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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철학 : 존재·자유·윤리·국가에 관한 수상록
국가철학 : 존재·자유·윤리·국가에 관한 수상록
  • 이지원
  • 승인 2021.09.10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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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지음|한국문화사|1,040쪽

 

책을 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우선 내 글, 아니 내 생각이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다. 얼마든지 반론이 있을 텐데 마치 진리인 양 떠든 것은 아닌지 더럭 겁이 난다. 세상의 판관들이 두들겨 팰 것으로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하다.

알이 되기 전에 숙성 기간을 참지 못하고 그저 초조함 때문에 암탉의 배를 갈라 생기다 만 알을 꺼내버린 것은 아닌지, 그 무모함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원고지 5천 매가 훨씬 넘는 분량의 긴 책인데 문장은 최대한 단문으로 쓰고자 하였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호흡이 긴 지독한 만연체의 법률문장이 익숙한 나에게는 첫 도전이었다. 고백하건대 논리적인 정합성이 매우 부족한 문장들이 주련처럼 죽 늘어선 것 같기도 하다. 어설픈 감정만 내뱉는 예어가 된 듯하여 무척이나 부끄럽다. 우리말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도 있으리라. 가차 없는 질정을 내려 주시라.

현대사회에서는 철학이나 윤리학이 맥도날드의 햄버거나 스타벅스의 커피 한잔 정도의 가치도 없다. 요컨대, 정신의 고귀함에는 전혀 화폐가치가 없다. 그러나 외람되게도 나는 이 정신의 자식들을 내가 죽거든 내 관속에 넣어 저승까지 가지고 갈 생각이다. 먼 훗날 화석언어가 되어 내 관을 발견한 고고학자가 해독해 주리라 믿는다.

그때 여기 쓰인 글이 우리 시대 정신의 흔적으로 남기를 바란다면 허무한 꿈일까? 이 책에서 내뱉은 나의 말 빚이 냉소적인 비난에 그치고 생산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 것 또한 나의 천학비재의 탓이라. 나는 경세가도 아닌바 그저 제 잘난 맛에 삼촌설로 지껄인 허무한 지적 유희로 그침을 부끄러워할 뿐이다.

다만, 내 글을 읽은 독자가 한 명이라도 내 생각에 동의를 하거나, 공감을 느끼거나, 이 책으로 인해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면 나는 이 책을 저술한 보람이 있다고 본다.만 6년 동안 숙성시킨 내 생각의 편린들이 잘 설계된 도면에 알알이 베어 전체의 구도를 짜임새 있게 지탱해준다면 좋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허무한 생각이 든다. 어느 덧 이순을 바라보는 세월 때문이리라. 이제 망망대해로 떠내려갈 내 말들을 놓아 주기로 한다.

이 책에서는 철학, 역사학, 정치학, 법학, 경제학, 논리학,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등 나의 40년 책 읽기에서 얻은 얕은 지식들이 무질서하게 널려 있다. 부제에서 드러난 것처럼 아무런 틀을 설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주워 모은 생각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나 자신은 스포츠도 서툴다. 축구는 즐겼으나 멈춘지 오래고 골프도 더디 는다. 운동신경이 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서툴다. 몇 년째 서예도 늘지 않는다.

나는 항상 늦깎이다. 운전도 늦게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잘하는 것은 꾸준함이다. 포기하지 않음이다. 나는 이 원칙을 평생 고수하여 왔다. 이제 아내가 그만 펜을 놓으라고 야단이다. 나는 이 책으로 6년의 세월을 잃었고, 10킬로그램의 몸무게를 덤으로 얻었다. 허리 인치가 늘어난 것도 원치 않은 소득이다. 시간을 공유하지 못한 아빠로서 딸들에게 미안하다. 인생의 끝자락에 계신 부모님을 자주 뵙지 못한 불효를 이제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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