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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동향] 페미니즘 담론의 현주소
[학술동향] 페미니즘 담론의 현주소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1.05.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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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의 정치는 '공존'의 윤리와 어떻게 만나는가
여성성 담론의 허실을 진단한다

20세기의 황혼에 여성의 귀환을 예견하지 않은 학자는 드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당도한 21세기, 환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이른바 ‘여성의 세기’는 묘연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차라리 선언에 가까웠던 밀레니엄 담론 가운데 여자의 말은 드물었다. 그것은 플라톤의 말처럼 여자란 원초적으로 비철학적 존재이기 때문일까? 지상의 온갖 악취를 맡으면 형이상학의 경지에서 노니는 고귀한 ‘여성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여성학은 이제 현재가 되어버린 그 ‘미래담론’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바야흐로 그 담론의 허상과 현실의 참담을 구분하여 꼼꼼하게 손익계산서를 계산해야할 시점에 이르렀다.

여성성의 애매함 혹은 위험함

탈근대 담론으로 가장 보편적 정당성을 획득한 것으로 환경과 생태가 있다. 대안담론으로 떠오르면서 생태와 환경에는 언제나 ‘여성적인 것’이라는 부제가, 어머니 대지라는 상징이 따라다녔다. 말하자면 문명의 이항대립으로 취한 자연은 ,남성의 이항대립으로 여성이라는 대립항을 내포한 것이었다. 에코페미니즘에 대한 선호와 ‘모성’에 대한 모호한 우상화를 이런 맥락에서 해석하는 경향은 이제 학자들 사이에서 일반적이다.
에코페미니즘 논의를 국내에 소개한 고정갑희 한신대 교수(영문학) 역시, 에코페미니즘이 중요한 이론적 위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화적인 요소가 도드라지고 정치성이 배제되는 경우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생태와 여성이라는 두 거부할 수 없는 당위를 결합시켜서 여성과 모성을 신비화시켜버리고 그것을 에코페미니즘이라고 단정지어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고정갑희 교수는 김지하씨의 생명사상 역시 어떤 맥락에서는 여성들을 사장시키는 논리로 탈바꿈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근래 여성신비화에 한몫하고 있는 이미지와 신화의 부상 역시 유사한 비판의 맥락에 직면해있는 실정이다. 영상시대의 도래와 함께 문자적 인식의 한계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주목받는 이미지담론에 과도한 비중을 실을 때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것.
국내에서 이미지담론을 학문의 영역으로 수용하는 데 큰 몫을 했던 것은 2년 전 창립된 한국영상문화학회(회장 도정일 경희대 교수·성완경 인하대 교수)이다. 학회 창립멤버로 활동하면서 이미지의 도래가 갖는 폭발적 영향력에 주목해왔던 김정란 상지대 교수(불문학)는, 그러나 이미지에 대해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함을 더불어 강조한다. “이미지에 관한 이야기는 우선 ‘주체의 성숙’을 통과한 이후에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미분화의 상태로 돌아갈 뿐이지요. 이성에 의해 완전히 통과된 이미지여야 합니다. 이미지의 탈근대적 정치성은 거기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김 교수는 정작 이런 담론들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는 이들이 쉽게 순응에 몸을 맡겨버리는 현실도 지적하고 있다. “몸을 얻지 못한 말”, 즉 육체가 속해 있는 시간과 장소를 벗어난 어떤 담론도 현실적 힘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노자철학을 둘러싼 아우라 역시 마찬가지. 지난 1998년 ‘현대 비평과 이론’ 16호에 ‘여성주의 인식론과 한국 여성 철학의 전망’을 발표하면서 여성들의 자기분열적 상황을 묘사했던 김혜숙 이화여대 교수(철학)는 노자에서 서술되고 있는 여성상의 도그마를 분석하고 해체하는 작업 중에 있다. 당시 김 교수는 철학 전통 안에 발붙이고 있기 위해서 “여성들은 자신이 여성임을 부정해야 하는 자기 분열적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면서 “철학사 자체를, 그리고 철학 문제의 목록 자체를 여성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작업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이런 연장에서 김 교수의 현재 작업을 이해할 수 있다.

