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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_‘고래사냥’과 ‘낭만고양이’
학이사_‘고래사냥’과 ‘낭만고양이’
  • 백용식 충북대
  • 승인 2005.04.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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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노래를 떠올린 것은 러시아 문학사를 다룬 수업에서 낭만주의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던 중이었다. 외국에서 수입된 개념을 학생들에게 실감나게 가르치는 일이 내겐 늘 어려운 일이었다. 이것저것 장황하게 설명해도 학생들의 표정은 ‘감이 오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도 학생 때 그랬으니 학생들을 나무랄 수도 없다. 나는 우리 일상 속에 있는 낭만을 찾아 설명하고, 러시아 낭만주의를 다루기로 전술을 바꿨다. ‘감’을 먼저 익혀 주고, ‘지식’을 전달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선태된 것이 ‘고래사냥’과 ‘낭만 고양이’였다. 

1975년 하길종 감독이 만든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 삽입된 ‘고래사냥’은 동시대 젊은이들의 정서와 문제를 잘 드러내고 있다. 가사의 낭만적 정서는 긴급조치, 무기한 휴교조치 등과 같은 유신시대의 정치현실과 관련되어 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바도/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 이네/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네…”. 이런 현실에서 노래의 주인공은 “동해바다로” 떠난다. 현실에 대한 저항과 자유로운 이상(바다)으로의 탈출, 1975년의 낭만적 정서는 박정희 시대의 정치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체리필터가 2002년 발표한 ‘낭만 고양이’는 좀 다르다. “내 두 눈 밤이면 별이 되지…/두 번 다시 생선가게 털지 않아…이젠 바다로 떠날 거예요(더 자유롭게) 거미로 그물 쳐서 물고기 잡으러”. 생선가게 터는 현실을 거부하고 자유롭게 바다(이상)로 떠나는 2002년의 ‘낭만’에는 정치 대신 평균적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 주제가 된다. 이것은 개성을 추구하고, 때로 ‘엽기’조차도 개성의 표현으로 이해하는 젊은 세대의 정서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노래를 예로 수업을 했던 그날 나는 새로운 고민에 빠지게 됐다. 노래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고래사냥’을 예로 들 때에는 신기하다는 표정이었고, 긴급조치, 무기한 휴교조치와 같은 단어에 대해서는 ‘저게 무슨 소리?’하는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낭만 고양이’를 예로 들 때의 빛나는 얼굴은 ‘필이 팍팍 온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게 당연하고 자명한 고래사냥이 그들에게는 낯선 것이고, 내가 애써 노력해서 이해했던 ‘낭만 고양이’의 정서가 그들에게는 자명한 것이었다. 그날 수업에 대한 반성은 학생들은 나와 다르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나는 우리 세대에 속한 것이 우리 문화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했고, 학생들도 나와 같은 느낌으로 그것을 수용할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했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반성은 또 다른 결론으로 이어졌다. 그들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너머 나는 ‘낭만 고양이’ 세대와 그들 문화의 압도하는 힘을 느꼈다. 그것은 질적으로 또 양적으로 강력한 것이었다. 우리 세대에 중요하고 의미 있던 것이 주변으로 밀려나고, 새로운 세대의 문화와 정서가 중심을 향해 몰려오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면 좀 과장된 것일까. 매우 주관적인 경험과 결론일지도 모르지만, 요즘 나는 중심으로 치고 들어오는 젊은 문화를 관찰하며 인문학의 새로운 과제와 도전을 발견한다.

백용식 / 충북대 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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