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10-21 09:12 (목)
2종 면허로 버스를 몬다면
2종 면허로 버스를 몬다면
  • 김소영
  • 승인 2021.09.09 08: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딸깍발이_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공공기관 임원의 자격요건을 구체화한다면
낙하산 인사를 조금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김소영 편집기획위원(카이스트)

몇 년 전 학과장을 맡게 되었을 때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은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버스에 올라탔을 때 버스기사를 보고 놀란 느낌이랑 비슷했다. 유학을 떠날 때 버스기사들은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10년 만에 돌아오니 나랑 비슷한 또래, 그러니까 아저씨라 부르기 어색한 버스기사가 종종 보였다. 

10대, 20대에는 그렇게 커다란 버스를 움직이는 버스기사 아저씨가 참 크게 느껴졌다. 같은 차를 탔지만 나보다 훨씬 오래 타고 더 멀리 보고, 무엇보다 그 차의 위치와 속력을 좌우한다. 기사 아저씨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인 게 당연했다. 

이제는 나보다 젊은 기사가 운전대를 잡고 있으니 가끔 불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마음을 놓는 것은 운전석에 어엿한 면허증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젊다 해도 설마 운전 면허증도 없는 사람이 운전석에 앉았을 리가 없으니까. 

학생 때나 조교수 시절 학과장은 까마득한 존재였다. 교수 한 사람 한 사람이 총장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자율성과 전문성을 존중받아야 하는 동료 교수들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 툭하면 바뀌고 용어도 어려워 외국어 같은 학사·연구 규정을 어떻게 실수 없이 적용할 것인지 등.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자기 연구와 강의만 잘하면 되는 평교수 때는 자기가 한 일만 책임지면 되는데, 보직을 맡으니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도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위험천만한 일을 내게 맡긴 것은 내 능력의 출중함 여부를 떠나 일단 자격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에서 대부분 보직은 엄청난 능력이 있어서 맡는 것이라기보다 정년보장이나 정교수 등 자격이 되면 암묵적인 순서가 돌아와 맡을 수도 있고 경쟁으로 선출될 수도 있다. 즉, 교수의 가장 기본 업무인 연구와 교육을 통해 자격이 입증되어야 보직이 주어진다.

올 3월 기준으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일명 공운법)에 따른 공공기관은 350개로 2021년 예산안 기준 이들 기관에 투입된 정부 예산은 101조원, 정부 총지출 555조원의 18.3%에 해당한다. 시장에서 공급되기 어려운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관의 중요성은, 국민연금공단, 국민건강보험공단, 국가철도공단,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도로공사 등 예산 규모 상위 10개 기관 이름만 대어도 두말할 필요가 없다.

공운법 30조에 따르면 이들 기관의 운전대를 잡는 기관장 후보는 “기업 경영과 그 공기업ㆍ준정부기관의 업무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하고 최고경영자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문제는 이 기준이 너무 당연해서 ‘버스 운전기사는 운전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법률에서 상세한 자격기준을 두기는 어렵지만, 여러 OECD 국가처럼 준칙(bylaw)으로 공공기관 임원의 자격요건을 구체화한다면,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난리법석인 낙하산 인사를 조금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대통령제 국가에서 공공기관도 정책 집행 주체로서 국정철학 실현을 위한 낙하산 인사를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 해도 버스기사가 2종 면허로 운전할 수는 없는 법, 낙하산 인사를 해도 자격을 갖춘 사람 중에서 고르면 되지 않나? 다만 2종으로도 버스를 몰 수 있다고 자격 자체를 바꾼다면 그런 버스는 타고 싶지 않겠다.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