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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없는 물리’로 자연현상에 푹 빠졌어요
‘수학없는 물리’로 자연현상에 푹 빠졌어요
  • 김재호
  • 승인 2021.09.16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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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학기술인 이야기_① 최은미 울산과학기술원 교수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이 시대 여성과학인 소개 캠페인 ‘She Did it’을 펼치고 있다. <교수신문>은 여성과학기술인이 본인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경력 성장을 하기 위한 다양한 이야기를 공동으로 소개한다. 여성과학기술인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생생한 목소리가 교수사회에 전달되길 기대한다. 첫 번째는 최은미 울산과학기술원 교수(전기전자공학과)다. 

자유도 해석법 개발해 6G 시대 열 계기 마련
연구과 기술개발은 실패 가득한 마라톤과 같아

울산과학기술원(UNIST) 전기전자공학과에 재직 중인 최은미 교수는 고출력 전자기파를 만들고 이를 응용하는 연구자이다. 국내 최초로 초당 1011번 진동하는 고출력 밀리미터파 개발에 성공하였고, 이를 이용해 원거리에 존재하는 방사능 물질을 실시간으로 탐지하는 기법을 세계 최초로 구현했다. 이 연구로 2018년 ‘국가연구개발 최우수성과 12선’으로 선정되는 영광도 얻었다.

최 교수가 전파공학의 권위자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만들어준 디딤돌은 물리학이다. “물리학은 물질세계의 질서를 측정가능한 양을 통해 정량적 정성적으로 이해하는 학문입니다. 이는 다른 과학과 공학 연구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요구되는 자질입니다.” 그의 중요 연구 분야인 전파공학도 기본적으로는 물리학의 ‘맥스웰방정식’에서 시작된다. 이처럼 물리학을 바탕으로 한 응용학문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최은미 울산과학기술원 교수는 물리학을 바탕으로 응용과학의 세계를 연구하고 있다. 사진=WISET

최 교수를 한 마디로 규정지을 수 있는 말은 없다. “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기파를 통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보고자 노력하는 연구자이자, 저와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생들의 발전을 바라는 교육자이며, 매일의 일상을 후회 없이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생활인입니다.”

물리학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전파공학

하지만 어릴 때부터 물리학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중학교 때는 단짝 친구와 어울려 떡볶이나 햄버거를 즐겨 먹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고교 시절엔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까를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막연히 순수 학문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고 한다. 특히 흥미를 느꼈던 수학이나 그 당시 스케일이 큰 학문이라 여겼던 천문학이 고려 대상이었다. 

최 교수가 물리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대학 입학 후였다. 그는 학부제가 처음 시행되던 해에 대학에 입학했다. 수학을 전공하기 위해 진학한 자연과학부에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은사를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자 운명이었다. “대학 입학 할 때만 해도 물리학에 큰 흥미는 느끼지 못했어요. 그런데 『수학없는 물리』(Paul G. Hewitt, 프로텍미디어, 2017) 책으로 공부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교수님의 강의도 출중했지만, 수학을 빼고 자연현상에 대한 물리를 배우니까 그게 너무너무 재미있었어요.” ​현재 최 교수의 연구실에는 이 책이 여전히 꽂혀있다. 당시 수업에서 느낀 물리학에 대한 학문적 희열은 현재의 최 교수를 만들었다. 

운명처럼 공부는 계속됐고, MIT까지 이어졌다. 최근에는 ‘궤도각운동량(Orbital Angular Momentum)’을 적용한 무선 통신의 채널용량 예측 공식인 ‘자유도 해석법’을 개발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시간, 주파수, 진폭, 편광 등에 더하여 추가 전파 자원을 발굴할 수는 없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어요. 그 결과 진행하는 전자기파가 가지고 있는 독립적인 위상꼬임 상태를 새로운 전파 자원으로 이용하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게 되었습니다.”

​‘자유도 해석법’은 실제 무선통신 환경에서 송수신 안테나 크기, 거리 등을 고려해 전파가 꼬인 횟수(모드)를 최대 몇 개까지 늘릴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기술이다. 전파가 꼬인 횟수를 최대 3회까지 만들 수 있다면 데이터 전송량이 3배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자유도 해석법은 6G 시대를 열 주파수 자원으로 떠오르는 테라헤르츠(1012Hz)주파수 영역까지 적용이 가능하다. 이는 공식만이 아니라, 실제 실험을 통해 검증까지 마쳤다. 

6G 적용 ‘데이터 전송량 예측법’ 개발

물리학은 생활혁신을 주도하는 기술이 된다. 그는 연구나 기술개발 과정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연구 현장은 수많은 실패로 가득 차 있고, 이를 통해 기술의 점진적인 진보가 이루어집니다. 문제에 부닥쳐 주저앉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은, ‘왜?’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끈기 있게 묻고 답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작은 실마리를 찾아가는 경험들이 모이고 쌓여 실패를 극복하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최 교수가 몸담고 있는 UNIST는 2009년 첫 학부생을 받았을 만큼 젊고, 역동적인 학교다. 짧은 기간에 좋은 연구 성과들이 쏟아져 나오는 연구중심대학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최 교수의 역할도 한몫했을 것이다. 물리학이라는 튼튼한 기초과학을 통해 풍성한 응용과학의 열매를 캐고 있는 최 교수의 향후 목표는 뜻밖에도 제자들의 성공이다. 

“실험실에서 함께 연구하고 훈련받은 학생들이 졸업 후 어떤 분야로 나아가든지, 연구실에서의 경험이 큰 자산이 되어 각자의 분야에서 한몫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최 교수는 연구 현장은 연구자 개인과 집단이 치밀하고 치열한 생각의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묻고 답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학창시절에 학문분야든, 본인의 관심분야든 그것을 끝까지 파고드는 몰입을 경험하는 것이 향후 어떤 진로를 결정하든지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됩니다.” 

최 교수가 힘들 때마다 스스로를 다잡는 두 가지 모토가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이다. 그 말들 속에는 연구에서 성과를 냈을 때 교만하지 않고, 실패했을 때 좌절하지 않는 솔로몬의 지혜가 담겨 있다. 순간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큰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마라토너 연구자의 각오가 보였다. 

WISET 홈페이지. https://www.wise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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