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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중국화론으로 본 회화미학』 지순임 지음| 미술문화 刊| 423쪽| 2005
서평_『중국화론으로 본 회화미학』 지순임 지음| 미술문화 刊| 423쪽| 2005
  • 김백균 중앙대
  • 승인 2005.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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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和'로 유불선 미학 아울러... 좀더 세밀한 논증,예증 필요

동북아시아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畵’, 즉 그림이 갖는 의미는 매우 특별하다. 특히 그림을 논한 중국의 화론은 그림에 대한 이론과 품평의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한 문화의 특질을 파악하는 중요한 수단으로도 작용한다. 이러한 예는 다른 문명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요소다.

중국문화가 지니는 독특함은 그림과 같은 정감의 영역까지도 삶의 원리로 규정하는데 있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시에 ‘經’의 지위를 부여했다. 대부분 서정시가 수록된 ‘詩經’은 5경의 하나로 유가의 기본경전이다. 시에 대한 이해 없이 중국의 고대인들은 지식인의 대열에 합류할 수 없었고, 나아가 정치활동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중국문명은 종종 매우 현세적인 문화로 이해되기도 한다.

중국 지식인들의 시에 대한 열정은 宋代를 지나면서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점점 대체되어 간다. 문인화의 출현과 더불어 그림이 정감을 표현하는데 시보다 더욱 직접적이고 쉬웠기 때문이다. 그림과 시와 더불어 ‘書’ 역시 매우 일찍 서예의 영역으로 독립되어 정감의 표현수단으로 확립되는데, ‘서’는 곧 당시 지식인이 자신의 권위를 부여받을 수 있는 직접적인 권력의 수단이었으므로, 적어도 중국 5천여 년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서’의 연구에 투입됐다.

시?서?화는 중국의 지식인들이 자신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는 도구였으며, 동시에 놀이의 대상이었다. 그러므로 중국 고대의 시론과 서론, 화론은 서로 경계를 넘나들며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한다.

지순임 교수의 ‘중국화론으로 본 회화미학’은 일반적으로 예술의 자각시대로 알려진 魏晉 시대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700여년의 화론 역사를 통해 중국 지식인들의 가치관과 사유세계를 파해 친 저서다. 이 책은 크게 중국 사유의 기본 관점을 다루는 ‘회화미학의 기본정신’ 1부와 위진 이후로부터 청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중요인물들의 직접적인 화론을 다루는 ‘회화미학의 흐름’ 2부로 나뉜다. 

‘회화미학의 기본정신’은 유가의 中和정신, 불가의 中道, 도가의 無爲自然의 개념과 ‘畵中有詩’로 대표되는 그림의 시적 서정성 등을 다루고 있다. 이중 특히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중화’의 정신이다. 저자는 ‘중화’정신을 인륜적인 선과 행위의 미가 조화된 이론으로 여기고 중화의 사상이 회화 이론의 근간을 이루는 뿌리라고 강조한다. 또 중화는 철저한 평등성, 공평무사한 원리, 동감의 일체성, 묘공의 특성, 도를 통해 만물이 하나가 됨이라는 원리로 이해된다고 정의한다. 중화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중화를 단지 유교의 관계론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중화’라는 개념을 통해 유불선 3교의 통합적 관점에서 동양문화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을 읽을 수 있어 주목된다. 그러나 이점이 바로 이 책의 탁견임과 동시에 약점으로 작용한다.

저자의 주장대로 도가와 불가의 사상에서도 ‘중용’적인 처세와 삶에 대한 균형 잡힌 성찰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을 수용하기에는 논거와 논증이 너무 거칠다. 우선 각 사상들의 지향하는 점이 다르고, 방법론 또한 다르다. 모두 ‘道’를 지향하지만, 도의 함의가 다르며, 虛靜의 心, 心齋의 심, 禪定의 심은 모두 悟道와 證佛의 주체지만, ‘心’의 개념이 모두 일치하지는 않는다. 불교의 중도와 유가의 ‘중화’정신을 병치하거나 같은 시각의 선상에서 다룰 수는 있지만, 좀 더 설득력 있는 근거가 제시돼야 한다.

더욱이 중국의 화론에 ‘중화’의 정신이 하나의 가치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무위자연’의 개념과 더불어 ‘회화미학의 기본정신’이며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지 좀 더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또한 저서의 1부는 ‘화중유시의 미’ 부분을 제외하면, 화론에서 이러한 정신을 직접 귀납적으로 도출한 것이기 보다는 일반적인 유가와 도가 그리고 불가의 기본 개념의 큰 틀 속에서 중국사상의 기본특징을 다루고 연역적으로 화론에 적용한 측면이 강해보여, 이 ‘회화미학의 기본정신’ 1부가 2부 ‘회화미학의 흐름’과 따로 분리되어 독립해야할 필연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2부는 수만 수천의 화론 중에서 저자의 시각으로 중요도에 따라 선별해 시대의 정신 따라 혹은 역사적 환경 따라 변천해 왔던 화론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는 각 시대적 화론의 특성을 부각하려다보니, 시대적 관심과 개념을 떠나 중국 화론만이 갖는 독특한 매력이 드러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만약 저자가 ‘중화’의 개념으로 중국화론을 바라보려 했다면, 2부 역사적 기술인 ‘회화미학의 흐름’에서 ‘중화’의 정신들을 도출했으면 어떠했을까.

‘중국화론으로 본 회화미학’, 무엇보다도 이 책은 미학을 다루는 책이다. 그 동안 학계에서 동양의 미학은 뜨거운 감자였다. 미학은 근대 서양에서 성립한 학문이다. 동양미학의 중심개념은 서양의 미학처럼 ‘미’가 절대가치로 군림하지 못한다. ‘미’는 ‘도’ 안에서 ‘추’와 대비되는 상대적 개념일 뿐이다. 서양의 진선미로 대변되는 절대가치추구의 정점에 서 있지 않다. 중국화론의 지향점이 과연 ‘미’인지, 또 왜 ‘미학’의 관점에서 중국화론을 다루는 것인지, 또는 ‘미학’을 동양의 사유 안에서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에 대한 방법론에 대해 저자의 견해를 밝히고, 좀 더 조심스럽게 접근했으면 어떨까한다.

김백균 / 중앙대 동양미술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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