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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김대환 노동부장관에게 보내는 편지
교수논평: 김대환 노동부장관에게 보내는 편지
  • 김상곤 한신대
  • 승인 2005.05.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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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 교수노조 위원장 / 한신대 경영학과 ©
우리 사회의 현안인 양극화 문제에 큰 영향을 미칠 비정규직관련 법안에 대한 공방이 한창인 정국에서 많은 교수와 연구자들은 교수 출신 김대환 노동부장관을 비판하고 사퇴하라는 요구까지 하고 있다.

지난 22일 민교협 등 대표적인 세 교수단체는 ‘비정규직법안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을 둘러싼 공방을 바라보는 교수들의 입장 발표’에서 “노동부장관은 온갖 비속어를 쓰면서 몰상식한 대응에 급급했다”라며 “노동인권을 짓밟는 김대환 노동부장관은 사퇴하라”고 강도 높게 요구했다. 그 후 11개의 학회, 연구소, 교수단체 등이 ‘정부안 폐기와 인권위 의견을 수용하는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보장 법안을 촉구하는 지식인 성명’에서는 “취임 이래 노동기본권을 옹호하고 신장해야 할 국가 기관의 책임자로서의 본분을 망각해 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규탄 받아야 할 대상은 인권위가 아니라 김대환 장관 자신일 것이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교수와 연구자들의 분노는 단순히 장관 중의 한사람에게 표하는 게 아니라고 본다. 물론 이 분노는 엄혹한 노동현실에서 주무장관이 해야 할 소임을 방기하고 오히려 역행하는 데서 나오는 부분이 크다. 하지만 김 장관이 입각 전까지 해온 주장 및 활동과 비교하며 솟아오르는 분노 또한 만만치 않다고 본다. 특히 동시대를 살아온 교수들이 받은 충격과 허탈감은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관련 정부법안의 마련과 추진과정에서 김 장관이 펼친 논리와 보여준 태도는 많은 교수들에게 ‘어용화 된 교수의 자본이익에의 헌신성’으로까지 비쳐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양극화가 중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상황에서 비정규직의 폭을 넓혀서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역발상, 그것도 ‘보호법안’이라는 이름으로 분식하는 행태는 논리적인 모순을 꿰뚫는 교수들에게 크나큰 분노를 안겨주었다. 나아가 국가인권위원회가 노동인권 차원에서 비정규직관련 법안이 담아야할 기본 사항을 제시했을 때 주무장관이 좌충우돌식으로 보여준 반응에는 많은 교수들이 분노하다 못해 안쓰러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직도 김대환 교수 개인에게 상당한 교수들이 애정과 기대를 갖고 있으리라고 본다. 그들은 김 교수가 학술단체협의회 대표, 산업노동학회 부회장, 참여사회연구소 소장 등 많은 진보적인 학술운동을 펼치면서 보여준 개혁성과 활동성을 기억하고 있다. 또 상당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 우리나라에 도입될 즈음 김 교수가 경제학자로서 이에 대해 강하게 문제제기한 것이라든가 공기업 민영화 정책에 대해 제시한 비판과 대안들도 잘 알고 있다. 그가 학회와 토론회에서 제시한 노동문제 해법에 대해서도 많은 교수들이 수긍했었던 바가 있다. 그랬던 김 장관이었기에 교수들은 지금의 그의 행태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같다.

많은 교수들은 비정규직 문제를 남의 일로 보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대학교수도 5.31교육개혁 이후 비정규직이 크게 확대돼 왔다. 기존의 시간강사 외에도 갖가지 형태의 비정규직 교수가 늘고 특히 2002년 교수 계약제 도입 이후에는 신규 교수가 모두 계약 임용되고 있다. 2003년부터는 비정년트랙 전임 교수제까지 대학들이 도입하여 비정규직 임용이 극대화되고 있다. ‘대학은 산업이다’라는 대통령의 언명과 경제예속적인 대학교육 방침으로 이른바 ‘교수시장의 유연화’가 점차 확대돼 이제 교수들의 신분을 위협할뿐더러 학문후속세대의 재생산을 가로막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정부는 대학정책의 실패를 개별 대학들에 떠넘기며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비정규직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현 정부의 경제사회정책대로 하면 더욱 확대되어 나갈 것이다. 노동부는 당연히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복지 증진을 최우선과제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노동부는 역주행해온 면이 많다. 특히 이번 비정규직관련 법안과 관련해서는 장관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노사정 협의에서까지도 노동부는 노동자에게 고통과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역대 노동부 21명의 장관 가운데 교수 출신은 서너명이다. 교수 출신 그것도 노동자의 상태와 처지를 이해하리라고 생각했던 교수가 장관이 되면 군인, 관료, 정치인 등이 할 때와 무엇인가 다르려니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현실이 그렇지 못할 때 국민들이 느끼는 실망감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교수들도 ‘어용교수’라고 생각했었다면 그렇게 마음 상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대환 노동부장관이 함께 고민하며 학술운동을 해왔던 많은 교수 노동자들의 아픈 시름과 마지막 정을 깊이 헤아리고 현명한 처신을 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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