이미지, 탈근대적 정치성 상실할 수도

김 교수는 6월 15일 노자철학에 대한 페미니즘적 읽기를 주제로 개최될 ‘여성철학회’(회장 신옥희 이화여대 교수) 학술대회에서 동양철학 안에서의 가부장제적 억압이 논의될 것이라고 말한다. 김 교수는, 노자철학이 근본적으로는 여성폄하를 윤색하고 있다는 도발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유가철학의 반정립의 입장에서 여성적인 것을 도라고 말하는 맥락이 문제가 됩니다. 도는 낮은 곳에 처하는 것인데 여기에 여성은유를 가지고 들어오니까요. 약함이 강함을 이기는 것이라 말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여성주의적인 의미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지요. 그래서 결국, 여자는 낮은데 처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말이라면 어떻게 여성들이 받아들여야 할지가 의문입니다.”
찬란한 여성성 담론들이 현실의 맥락에서 ‘내부의 적’으로 돌변할 가능성에 대한 지적은 충분히 공감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배은경 서울대 강사(사회학)는 “가령, 현실 페미니즘이 외면받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급진적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 페미니스트 이리가레이가 남성지식인들에게 환영받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라는 물음을 던진다. 화려한 여성담론이 지식인들의 지적구미에 들어맞기 때문에 선호되고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는 것. 여성학 담론들이 ‘화려한 말잔치’로 끝날 위험에 대해 남성지식인들의 책임도 묻고 있는 것이다.
“‘베아트리체 콤플렉스’를 지닌 남성들, 그들의 환상에 들어맞는 한 명의 여성에만 관심을 갖는 건 일종의 노스탤지어고 자궁회귀이며 꿈일 뿐입니다.” 정작 문제는 그런 남성들이 살아있는 여자들의 복잡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분석하지 않고, 심지어는 그 얘기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배 강사는 강조한다. ‘여성과 사회’ 2001년 제12호에서 특집으로 다룬 ‘백인위 사건’도 그런 슬픈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에피소드라는 것. 배 강사는 “현실 속 여자들의 경험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남성들이 감지못하는 것 같다”며, 여자이면서 엄마고 직장인이면서 특정 대학출신이자 특정 지역출신인 여자들의 복합적인 현실에 눈을 돌려야 신비한 여성성이라는 ‘유사이데올로기’를 면할 수 있다고 현실진단한다.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재해석하려는 시도는 거의 학문의 전분야에서 광범하고도 집요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국내 페미니즘 이론 생산에 기여하고 있는 ‘여성문화이론연구소‘(소장 고정갑희)는 ‘여/성이론’을 통해서 노동과 경제, 그리고 교육 등 일련의 문제들에 여성이 절합되면 달라지는 지형을 탐색하고 있다. 영미유럽문학작품에만 한정되었던 여성주의적 읽기가 최근에는 중국고전문학에서도 행해지고 있다. 중국문학회(회장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 모임에서 ‘열녀전’의 여성주의적 독해를 꼼꼼하게 해내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여인네들’의 잡담이라 치부되었던 ‘사랑’이 여러 계간지의 특집주제로 등장하고, 이데올로기로서의 ‘가족’에 관한 논의들은 현재도 수많은 쟁점들을 쏟아내고 있다.

여성학 내부논쟁 빈약과 남성의 ‘직무유기’

이렇듯 담론의 홍수에도 불구하고 여성성 논의 가운데 여성의 현실적 ‘시민권’을 오히려 빼앗는 맥락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여성학 내부논쟁이 빈약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내부논쟁이 활발했다면 순기능과 더불어 역기능까지 걸러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데 이견은 없어 보인다. 더구나 수입된 여성학 담론들이 이러한 논의 가운데서 ‘자유경쟁’을 거듭해 ‘껍데기는 가고’ 내실을 갖추게 되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시선을 바깥으로 돌려보자. 남성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데도 역시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지난 해 군가산점 문제로 온통 시끄러웠던 논쟁과 그 갈무리에서 힌트를 읽어내보자면, 남성의 ‘직무유기’에 혐의를 둘 수 있다고 배은경 강사는 토로하고 있다. “지난 해 ‘여성과 사회’에서 군가산점 문제를 특집으로 다루었는데, 저는 ‘군가산점 논란의 지형과 쟁점’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막상 그 글은 남성들이 써야할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상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새로운 사회변화, 특히 90년대 이후에 일어나는 근본적인 사회문제, 가령 복지제도, 빈곤문제들이 주로 페미니스트들의 몫으로 돌아가는 현실이 답답해 오더군요. 지금까지 봉합되어 있던 문제들이 젠더 속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어요. 실상 사회질서라는 것이 여성의 희생에 근거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귀결입니다. 그런데 한국남성들은 아직까지 젠더의식이 희박해서 이런 문제들에 대한 적절한 대응에 실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페미니스트가 아닌 울리히 벡이나 앤소니 기든스같은 남성학자들이 사랑, 성과 같은 고전적인 ‘금남’의 주제에 대해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도했다는 사실은 하나의 시사를 준다. 여성학이 자리매김 하기 위해 남성들이 감당해야 할 최소한 ‘공존의 윤리학’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 가운데 신비한 우상보다는 지상의 파트너로서 여성을 정의하는 ‘땅의 여성학’이 담론의 거품을 걷어내게 되지 않을까.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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