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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글씨
주홍 글씨
  • 정영인
  • 승인 2021.09.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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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정영인 논설위원 / 부산대 의학과 교수. 경암교육문화재단 이사

 

정영인 논설위원(부산대)

미국의 소설가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작품 중에 ‘주홍 글씨(The Scarlet Letter)’가 있다. 계율이 엄격한 청교도 사회에서 주인공 헤스터 프린(Hester Prynne)은 간통(Adultery)을 뜻하는 ‘A’라는 주홍 글씨를 가슴에 달고 살아야 하는 형벌을 받는다. 그는 죄를 용서받고자 마을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지낸다. 반면에 간통 상대인 명망 높은 목사 아서 딤스데일(Arthur Dimmesdale)은 죄를 숨긴 채 죄책감에 시달리며 서서히 피폐해져 간다. 프린은 죄를 숨기지 않고 당당히 드러내며 자신의 죄를 타인을 위한 봉사를 통해 승화시키면서 살아간다. 그의 선한 진정성은 가슴에 달린 주홍 글씨 ‘A’의 의미가 간통을 뜻하는 A에서 마지막 순간에는 천사(Angel)를 뜻하는 ‘A’로 의미가 바뀌어간다. 하지만 죄를 숨긴 채 마치 보이지 않는 주홍 글씨를 가리듯 가슴에 손을 얹고 다니며 위선적으로 살아가는 딤스데일은 죄책감에 시달리다 마지막에 죄를 고백하고 생을 마감한다. 작가는 죄보다는 죄에 대한 태도에 주목한다.

부산대는 조민의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을 부정 입학으로 결론 내고 입학 취소 예비행정처분을 결정하였다. 법원의 판결이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이다. 조국 교수는 “아비로서 고통스럽다”라는 말을 남겼다. 입시에 관한 한 최고 권력자도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한국 사회의 역린을 건드린 업보다. 어떻게 해서든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자 하는 부모들의 보편적 마음은 이해가 된다. 그러면서도 허위 자료를 만든 부모들이 모두 대학 교수라는 사실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삐뚤어진 자식 사랑이 초래한 가족적 비극이 안쓰럽고 측은하다. 

자식에 대한 성숙한 사랑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필자는 “자식은 부모로부터 왔지만 부모에 속하지 않고 다만 부모를 거쳐 갈 뿐이다”라는 레바논의 명상가 칼릴 지브란의 경구에서 답을 찾는다. 딸을 키울 때나 자식 문제로 갈등하는 부모를 임상 현장에서 만날 때 늘 마음속에 새기고 있는 지브란의 경구를 떠올린다. 개의 노이로제를 치료하려면 개의 주인을 치료하라는 말이 있다. 많은 부모들은 자식에 대한 간섭을 관심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혼동하고 있다.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원하는 건 관심이고 원하지 않는 건 간섭이다. 자식들은 간섭이 아니라 관심을 원한다. 간섭이 아닌 관심이 곧 사랑이다. 조국 교수의 가족적 비극도 따지고 보면 교수 부모의 자식에 대한 과도한 간섭과 과잉보호에서 기인한다.

조민이나 그의 가족은 어쩌면 ‘부정 입학’이라는 주홍 글씨를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조민이 속한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는 부산대에 입학 취소를 촉구하는 등 동료 의사로서의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다. 비록 의사면허가 취소되지 않더라도 동료들 간의 신뢰를 중시하는 의사 사회에서 조민은 그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면서 의사 생활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조민이 필자의 제자이지만 그의 아버지가 조국 교수라는 사실은 이번 사건으로 알게 되었다. 가끔씩 명망가(?)의 자녀를 지도학생으로 두고 인적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교수들을 간간이 목격도 했다. 장학금을 권력자의 자녀에게 특혜적으로 지급하여 뇌물죄로 입건된 교수의 행태도 이번 사건으로 알게 되었다. 볼썽사납고 불쌍한 교수들이 최고 교육의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이 동료 교수로서 참으로 부끄럽다. 

조국 교수는 “허위 자료들이 합격 요인이 아니라고 판단하면서 입학취소 결정을 내렸다”고 반발하고 향후 청문과 재판 과정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소명하겠다고 한다. 현재 처한 가족적 비극이 조국 교수에게는 몹시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점은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된다. 이제 사실 유무를 따져 최종적인 사법적 판단에서 무죄가 되더라도 조국 교수 가족의 가슴에 덧씌워진 ‘부정 입학’의 주홍 글씨는 지워지지 않을 듯하다. 해서 조국 교수에게 바란다. 이쯤에서 ‘부정 입학’과 관련된 사회적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사회적 통합을 위해 그의 대승적인 결단을 기대한다. 주홍 글씨를 가슴에 안고 당당히 살아가는 헤스터 프린의 진정어린 삶의 태도에서 형벌의 의미인 주홍 글씨가 천사의 의미로 바뀌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데서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를.

필자 역시 잘잘못에 대한 사법적 판단 이전에 잘잘못에 대한 조국 교수 가족들의 태도에 주목하고 싶다.

정영인 논설위원
부산대 의학과 교수. 경암교육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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