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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초점: 외국시 번역 어떻게 할까
연구초점: 외국시 번역 어떻게 할까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05.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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直譯은 금물...모든 걸 재창조한다는 마음으로

▲김효신 대구가톨릭대 교수의 발표장면 ©
지난 4월 30일 한국이탈리아어문학회와 지중해연구소가 공동주최한 학술대회에서 이탈리아문학 번역문제가 다뤄졌다. ‘번역의 이론적 고찰’(조문환 한국외국어대), ‘번역과 백과사전’(김운찬 대구가톨릭대), ‘이탈리아 시번역 무엇이 문제인가’(김효신 대구가톨릭대) 등이 발표됐다.

이 가운데 시번역의 딜레마를 깊이 고민한 김효신 교수(사진)의 논문이 단연 주목을 끌었다. 시 번역이야말로 가장 피를 말리는 작업이다. 야콥슨에서 방브니스트에 이르기까지 입을 모아 “시는 번역 불가능”이라 한 게 빈말이 아니다. 소리·리듬·형태의 물리적, 외부적 특성과 의미의 결합이 서로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시는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텍스트다.

불확실하고, 개방되어 있으면서도 다양성을 지니는 원문의 의미체험을 번역독자에게 그대로 겪게 해주는 것이 번역가의 임무인데, 이번 발제에서 김 교수는 시에서 ‘직역’은 매우 잘못된 인식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시 번역가에게 필요한 것은 창조적인 직관, 창작적 언어유희와 텍스트에 대한 완전한 이해라고 그는 강조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번역된 시도 시여야 한다”는 원칙이다. 한국의 많은 외국시 번역이 시를 ‘산문’으로 번역하고 있는 것을 그는 문제삼는다. 내용전달에 충실히 하려다보니 그런 것일까. 김 교수는 번역자의 ‘시적 언어감각’ 부족에 보다 혐의를 둔다. 시 번역은 “모든 것을 재창조하는” 마음으로 덤벼들어야 한다는 것.

현재 국내에 번역된 이탈리아 시는 살바토레 콰시모도, 페트라르카, 단테 정도일 만큼 빈약하다. 김 교수는 그 중 번역이 많이 이뤄진 단테를 예로 들며 십수종의 번역본 중 한형곤, 최민순이 옮긴 ‘신곡’이 신뢰할 만하다고 평가한다. 이 두 번역본은 시적인 맛을 살리려고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페트라르카에 오면 아무리 시의 묘미를 살리려고 해도 소네트 정형시의 묘한 맛을 낼 수 없다고 김 교수는 자신의 번역을 예로 들어가며 한탄한다. 그래서 시 번역은 절망의 곱씹음이지만 아래와 같은 차이들을 보고 공부할 수밖에 없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

콰시모도의 3행시를 윤병희는 “<황혼이 깃들고>- 누구나 지축위에 홀로 서 있나니 / 햇살 한줄기 뻗쳤는가 하면 / 어느덧 황혼이 깃든다”로 옮기는가 하면 박상진은 “<그리고 이내 저녁이다>- 누구나 대지의 중심 위에 홀로 있어 / 한줄기 태양을 쪼인다 / 그리고 이내 저녁이다”라고 옮긴다. 둘 중 40년 전의 번역인 앞의 경우가 시의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맛을 낸다. 비교문체론을 통한 번역비평이 필요한 이유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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