 끔찍한 그리움이 되어간다. 놀랍게도 메타버스에는 우리가 그리워하는 풍경, 잃어버린 대면, 평범한 일상이 따끈따끈 살아있다. 

그렇다. 메타버스는 ‘사람’이 중심이다.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꿈이다. 사람이 없는 메타버스는 그저 황량한 벌판일 뿐이다. 사람의 향기가 사라진 코로나19의 황야 위에서, 서로 공생 · 소통하며 질서 있는 문화를 창조하고픈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의 또 다른 무늬와 형식의 실험실을 메타버스는 제공해 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다. 아울러 여러 학문이 공생하는 또 다른 형식의 종합대학을 가상현실 속에서 실험해보고 싶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메타버스는 지상의 풍경과 닮아있지만 분명히 현실과는 다른 세계이다. 그만큼 사람의 시야에서 일탈하여 기술만이 자본의 힘과 결합하여 독주할 일말의 불안함도 껴안고 있다. 결국 현실에 발 딛은 ‘나’라는 인간이 주인이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요청된다. 구체적 인간의 삶에서 발생하는 모든 경우에 응답할 선험적 원리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메타버스 역시 불완전하지만 삶과 세계를 철학하는 인간의 사유 내에서 진전돼 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 기획의 주체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을 위한 여정 속에서 어떻게 메타버스 논의의 인문적, 철학적 맥락을 짚어낼 것인가가 대학의 필수적 과제이어야 하겠다. 단순히 기능적, 기술적, 홍보적 경쟁에서가 아니라 인문적, 철학적 안목을 특성화하는 방향에서 대학사회가 메타버스를 수용해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대학 자신이 메타버스라는 희망으로부터 소외당하는 역설에 직면하고 만다. 우리는 인간이 만든 기술이 그 자신을 소외시키는 예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기술 자체의 발전은 분명 그 나름의 의의가 있으나, 인간 없는 기술은 끝내 자본과 권력의 노예로 타락해갔다. 이런 성찰을 놓치지 않는 한 메타버스는 AI와 마찬가지로 인간사회의 한 가능성을 실현해줄 좋은 동반자가 될 것이다.

최재목 논설위원
영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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