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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성어로 보는 세상 5_모험성과 유목적 사유
한자성어로 보는 세상 5_모험성과 유목적 사유
  • 김풍기 강원대
  • 승인 2005.05.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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懲羹吹?(징갱취제) : 뜨거운 국에 혼이 난 사람은 찬 나물을 먹을 때도 불면서 먹는다.

40대 중반으로 접어들면 나도 모르게 안정된 제도와 기득권 속으로 안주하는 자신을 자주 발견한다. 그 이면에는 이전의 자신감에 상처를 입었던 경험이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어설픈 실패는 사람을 움추리게 만든다.

나이가 들수록 조심스러워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대학 사회는 어느 곳에서도 조심성이 몸에 밴 듯하다. 어떤 일을 하나 시작할라치면 먼저 굉장히 많은 가능성을 점검한다. 물론 이러한 자세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도 그것을 시행하기 전에 미리 부정적 가능성을 염두에 두다 보면 어떤 일도 이루지 못한다. 제도 때문에, 혹은 현실의 편안함에 안주하는 바람에 내 가슴 속의 모험심과 창조적 상상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모험심이라고 해서 반드시 어디론가 떠나거나 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려는 정신적 유목이 더욱 필요하다. 책상 앞에 앉아 세계와 대화하면서 새로운 논의를 펼칠 자신감을 가지는 것, 그것을 실천하는 것, 내 마음을 열고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어가 사유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學人으로서의 자세다. 보이지 않는 칼날에 무수히 암습 당하면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지 않게 되기 십상인 것이 대학 사회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것이 학인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운명에 순응하기보다는 내 힘으로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 나가는 것, 그 이면에 바로 모험정신이 자리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는 정신적 유목을 한다.

뜨거운 국을 먹다 입을 덴 사람은 냉채를 먹을 때도 후후 불어가면서 먹게 되고, 활에 맞아본 적이 있는 새는 휘어져 흘러가는 물만 보아도 놀란다(懲沸羹者吹冷제, 傷弓之鳥驚曲水 : 《唐書》‘博奕傳’).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심정이다. 그 마음에 얽매여 꼼짝하지 못할 때 학인으로서의 학문적 창조성이나 상상력은 사라져 버린다. 그 지점에서 과감히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 용기가 필요하다.

김풍기 / 강원대·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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